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기상 예보를 보니 비 소식이 없어 잠시 설레었다. 그러다 문득 예보만 믿고 우비와 배낭커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알베르게를 나섰다가 낭패를 당한 지난날들이 떠오르는 바람에 금세 차분함을 되찾았다.
출입문을 열었는데 마침 비가 내리고 있으면 그나마 낫다. 로비로 돌아와 채비를 갖추면 된다. 출발 당시에는 괜찮다가 5분도 안 돼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질 때면 참으로 당혹스럽다. 밤새 굳은 관절이 부드러워지면서 이제 막 탄력을 받기 시작할 때쯤이라 멈추고 싶지 않은데 계속 걷자니 옷과 가방이 걱정된다. 그러다 가랑비라고 무시했다가 신발 안쪽까지 홀딱 젖은 날의 기억이 떠올라 비옷을 꺼내 입는다. 몇 번의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린 뒤부터는 조금이라도 강수 확률이 있으면 아예 우비와 배낭커버를 씌우고 숙소를 떠났다. 하늘이 개어있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서 우비를 벗는 편이 정신 건강에 덜 해롭다.
오늘은 시간대별 상세 예보 어디에도 우천 기호가 없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순례자들도 우비를 입고 있지 않았다. 기상청 데이터가 정확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일기장을 뒤져보니 23일 차인 11월 2일부터 열흘간 빠짐없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보슬비, 소나기, 안개비, 강풍을 타고 얼굴을 따갑게 때려대는 거센 비바람까지 골고루 겪었다. 악천후가 잦아들기를 바라는 희망이라도 내려놓았더라면 매번 실망감을 덜 느꼈을 텐데 마음 다스리기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시사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남미에서 영국으로 이적한 어느 축구 선수가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향수병에 걸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괜한 유난이라 생각했었다. 영국으로 넘어온 남미 출신 선수 중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하나, 먹구름 낀 하늘과 스산한 비바람을 1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겪어 보니 그 심정이 일면 이해되었다. 날씨에 예민하면 충분히 그럴 만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비를 입지 않은 덕에 온종일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땅이 질퍽거리지 않아 발걸음도 가벼웠다. 하늘은 대체로 흐렸지만 간혹 맑게 개이기도 했다. 비타민 D를 흡수해서 인지 모르겠으나 30km 가까운 먼 거리를 걸었음에도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순례길에서 보기 힘든 세련된 간판의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매장은 넓지 않았으나 주인이 구석구석 신경 썼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음료와 음식 솜씨도 수준급이었고 특히나 또르띠야가 크고 맛있었다.
사실 우리를 가게 안으로 이끈 것은 세련된 외관도 고갈된 체력도 아니었다. 문 앞에서 순례자들이 걸어오는 방향을 보고 앉아있는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였다. 녀석은 지나는 사람마다 다가가 꼬리를 흔들며 영업을 해댔다.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에 이끌려 가게를 찾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마지막까지 간식거리를 챙겨주는 다정한 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기분 좋게 다시 걸음을 재촉할 수 있었다.
순례길에서 간단한 인사나 감사 표현을 한국말로 건네는 상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류 문화의 영향도 있겠으나 그만큼 순례자들 중 한국인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동양인 중 80% 이상은 한국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와 어느 정도 친해진 서양인들이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왜 순례길에는 한국인이 이렇게 많은 거야? 몇 년 전에 유명 티비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하던데 그것 때문이야?"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같은 질문을 받은 듯하다.
그다지 심도 있게 고민해 보질 않아 처음에는 내 상황에만 입각해서 적당히 얼버무렸다.
"다른 한국인들이 티비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아 이곳에 왔는지는 잘 모르겠어. 내 경우에는 쇼가 방영되기 훨씬 전인 2009년에 순례길의 일부를 걸었어. 그때의 경험이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기에 당시 여자 친구이자 지금의 아내와도 언젠가 같이 완주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어. 마침 둘 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시간 여유가 생겼기에 오게 되었어. 아내와 나는 이번 기회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하고 있어."
내가 다른 한국인들을 대변할 수는 없다. 국적이 같고 말이 통할뿐 모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것도 아니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각양각색일 것이다. 종교적 신념, 일/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해소, 휴식, 심지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오는 경우도 있다. 무슨 수로 모두를 통틀어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유독 한국인만을 겨냥해 그런 질문을 하는 심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 시선에는 미국인과 독일인들이 더 많아 보인다. 내가 받은 질문 그대로 몇 번되물어보았는데 아무도 그럴듯한 대답을 하지 못하더라. 어찌 보면 인종차별의 하나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평소 대화를 통해 잘못되고 편협한 가치관을 지니지 않은 친구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순수한 궁금증에서 기인한조심스러운 질문이었기에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요소는 전혀 없었다.
걷는 동안 아내와 그 질문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아내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원래 여기저기 안 가리고 걸어 다니는 거 좋아하잖아."
얹혀있던 체증이 말끔히 가시는 느낌이었다. 얼마간의 논의 끝에 정리한 답변은 이랬다.
'한국인들은 원래 걷는 것을 엄청 좋아해. 마을과 도시마다 산책로들이 무수히 많아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이 걸어 다녀. 머리를 잠시 식히거나 운동 삼아 걷기도 해. 우리 부부처럼 시간 여유가 생기면 인프라가 잘 갖춰진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경우도 많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코스는 제주도에 있는 올레길이야. 산티아고 순례길과도 자매결연 한곳이야. 우리도 걸어봤는데 여기와는 다른 특별한매력이 있어.'
거짓이나 과장이 없고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 사실 국적 불문하고 모든 순례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이곳을 온 이유는 너희와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며칠 전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던 미국인 순례자를 만났다. 준비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제야 납득이 간다며 잊지 않고 설명해 주어서 고맙단다. 아내에게도 소식을 전해주어 뿌듯함을 공유했다.
문어 요리로 유명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리비 버터구이와 매운 고추 튀김도 곁들였다. 문어는 데쳐서 한입 크기로 자른 후 올리브 오일과 매콤한 양념이 뿌려져 나왔다. 식감이 예술이었다. 질기지도 않고 흐물거리지도 않았다. 아주 적당할 정도로 쫀득했다. 올리브 오일의 느끼함과 매콤한 양념이 완벽히 어우러져 어느 하나 겉돌거나 거슬리지 않았다. 가리비도 알맞게 익혀져 포슬포슬하게 씹혔다. 버터의 풍미와 레몬즙의 상큼함까지 더해지며 조화를 이루었다. 지루하다 싶을 때 알싸한 고추 튀김을 베어 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끔 만들어준다. 평소 레드 와인을 즐겨 마시지만 해산물에는 역시 화이트 와인이 가장 잘 어울린다. 스페인에서 지불한 한 끼 식사비용 중 최대 금액이었으나 그 값어치 이상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한 달 넘게 매일 강행군을 지속하다 보니몸에서 하나둘씩 이상 신호를 내고 있다. 예전부터 말썽이던 관절 부위들은 의외로 멀쩡한데 삭신이 쑤시는 느낌이다. 누적되어 온 피로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나 보다. 모레 도착하는 순례길의 공식적인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에서 하루 쉬기로 아내와 합의했다. 그 이후에는 보너스 구간인 피스떼라까지 약 100km를 걸을 계획이다.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체력 회복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