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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쓴삘 Aug 22. 2024

내가, 그래서, 처음 쓴 글

한 20년 전쯤, 이직을 앞두던 때에 지금의 신랑을 만나 결혼을 결심하고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결혼 준비 하며 자격증도 따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던 그때 결혼 3달 만에 첫째를 가지게 되고. 

그렇게 10년을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육아하며 지내게 된다.

내가 잉여인간이라고 느껴지는 게 너무나도 싫었던 그때. 

지나고 보면 그 시간들이 우리 아이들을 밝게 키워준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그때는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러면서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그 글의 시작을 여기에 옮겨본다. 


2020.7.15


07:30

하루가 시작됐다.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남편은 물통을 잘 가지고 갔는지 확인한다.

습관처럼 알바 사이트를 살펴보고 오늘도 내가 지원할 곳은 없음을 알게 된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을 동안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돌린 후 등교, 등원을 서두른다.

다 보내고 들어오니 9시. 세탁기는 여전히 돌아간다. 

청소를 마무리하고 앉아있다가 빨래를 널 준비를 한다.  

먼저, 옷들을 꺼낸 후 하나하나 털어 편다.

속옷과 양말은 작은 건조대에 걸치고 큰 옷들은 베란다의 큰 건조대에 널어놓는다.

작은 건조대를 바라봤다. 

내 양말은 없다.

나는 굳이 양말이 필요 없다.

출근할 일도, 외출할 일도....

차려입을 일이 없다.

이제 불혹이 코앞인데도 여전히 세상에 흔들리고 유혹에 취약하다.

잉여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아 호기롭게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내가 젋었을때도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알바를 거쳐 취업을 무난하게 해 갔던 터라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육아를 도와줄 사람은 없으니 아이를 맡기고 취업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애들이 크고 나면 어디든 취업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경력단절녀.. 이 단어가 참 뼈아프다.

보름 전 처음 이력서를 넣으면서 마치 다음 주부터 출근이라도 하는 마냥 첫애 학교에 전화해 돌봄 교실에 TO가 있는지 확인했더랬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귀엽네.

보름동안 이력서를 한 5군데는 넣었다.

육아 때문에 전일제를 할 수 없어 시간제로 알아보니 선택의 폭도 좁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이가 너무 많다.

알바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면 보험사나 학습지에서 영업직으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온다. 

TM은 젊을 때 알바로 해봤는데, 그분들은 정말 존경받아야 한다. 

내가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생각에 한없이 초라해진다. 

국비교육이라도 들으려면 초등학생 아이를 학원으로 돌려야 한다. 

취업교육 수강으로는 돌봄 교실에 보낼 수가 없기 때문에.. 

좋은 엄마와 내 인생 사이에 갈등이 심해진다. 

건조대에 내 양말은 8년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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