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특별한 프로그램은 운영되지 않지만 하룻밤 절에 머물면서 불멍 하면 참 좋을 거예요.”
불멍? 모닥불을 피워 주나 생각했는데 불멍은 ‘법당에 앉아 부처님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평안을 찾는 것’이란다.
마곡사 템플스테이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들은 ‘불멍’이란 말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행할 때 절을 방문하면 법당 밖에서 부처님을 바라보고 인사하는 것으로 끝났는데, 절에 머물게 되니 법당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한껏 기대감을 자아냈다.
절을 한 바퀴 둘러본 후 템플스테이 운영자가 마곡사 불멍 명소로 추천한 영산전의 천불천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불단에 크고 작은 부처님이 천 분이나 빼곡히 앉아 있다. 여기에서 복잡한 머릿속도 정리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어보리라 생각하며 한 분 한 분의 부처님을 바라보려는데 어? 전체적인 모습만 두루뭉술하게 비쳐올 뿐 이상하게 부처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눈은 불상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는 복잡하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음에도 무엇에 쫓기듯 조바심이 나는 날들을 보내면서 한적한 곳에서 여유를 갖고 싶어 선택한 템플스테이였다. 그러나 그 조바심이 여기까지 따라왔는지 아직도 머리는 복잡하고 눈은 불단 위를 방황하고 있었다. ‘멍 때린다’는 것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멍하니 있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심호흡을 하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몰아낸 후 몸의 힘을 빼고 부처님과 눈을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한 분 한 분의 부처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근엄한 부처님, 인자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부처님, 얼굴이 큰 부처님, 목을 빼고 잔뜩 호기심을 보이는 부처님, 앞쪽의 부처님에 밀착하여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는 듯한 부처님, 눈을 감은 채 졸고 있는 부처님..... 그런데 재밌는 것은 부처님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각기 다른 부처님의 표정과 몸짓을 따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눈을 감았다가 웃었다가 목을 빼었다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가...... 눈도 몸도 부처님에게 동화되고 있으니 아, 드디어 불멍의 경지에 이른 것인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을 얻었으니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득도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하며 불멍에 젖어들었다.
그런데 바라볼수록 부처님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개구쟁이 소년처럼, 근엄한 아저씨처럼, 편안한 할아버지처럼. 부처님이라면 분명 속세를 벗어난 성스러운 모습이어야 할 텐데 사람의 표정으로, 몸짓으로 비쳐오는 것이었다. 따뜻한, 기쁜, 고통스러운, 슬픈, 짓궂은 표정을 지닌 사람으로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문득 부처님의 깨달음도 우리의 삶에 대한 고뇌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부처님처럼 우리들도 삶 속에서 평안함을 찾을 수 있음을 알려주려고 저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깨우침을 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멍, 부처님을 만나야 하는데, 인멍,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나온 듯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평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