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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채 May 19. 2024

눈이 시리게

2024년 5월 3주 차

 제주에선 날씨가 궂지만 않다면 거의 매일 산책을 한다. 시간대는 아주 규칙적이진 않지만 대체로 오후 4시에서 해가 완전히 지기 전 그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그 시간쯤이면 해가 지기 시작하여 해가 눈높이쯤에 떠있고 햇빛이 바다에 반사되며 윤슬이 반짝인다. 그 풍경을 보면 매일 보는 풍경임에도 한없이 바라보고 싶어 진다. 하지만 해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데다가 제주는 바닷바람도 불어오기 때문에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시려오면서 눈물이 고이게 된다.


 제주를 내려오기로 생각한 건 사람한테 지쳐서였다. 사람이 적으며 한적하고 자연도 볼 수 있고 그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즐길 수 있는 곳이어서 선택했다. 도시에 비하면 인구 밀집도는 아주 낮았고 탁 트인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걸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산책을 할 때면 그날의 구름 모양과 하늘의 색, 길가에 핀 들꽃들, 파도의 움직임 같은 것들을 관찰하며 걸었다.


 그런데 요즘은 산책을 할 때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날이 따뜻해지고 연휴가 생기면서 제주에 오는 여행객들이 늘어났다. 그 사람들이 바다를 구경하며 제각기의 모습으로 바다를 담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만히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바다를 보며 각자의 방식대로 행복해하는 것들이 보인다. 누군가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누군가는 모래사장에 가만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누군가는 모래사장을 뛰어다니고, 누군가는 바지를 걷어붙이고 바다에 발을 담그고. 그렇게 누가 누가 제일 행복해하나 바라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싫어서 도망쳐 온 제주인데 이제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 바다와 하늘 그리고 그 시야에 담기는 사람들까지 눈이 시리도록 담아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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