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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Feb 27. 2024

따뜻한 그리움

엄마의 산소에 성에꽃이 피었다. 다가가 손으로 쓰다듬으며 엄마를 불러 보았다. 엄마 잘 쉬고 있지? 대답 없는 엄마에게 절을 하며 다시 인사를 건넸다. 절을 하고 일어나며 언니가 ‘에구’ 소리를 낸다. 엄마 앞에서 딸들이 늙은 티를 낸다며 동생이 한마디 하자 언니가 말한다. 우리가 엄마보다 나이가 많으니 이해하실걸? 엄마는 우리보다도 젊으셨어.

엄마의 기일이라 친정 식구들과 산소에서 모였다. 58 세에 돌아가셨으니 올해로 벌써 26 년이 되었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기에 그 아픔도, 상실감도 컸는데 이제는 농담도 하면서 이렇게 편안하게 돌아가신 엄마를 마주하고 있다. 한동안은 엄마 생각만 하면 통증을 느낄 정도로 슬펐었는데.....


가장 아팠던 것은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 날 아침이었다. 5시 30분쯤 잠에서 깨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헉 소리가 날 만큼 가슴에 통증이 왔다. 그 통증은 점점 위로 올라오며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겨울이라 밖은 아직 깜깜했고, 조문객을 치르느라 피곤했던 식구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식구들이 깰까 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누르고 억눌렀지만 한 번 터진 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반 시간이 넘게 큰 소리를 내며 엉엉 울고 난 뒤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천붕지통,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그런 아픔이 있을까 했는데 엄마와의 이별은 그렇게 아팠다.


그리고 또 한 번 엄마의 죽음이 진하게 다가온 건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첫 번째로 맞이한 내 생일날이었다. 아침에 미역국을 먹으려고 막 숟가락을 들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에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웠다. 한참 눈물을 쏟고 곰곰 생각해 보니 미역국에 내 몸이 반응한 거였다. 내 안에 슬프게 살고 있었던 엄마가 미역국에 반응하여 눈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가장 슬픈 미역국이었다.


성묘를 마치고 늘 가던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칼국수. 이 식당의 칼국수는 딱 엄마가 해 주던 그 맛이라 성묘 후엔 늘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밀가루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호박만 썰어 넣은, 양념한 간장을 끼얹어 먹던...... 맛이나 비주얼이나 거의 같았기에 칼국수를 먹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엄마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국수 정말 잘 밀지 않았어? 응, 동그랗던 반죽이 방을 가득 채울 정도로 넓어지는 것이 볼 때마다 신기했어. 그걸 접어서 썰면 국수 가락이 되는 것도 신기했지. 엄마가 남겨서 화롯불에 구워줬던 국수 꽁다리 생각난다. 무지 고소하고 맛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치 엄마가 국수를 끓이던 그때로 돌아간 듯해 마음이 따뜻해졌다. 20여 년의 세월 덕분일까? 슬픔으로 내 안에 살고 있던 엄마가 이제는 편안하게 기억할 수 있는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지금은 엄마를 이렇게 편안하게 우리 곁에 머물게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아픔으로 숨겨 놓았던 엄마였는데 오늘은 쉽게 꺼내놓고 이야기하며 그 따뜻함을 다시 느끼고 있다. 보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한없이 엄마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지금은 따뜻하게 다가오는 그리움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 이렇게 엄마를 내 곁에 꺼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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