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자꾸 화가 나. 예전 같으면 화내지 않았을 상황인데 말이야.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렇게 되는 것 같아 걱정돼.”
공방에서 친구를 만나 바느질을 하고 있다. 본래는 벚꽃 활짝 핀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우리의 아지트인 공방에서 보기로 했다. 봄날의 화려한 꽃길도 좋지만 아늑하고 한가한 공방에서의 시간도 괜찮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인데도 유난히 한적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으면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마음도 느긋해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어떤 상황이었는데?”
“요즘 허리가 아파서 정형외과에 다녔거든. 진료 후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한참이 지나도 나를 부르지 않더라구. 내 뒤에 온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것도 보이고. 그래서 내 차례는 언제냐고 물어보니 자기들이 착각해서 차례를 놓쳤다며 다음에 들어가라는 거야.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물어보니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구. 미안해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다른 물리치료를 서비스로 해주겠다는데 맘 상해서 안 한다 했어. 나름의 소소한 저항이었지. 그런데 기다리면서 간호사들을 보니 자기들끼리 엄청 수다를 떨더라구.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화가 나는 거야. 저러느라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거라는 생각이 들며 마구 원망스럽더라고. 그러다 깜짝 놀랐어. 내가 왜 이러지? 이게 뭐라고 이렇게 마음이 끓지? 이왕 벌어진 일이니 그냥 기다리면 될 텐데 하고 말이야. 잠시 후에는 화내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서 자책하며 힘들어했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사실 화내는 게 나쁜 건 아닌데 사람들은 화를 내는 것은 나쁜 감정이라고 생각하더라고. 상담공부를 시작할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감정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나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었어. 말 그대로 ‘화가 나는’ 나의 감정 상태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것을 잘못한 것처럼 자책한다는 거지. 그러면서 힘들어하고.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감정은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이 말 참 위로가 된다. 고마워. 요즘 화내는 나를 돌아보며 나쁘게 변하는 것 같아 우울했는데 조금 편안하게 나를 봐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살아가면서 어떻게 기쁜 날만 있겠어.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그러지. 그럴 땐 화도 내고 울기도 하며 풀어야지. 그게 다 나의 삶인걸. 다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말이야.”
“어, 저거 눈 아니야?”
“정말, 눈이네. 4월에 눈보라가 무슨 일이래?”
아침에는 맑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비가 오다 해가 났다를 반복하더니 이제는 눈보라까지 친다. 참 변덕스러운 날씨다.
“내 텃밭의 상추 어쩌지? 눈에 얼어버릴 것 같아.”
“생명은 강하니까 견뎌내지 않을까? "
“그러길 바라야지. 아님 다시 심으면 되고. 올해 상황이 이러니 받아들여야지 뭐."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달콤하다. 편안하고 흐뭇한 공기가 공방에 흐른다. 거짓말처럼 환하게 비쳐오는 햇살이 새삼스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