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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Feb 20. 2024

풍경의 완성

강동 횟집 가려고 하는데 거기 어때요? 호텔 사장님은 삼호교 횟집 추천해 주시던데...”

“다 맛집이에요. 근데 여기서는 보통 어디든 한 번 갔던 곳을 계속 찾더라고요.”

백도 유람을 마치고 동거문도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들은 이야기에 우리는 ‘그럴 리가’ 했었다. 여행 왔는데 다양한 맛을 봐야지.

일단 점심은 강동횟집으로 정했다. 여사장님이 아주머니 한 분과 운영하는 강동횟집은 밑반찬부터 입에 딱 맞았다.  메인요리인 갈치조림은 밥도둑이라 할 정도로 맛있는데 싱싱한 갈치구이도 큰 접시 가득 주셔서 밥상이 풍성했다. 그리고 두 분이 수시로 우리의 상을 살펴보며 반찬을 푸짐하게 채워 주셔서 그 맛에, 그 훈훈한 손길에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멀리까지 배 타고 온 피로까지 확 풀렸다.

아주머니는 거문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능성어회가 좋으니 저녁에 또 오라고 하신다. 같은 집에서? 우리의 망설임을 읽었는지 저녁에는 반찬도 다르게 나온다고, 장사하는 사람이 똑같은 반찬을 내놓지는 않으니 걱정 말고 오란다. 아주머니의 그 말에 넘어가 예약을 하고 말았다.

불탄봉 동백숲길을 걸어 정상까지 트레킹을 마치고 저녁이 되어 다시 강동횟집을 찾았다. 미리 차려놓은 밥상이 우리를 반겼다. 아주머니 말대로 김치류를 제외하곤 반찬이 다 바뀌었다. 푸짐하고 싱싱한 해산물이 그득하였다. 입안에 퍼지는 음식은 점심과는 또 다른 맛이어서 숟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먹는 중에 아주머니가 또 권유한다. 소라 전복죽을 맛있게 끓여 줄 테니 내일 아침에 또 오라는 것. 글쎄, 아침까지? 그런데 마지막에 나온 ‘지리’가 입에 딱 맞는다. 아니 맞는 정도가 아니라 배가 부른데도 감동을 느낄 정도로 맛있다. 그래서  아침도 예약하고 말았다. 아주머니의 손님 관리 능력이 선수급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은 식당 직원이 아니고 잠시 일손을 돕고 있는 사람이란다. 그러면서 자신의 서사를 간단히 풀어놓는다. 아픈 남편 치료차 왔다가 병이 치유되어 거문도에 눌러앉았다고, 배를 사서 고기잡이를 했는데 요즘은 일꾼이 없어서 고기잡이를 쉬고 있다고, 일꾼은 주로 외국인 노동자인데 비자가 만료되고 돌아간 자리에 돌아와야 할 외국인노동자가 코로나 때문에 충원되지 않아 고깃배를 띄울 수가 없어서 강제로 쉬는 중이라 식당에 와서 일손을 보태고 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안타깝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으며 식사하는 밤이 이웃에라도 놀러 온 듯 정겨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슈퍼를 찾는데 주변은 벌써 깜깜하다. 섬이라 일찍 문을 닫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불이 밝다. 닫았을까 걱정했다고 말하니 지긋해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말씀하신다.

“긴긴밤에 뭐 할 일 있다고 문을 벌써 닫겠어요. 그냥 열어 놓으면 동네 사람들도 놀러 오고 그러니 늦게까지 열어 놓지요.”

어째 여기서는 자꾸 이런저런 말을 건네게 될까?

슈퍼 앞의 카페에 들어가니 동네 사람들인 듯 보이는 서너 명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여사장님 혼자 운영하고 있는 카페는 작긴 하지만 아늑하였다. 육지와 달리 빵 종류의 디저트가 없어 아쉬워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며 귤을 주셨다. 누가 먹어보라고 주었다며. 그냥 웃음이 나왔다.

아침에 다시 강동횟집으로 향했다. 미리 전화를 했기에 밥상은 차려져 있다. 자리를 잡으니 거문도 쑥으로 만든 개떡을 한 접시 내어 주신다. 거문도 명물이라서 맛보게 하고 싶었단다. 이러니 우리가 넘어갈 수밖에. 이제는 우리 집밥을 먹듯 익숙해진 밥상머리에서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음식에 대한 철학이 확실하다. 맛있는 음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인사를 나누면서도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놓고 오기 아쉬운 집이었다.

거문도에서의 마지막 끼니는 간단히 치킨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눈앞에 전국에 체인점을 가진 치킨집이 보이기에 그리로 갈까 논의하고 있는데 뒤에서 “치킨집 찾으세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나가다가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단다. 그러면서 다짜고짜 맛있는 치킨집을 소개하여 주겠단다. 친구는 좀 이상하다며 그냥 눈앞에 보이는 치킨집으로 가잔다. 그러나 이 상황이 재미있어 아주머니에게 관심을 보였더니 현지인이 추천하는 집이 ‘찐’ 맛집이라며 다시 권한다. 결국 아주머니의 권유대로 해 보자고 결정하니 치킨집주인에게 바로 전화를 하였다. 잠시 후, 오토바이를 탄 아주머니가 나타나 자신의 가게를 알려준 후 먼저 가서 기름을 올려야 한다며 씽 가버렸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이상하지만 재밌다. 자꾸 웃음이 나왔다. 치킨집은 동네가 그리 크지 않으니 설명대로 금방 찾아갈 수 있었다. 다행히 치킨은 아주머니 추천대로 만족스러웠고, 서비스로 고구마튀김도 듬뿍 주셔서 마음도 배불렀다. 소개한 사람과 어떤 사이인가 물으니 절친 언니란다. 그 모습이 부러워

“이웃끼리 참 끈끈하네요. 행복하시겠어요.” 하고 물으니 원래 토박이는 아니고 이곳에 놀러 왔다가 좋아서 눌러앉아 살게 되었다는 것, 처음엔 섬 특유의 배타적인 면도 느꼈지만 따뜻한 사람들이 많아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답변을 들려준다. 조그만 치킨집에 손님이 우리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내준 것 같다. 다른 때 같으면 우리의 이야기에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것을 싫어했는데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배를 타고 온 시간만큼 일상에서 떨어져 나와서 여유로워진 덕분일까, 아니면 쉽게 곁을 주는 이곳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우리의 시간을 나누게 되었을까......

문득 낮에 찾아갔던 거문도 등대가 떠오른다. 등대는 바다로 빛을 보내어 어부들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존재인데, 어부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인데, 내가 만난 등대는 자신도 빛나고 있었다. 당당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이 파랗게 펼쳐진 바다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있었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지 않는데도 저렇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거문도에서 만난 사람들도 등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자신들의 인성대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거문도에 무한 호감을 갖게 하여 좋은 섬 거문도, 또 가고 싶은 거문도로 만들어 주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지인들이 거문도는 어떠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거문도는 눈이 시도록 푸른 바다와 빨간 동백이 아름다운 섬이야. 그리고 우리를 자꾸 웃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 섬이지. 여행의 기억 속에 사람도 함께 남는 '사람여행'을 할 수 있는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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