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조식을 먹다 최근 들어 급격히 쌀쌀해진 날씨가 화두에 올랐다. 예상치 못한 추위에 모두들 당황한 듯 보였다. 듣고 있던 오스삐따레로가 건물 입구에 있는 커다란 상자를 열어 보라고 했다. 이곳에 머물렀던 순례자들이 깜빡 흘리고 갔거나, 짐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놓고 간 의류들을 한데 모아두었다고 한다. 직접 세탁하고 차곡차곡 개어서 보관했으니 혹여 더러울까 걱정하지 말고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가져가란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내려가서 보물찾기 하듯 상자를 뒤적였다. 걷는 동안에는 체온이 떨어지지 않아 괜찮지만 자는 동안, 특히 새벽 추위를 이겨낼 옷가지들이 필요했다. 가볍고 상태 좋은 수면양말, 반팔 티 그리고 긴팔 셔츠를 챙겼다. 잠옷 위에 껴입으면 체온을 덜 뺏길 수 있게 되었다. 여성용 장갑도 한 짝 찾았다. 아내가 가지고 온 얇은 것을 내가 쓰고 새로 득템한 도톰한 핑크색 장갑은 아내가 끼기로 했다. 꺼내놓은 옷들을 다시 개어서 상자 안에 잘 정리했다. 마지막까지 모든 순례자들을 배웅해 준 두 오스삐따레로의 따듯한 미소를 마음에 담고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했다.
길을 걷는 동안 어제부터 이어 온 뭉클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오스삐따레로 부부 덕에 물질적인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진리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온화한 미소와 진심 어린 말 한마디로도 다른 이들에게 얼마든지 행복을 줄 수 있다. 아내도 같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들처럼 나도 다른 이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며 정신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작은 강물을 따라 Burgos(부르고스) 중심지를 지나고 있었다. 우릴 향해 진행방향과 반대로 걸어오는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룩셈부르크 출신의 폴이었다. 순례길 초반에 자주 마주쳤는데 언젠가부터 서로의 일정이 어긋나 버리면서 못 본 지 꽤 됐었다. 반가웠다. 그런데 그 사이 얼굴이 수척해져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폴은 우리보다 하루 빠른 그저께 부르고스에 도착했단다. 발목이 아프고 감기 기운도 있어 연박을 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다 보니 끼니를 부실하게 때웠다고 했다. 억지로 기운을 내어 오늘 다시 길을 나섰는데 방향 감각을 잃어버려 순례길 이정표가 나올 때까지 한 방향으로 무작정 걷던 도중 우리와 맞닥뜨렸단다. 폴은 핸드폰 어플로 위치를 찾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폴의 사정을 들은 아내가 비상용으로 챙겨 온 진통 소염제를 나눠주었다. 다시 길을 잃을까 불안해하는 그를 위해 순례길 이정표가 보일 때까지 우리와 같이 걸어가기로 했다. 헤어져있던 며칠 동안 있었던 각자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나누다 보니 순식간에 부르고스 외곽을 벗어났다. 폴은 이제 방향을 알았으니 먼저 가라고 했다. 아픈 발목 때문에 우리와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게 미안했나 보다. 또 언젠가 길에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인사를 나눴다.
숙소를 나설 때는 흐리기만 하더니 어느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오늘 여정의 중간쯤 있는 작은 마을인 Rabé de las Calzadas(라베 데 라스 깔사다스)에 작은 성당이 있어 잠시 쉬어 갔다. 우비를 벗어 입구 쪽에 놓고 들어가자 수녀님 한분이 맞이해 주었다. 그녀는 우리 이마를 짚으며 순례길 무사완주를 기원해 주고는 손수 만든 작은 메달을 건네주었다. 아내는 기부함에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근래 며칠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는 경험들을 연달아 겪고 있다. 매번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느껴진다. 원래 스페인 사람들이 정감 넘치는 것인지, 독실한 카톨릭 국가이기 때문에 순례자들을 성심성의껏 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건 누군가 아무 대가 없이 우리의 안녕을 기원해 준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문 밖을 나서자 다행히 비가 그쳐있었다.
그저께 아침 숙소를 나오기 직전 바닥에 침낭용 끈 2개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잠에서 깨기 전 길을 나선 룸메이트 일본인 할아버지의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분은 나와 같은 2층 침대의 아래층을 썼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끈의 색깔이 침낭과 동일했다. 모두가 자고 있는 무척이나 이른 새벽 다른 이들이 깰까 봐 차마 불을 켜지 못하고 대신 작은 헤드랜턴에 의지해 짐을 챙기다 빠트렸나 보다. 주인 잃은 침낭 끈에서 할아버지의 배려가 느껴졌다. 나는 언젠가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면 전달해 주려고 끈을 챙겨서 가방 허리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러다 오늘의 목적지 Hornillos del Camino(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초입을 지나 숙소로 향하던 중에 마주 오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가방을 메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체크인을 마치고 식당을 찾아 가고 있거나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있는 듯했다. 주머니에서 곧장 끈을 꺼내어 보여주었더니 자신의 것이 맞다며 고마워했다. 할아버지는 보답해주고 싶었는지 우리를 숙소까지 안내해 주었다. 마침 우리가 묵을 숙소에 할아버지도 짐을 풀었다고 한다. 서로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없어 몇 마디 말은 나누지 못했다. 언제나 무표정한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처음 미소를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어제 산 라면 두 봉지를 먹었다. 한국에 살 때 보다 라면을 더 자주 먹는다. 공용 거실에서 네덜란드, 독일 출신의 순례자들과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Sophie(소피)는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는데 과연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인지 고민이 많아 순례길에 올랐다고 한다. 예전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나도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진학하기 전에 정말 머리가 복잡했다. 십여 년 전 내가 했던 고민을 소피도 하고 있었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한 편으로는 주위에서 아무리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들려주어도 결국 최종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국 간 대학원 문화와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나의 경험이 소피의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힘들 것이다. 평소 언행으로 미루어 보아 소피는 내면이 단단하고 생각이 깊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말을 아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