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심한 여자의 반전여행

by 경애

몸이 나른하다. 많이 피곤한 것 같진 않은데 책을 읽거나 무언가에 몰두하려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 여행으로 미루어 두었던 모임에 나가거나 그동안 못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틈틈이 집안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멍 때리며 누워 있기도 한다, 그런데도 마음은 편안하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고 이렇게 휴식을 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긴 여행을 잘 마쳤으니. 내 안에 많은 것을 채워왔으니.

돌로미티와 베니스 여행을 다녀왔다. 약 16일간.


돌로미티 10일은 패키지로 가는 트레킹이었고, 베니스 6일은 친구와 둘이 하는 자유여행이었다. 내가 선택하고 계획한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출발 전에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다. ㅡ 물론 이번 여행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나는 떠나기 전에 설렘보다는 부담을 느끼는 편이다. 그럼에도 낯선 이국에서 만나는 색다른 설렘의 유혹을 떨치치 못해 여행을 떠나곤 했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부담 요소는 돌로미티 5일간의 트레킹, 평소 등산을 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하루에 5-6시간씩 5일 연속 등산한 경험은 없기에 매일 그렇게 걷는다는 것이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두 번째 부담 요소는 패키지여행 뒤에 친구와 하기로 한 자유여행, 자유여행을 좋아해서 여러 번 해 보긴 했지만 최근에는 주로 딸들과 함께 해서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주도해야 아니 아무래도 걱정이 많다. 친구는 자유여행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아서 나만 믿고 따라온다고 했고, 나는 버벅거리고 헤매며 다니자고 이야기했지만 그 친구와의 여행경험도 거의 없어서 함께 하는 시간이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관계는 평소와는 또 다를 수가 있으니. 그리고 6월의 유럽 날씨가 아주 더웠기에 고생만 할 것 같은 생각에 괜히 남기로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염려를 가득 안고 떠났던 여행은 다행히도 만족스러웠다.

돌로미티,

5일간 걸었던 돌로미티의 봉우리들과 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떠오른다. 2,000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맞이한 웅장하고 거대한 암벽과 바위산, 푸른 하늘과 구름을 이고 우뚝 선 봉우리가 보여주는 장관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봉우리를 다각도로 바라보며 걷는 하얀 바윗길은 우주의 어느 행성에 온 것처럼 특별한 풍경이었고, 바윗길에 이어진 푸른 초원은 살랑이는 바람을 안고 야생화를 가득 피워 자꾸 발길을 멈추게 했다. 돌로미티에서의 매일매일은 자연이 주는 감동으로 충만함을 느꼈던 날들이었다.

걱정했던 체력적인 부분은 안내하는 가이드가 속도와 코스도 적절히 조절하여 감당할 만했고, 기온도 트레킹 하기에 딱 좋은 날씨여서 쾌적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한국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라는데 산 정상은 추위를 느낄 정도였으니 피서도 겸한 여행이었다.

4시에서 5시까지는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도 트레킹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밝은 날에 돌아와 씻고 쉬거나 쇼핑을 하거나 호텔 주변을 거닐다가 저녁을 먹고 충분히 쉰 덕분에 피로감도 덜했다.

거기에 맛있는 음식이 즐거움을 더 했다. 산장과 지역 맛집에서 먹었던 피자, 스파게티, 리소토, 스테이크, 라자냐, 보리 수프 그 외 기억하지 못하는 전통 음식과 여름이기에 맘껏 먹을 수 있었던 과일까지 생각하면 정말 몸도 마음도 호사를 누린 시간이었다.


베니스의 산타마리아 성당에서 패키지 손님들과 이별하고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부터 우리들의 베니스 여행을 시작하였다. 패키지팀이 떠나고 보호자를 잃은 듯한 허전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여유롭게 베니스 곳곳을 밟으며 우리들만의 여행을 쌓아 나갔다.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와 가루다 호수에 접한 마을인 시르미오네 여행, 베네치아 본섬과 무라노, 부라노섬 등 계획했던 곳을 차근차근 여행하였다.

다행히도 친구와는 여행 스타일이나 쇼핑까지 합이 잘 맞아서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것은 친구가 영어를 잘해서 언어를 책임진다는 것. 거기에서 나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니 여행이 훨씬 수월해졌다. 물론 준비 부족으로 헤매기도 하고 아쉬운 순간도 있었지만, 함께 이야기하고 해결하며 베니스와 베로나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레네 원형경기장에서의 콘서트를 관람하며 특별한 경험에 마냥 행복했고, 헤매며 찾아간 시르미오네를 끼고 있는 가르다호수의 광활함에 새삼 놀라기도 했으며, 수상버스를 타고 베네치아 본섬은 물론 무라노, 부라노섬을 여행하며 베니스의 구석구석의 모습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베니스에서도 맛있는 음식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식전주인 스프릿츠 어패럴과 피자의 맛에 빠져 매일 함께 했고 ㅡ 식전주는 매 끼니마다ㅡ 1일 1 젤라토는 필수였다. 맛있는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도시 곳곳을 걷고 또 걸은 덕분에 이제는 베네치아와 베로나를 누구에게든 안내할 수 있을 것 같다. ㅎㅎ


“너는 어디든 즐겁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에너지도 많고 적극적이니 말이야. ”

여행이 끝나갈 무렵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런가? 나는 소심한 편인데? 그런데 친구의 말을 듣고 나를 돌아보니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걱정이 많지만 여행지에서는 최대한 누리고 느끼기 위해 많은 것을 찾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니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잘 맞을 때 시너지를 얻는 듯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커피와 종교가 그랬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탈리아는 참 좋은 여행지였다. 커피가 너무 맛있어 조식을 먹을 때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 두 잔을 꼭 마셨던 기억, 카사노바가 단골이었다던 유서 깊은 플로리안 카페 등 유명 카페를 찾아 맛있는 커피를 마셨던 기억은 특별하다.

이탈리아 여행은 성당 순례라 할 정도로 성당이 많다. 돌로미티의 아름다운 경관에는 으레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조그만 성당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베니스의 산마르코 성당, 베로나의 성 아나스타시아 성당, 두오모 성당은 당연히 찾아보아야 할 곳이다. 그곳에서 건축과 예술작품을 감상함은 물론 천주교 신자이기에 특별한 성당과 장소에서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는 기쁨도 누릴 수 있어 내 여행은 한껏 풍요로워졌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그곳에만 있는 것을 누리고 깊이 느끼고 싶어서이다, 돌로미티와 베니스에서 나는 또 한 번 그런 시간을 살았다. 그 시간만큼 내 안이 채워졌길....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