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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채 May 15. 2024

최고의 효도

2024년 5월 2주 차

 우리 집은 삼 남매이다. 내가 첫째, 둘째 여동생, 셋째 남동생. 그 시절 흔히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줄줄이 낳아야만 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부모님의 자식 계획은 이러했다. 첫째인 나는 어릴 때부터 꽤 공부를 잘했지만 성격은 활발하지 못했다. 그런 나는 엄마의 못다 이룬 꿈을 담아 교사가 되기를 바랐다. 둘째인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인형을 가지고 병원놀이를 자주 했고, 그래서 인형의 팔에는 샤프심 자국으로 구멍이 뽕뽕 뚫려있기 일쑤였다. 물론 엄마는 그런 동생을 보며 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동생이 의사가 될 정도의 공부를 할 재목이 아니라는 걸 일찍 깨닫고 대신 간호사라도 되기를 바랐다. 셋째인 남동생은 어릴 때 꽤 똘똘했다. 그래서 의사, 변호사, 판검사 같은 전문직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우리 셋이 대학입시를 치를 때가 되었다. 나는 사범대에 갈 성적은 되지 못했고 차선책으로 교직이수를 하거나 교육대학원에 갈 수도 있는 학과에 갔다. 엄마는 그래도 내가 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아직은 열려 있으니 그걸로 안심을 했다. 여동생은 병원에서 일하기 싫다며 대신 아기들을 좋아해서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그래도 나름 취업이 보장되는 직업이므로 엄마는 그걸로 안심을 했다. 어릴 땐 총명했던 남동생이 자라면서 꽤 머리가 좋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의 기대치는 점점 낮아졌고 집에서 너무 먼 곳으로 학교를 가게 될까 전전긍긍했으나 다행히도 서울에 있는 학교에는 진학을 하게 되어 엄마는 매우 안도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엄마의 처음 계획에선 살짝씩 벗어났지만 크게 이탈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30대에 접어들었고, 여동생은 20대 중반과 후반 그 사이 어디쯤에 있고, 남동생은 군대를 제대하고 20대 중반이 되었다. 대학생 때, 학원에서 보조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는 교사가 되기엔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교사의 꿈을 포기했지만 부모님 세대라면 환영할 만한 직업을 갖게 되긴 했다. 그렇게 취직을 했을 때 부모님은 매우 좋아했다. 그런데 회사를 잘 다니나 싶더니 3년 만에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며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다. 여동생도 유아교육과를 무사히 졸업하여 바로 취직을 했지만 2년 정도 일을 하더니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그만두고 자격증 시험을 보고 하고 싶은 일로 가는 일을 하고 있다. 남동생은 군대에서 갑자기 운동을 배워 오더니 주 6일, 하루에 2~3시간씩 운동을 하며 돌연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땄고 아예 운동 쪽으로 가려는 건지 물어는 봤으나 아직은 미지수다.


 어떻게 보면 엄마가 그렸던 자식 계획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20살까지는 부모의 영향력 아래에서 그럭저럭 계획대로 자라는 듯싶었으나 장성해 버린 세 남매는 결국 자기들 식대로 자기 하고픈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도 셋 다 자신의 길을 찾아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당신들 기준에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을 권했다는 그 마음만이라도 알아두자. 그래도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게 젤 효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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