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T 14
괴물은 어디에나 있다.
괴물은 누가 만드는 것이며 왜 생겨나는 것일까.
살다 보면 매 순간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괴물들을 만난다. 어느 조직엔가 항상 한 명씩의 괴물이 존재하며 그들은 그림자처럼 어떠한 곳을 가던 우리를 따라온다. 회사에 “사우론”이란 별명을 가진 선배가 있었다. 숨을 쉬기만 해도 악의 기운을 내뿜는 그를 반지의 제왕 속 암흑의 군주 이름을 따 “사우론”이라 불렀다. 그가 데스크를 맡을 때마다 매번 유능한 연출들이 줄줄이 사직서를 냈다. 남겨진 자들은 영혼을 갈아 들어온 회사를 차마 떠날 수 없어 그의 악랄함과 비열함을 견뎌내야만 했다. 말도 안 되는 가혹행위에 저항하는 연출에겐 징계를 내리며 “널 길들이겠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던 사람이었다. 정신과 약을 먹고 있었던 그였기에 한편으론 이해를 해보려고도 했으나 쉽지가 않았다.
어느 날 사우론의 딸이 자신의 아버지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는 세상 자애로운 아버지의 표정으로 사우론과 대립하며 태움을 견뎌내던 내게 자신의 아이에게 방송국 견학을 시켜주고 오라고 했다. 그날 아이에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이야기를 했다. 만인의 괴물이었던 그는 누구보다 자애로운 아버지였다. 괴물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하지만 절대적 괴물의 정의가 성립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이이며 존경받는 부모이며 다정한 친구이기도 한 우리는 때론 괴물이 되기도, 괴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봤다. 작품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것 같아 일부러 어떠한 정보 없이 영화를 관람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각본 사카모토 유지, 음악 사카모토 류이치. 제작진의 이름만으로도 기대감을 충분히 일으키는 영화는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할 자격이 충분히 있음을 상영 내내 증명하고 있었다.
“괴물”의 각본은 훌륭했다. 영화는 엄마 사오리, 담임 호리, 아이, 이 셋의 관점인 3부로 나뉜다. 영화의 구성은 재밌게도 다른 셋의 관점을 통해 같은 사건이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를 따라가며 믿었던 우리의 진실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한다. 양파 같았던 거대한 진실은 첫 번째 화자인엄마의 관점을 통해 완전히 왜곡되고 그다음 어른인 호리를 통해 새로운 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결국 아이들의 세계가 설명되면서“어른들이 알 수 없었던 진실”의 내막을 설명해 준다. 이 영화는 구성의 묘도 신의 한 수였지만 각자의 캐릭터가 갖는 태생적 배경을 통해 강력한 응원의 기제를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도입부는 한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고 화재 현장을 지켜보는 싱글맘 사오리와 초등학생 미나토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싱글맘으로 힘든 세탁소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엄마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를 아빠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사랑과 이해로 키워왔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미나토가 교사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음을 알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학교를 찾아간다. 적극적으로 진상 규명이 이뤄질 거라는 사오리의 기대와는 달리 넋이 빠진 듯한 교장과 뭔가 이상한 학교의 분위기가 피해자 아들의 상황에 진심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화가 난 사오리는 학교를 재차 방문하지만 담임교사인 호리의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와 자신의 아들 미나토가 오히려 피해자가 아닌 학폭 가해자라는 이야기에 더욱 분노한다.영화는 여기부터 관객으로 하여금 진짜 괴물은 누구이며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두 번째 관점은 미나토의 담임인 호리 선생으로 넘어간다. 호리의 관점 역시 영화 도입부 화재가 있던 날부터 설명이 된다. 이전 첫 번째 사오리의 관점에서 호리 선생은화재 사건 당시 걸스바에 갔다는 소문을 낳은 장본인인 데다 자신의 아이인 미나토에게 폭력을 행사하고도 뉘우치지 못하는 선생인,함량 미달 가해자 교사로 묘사되었다.하지만 영화의 2부에 해당하는 호리의 관점에서 관객들은 화재가 나던 날 호리가 걸스바에 갔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호리는 가해자 교사가 아닌,진실로 아이를 사랑하는 교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호리의 관점으로 넘어오면서 관객은 영화가 원하는 방식대로 우리는 속아왔으며 심지어 이토록 선한 선생을 가해자 교사로 오해했음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한다.호리는 사오리의 고발로 결국 학교에서 해임됐고 가해자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 간다.
세 번째 관점은 미나토와 그의 친구인 요리, 아이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아이들의 관점으로 넘어가는 3부가 되면서 영화는 혼란스러웠던 관객들에게 흩어져있던 퍼즐 조각의 설명서를 던져준다. 한편 1,2부 진짜 괴물이 누구인가를 찾던 관객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영화는 괴물 찾기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의 이면을 알지 못했기에진실을 보지 못했던 어른들은 세상의 진실과 편견 앞에 행복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해짐을 느낀다. 이야기가 3부에 이르러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 요리와 그런 요리의 친구가 되어주는 미나토의 감정과 서사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과 어른으로써의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요리는 사랑스러운 아이지만 남들과는 다른 성정체성을 갖고 있고 요리의 아버지는 그런 요리를 돼지의 뇌를 가졌다며 학대한다. 어른들의 과오와 편견, 오해로 인해 아이들의 마음이 다쳐가는 과정은“어른”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했다는 행위들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위선적이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영화의 말미 태풍이 찾아오고 태풍 속에 사라진 아이들을 찾기 위해 엄마인 사오리와 선생 호리는 태풍을 헤치고아이들이 있을 법한 산속으로 달려가나 아이들을 찾지 못한다. 태풍이 불어닥치는 재난 속에서 미나토와 요리는 둘 만의 아지트였던 폐기차 안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이후 그들은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아름다운 들판을 뛰어간다.아이들의 웃음과 행복한 광경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펼쳐진다. 엔딩 속 아이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
“우린 다시 태어난 건가?”
“아니, 우리 그대로인 것 같은데..”
“그래? 다행이다...”
영화“괴물”의 엔딩을 열린 결말로 보는데 혹자는 결국 아이들이 태풍으로 죽었고 그들이 태풍 속을 빠져나와 햇살 속에서뛰어노는 행복한 모습이 판타지라고 말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또한 엔딩을 연기하는 아이들이 자신이 죽은 거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그렇지 않으며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연기를 하라고 말했다 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많은 울림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이며 괴물은 누구인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면성,어른들은 몰랐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었던 비밀,세상의 편견과 행복의 가치 등 수많은 메시지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사랑스러운 아이 요리와 미나토에게어른으로써 미안하단 말을 하고 싶었다.너무 어리기에 정확하게 인지할 순 없지만남들과는 다른 동성의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어쩌면 스스로 괴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은 양면적이다. 누군가의 오해로 가해자인 줄 알았던 사람이 피해자이고 사회가 정해놓은 암묵적 룰에 괴물로 불리는 사람이 실제 괴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누구보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이해한다고 자부한 엄마 사오리는 철저히 자신의 아들인 미나토의 마음을 몰랐고 심지어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했던 선생을 해임시켰다.아이를 사랑하고 누구보다 정확한 정의의 잣대를 가져야 할 교장은 알고 보니 자신의 손녀를 차로 치어 죽게 했음에도 남편이 대신 그 죗값을 치르고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살고 있는 싱글맘 사오리, 누구보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선생 호리, 순수하고 모범적인 아이 미나토와 요리.알고 보면 정말로 괜찮은 “사람”인 이들은 안쓰럽게도 누구 하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그들이 속한 조직 속에 안착륙하지 못한다. 관객의 마음을 훔친 이토록 외롭고 아름다운 영혼들이 영화 속에서 그야말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기에 영화의 말미에 펼쳐지는 미나토와 요리의 우정이 우리를 더욱 울컥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을 위해 썼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응원을 보내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