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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야 Apr 29. 2024

그림자를 낳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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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낳은 빛     


빛과 그림자는 필연적 존재다.

 빛이 없다면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고

 그림자가 없음은 빛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정신분석학에서 그림자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프로이트는 트라우마, 갈등, 유년 시절의 경험 등이

 내면의 그림자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림자를 인식하고 다루는 것이

 인간의 정신적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칼 융(Carl G. Jung)은 

그림자는

 우리의 열등감과 페르소나, 이상과 갈등이 생기기 때문에 

무의식 세계에 미분화된 상태로 존재하는 부정적 요소라 했다.

 또한 그림자는 억압되고 인식되지 않는 한 타인에게 투사되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고 했다.      


안데르센의 동화 중 “그림자”라는 작품이 있다. 

동화 “그림자”는 그림자의 덫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기 그림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한 학자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학자는 힘겹게 지내다 

우연한 일로 자신의 그림자와 헤어지게 된다. 

학문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피폐하게 살던 학자에게 

어느 날 자신의 그림자가 찾아오는데

 그림자는 온 세상의 비밀을 알며, 

사회 경제적으로 학자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당신은 세상을 잘 몰라요. 어때요?

 내 그림자가 되어 여행을 떠나보는 게?”

자신보다 성공해 돌아온 동화 속 “그림자”가 그림자의 주인인 학자에게 말했다. 

결국 학자는 그림자와 여행을 떠나고

 그림자는 주인이 되고 학자는 그림자의 그림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후 학자의 지식으로 이웃 나라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된 그림자는

 자신의 존재의 비밀을 알고 있는 학자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강요하지만

 학자는 이를 거부하고, 

학자는 그런 그림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성공한 그림자는 자신의 주인인 학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태어나서부터 당신만 따라다녔어요.

 그런데 당신이 말했어요.

 나도 이제 다 컸으니 혼자서 세상에 나갈 수 있다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내 길을 간 거랍니다.”      



원작자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은

 1805년 4월 2일, 덴마크에서 태어났다. 

구두 수선공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의 아이로 태어난

 안데르센의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11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이후 재혼한 어머니와도 헤어진 안데르센은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힘든 생활을 살았다. 

본인이 살아온 인생사가

 자기 작품의 최고의 주석이 될 것이라 이야기했던 

안데르센의 동화는 

허구이지만 단 하나도 상상이 아닌

 본인이 보고 겪고 존재했던 일상의 단면이었다고 말했다.   

   

전기 작가 재키 울슐라거는

 “안데르센은 “성공한 ‘미운 오리새끼’이며, 

고결한 ‘인어공주’이다.

 ‘꿋꿋한 양철 병정’이자, 

왕의 사랑을 받는 ‘나이팅게일’이며, 

악마 같은 ‘그림자’이다”라고 말했다. 

안데르센은 인간 세상에 추악한 면모를 모두 겪고 알고 있지만

 세상의 선함과 아름다움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동화 “그림자”의 주인공 학자를 통해 자기 모습을 투영시켰다.

 안데르센은 자신이 경계했던 위선이 

어느덧 자기 안에서 살아 움직이면서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는 내용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모두를 위한 동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H.C 안데르센 문학상 수상 연설 중 

안데르센의 그림자 이야기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림자를 피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진정으로 성장하고 성숙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진 출처 후지이로 세이지 오사카 파노라마전>


후지이로 세이지 탄생 100주년 오사카 파노라마전이 열렸다.

100세의 현역 작가인 후지이로 세이지는

 동양의 “디즈니”로 불리는 카게에의 거장이다. 

그의 전시의 테마는 “빛과 그림자”이다. 

그는 전시회 세션에

 “빛과 그림자는 인생 그 자체, 

우주 그 자체 나는 빛과 그림자로 자연의 아름다움, 

살아있는 생명의 소중함을 그리는 것과 동시에 인생을 그리고 싶다.”

라고 적어 놓았다.    

<사진 출처: 후지이로 세이지 오사카 파노라마전>  

그의 작품은 “카게에”라는 그림자 회화이다.

 면도날로 종이를 일일이 오려 트레싱지를 덧대 빛을 투과시킨다. 

시작은 모노크롬 작품, 흑과 백의 세계로 

새카만 실루엣과 빛이 만나는 지점들이 인상적인 동화들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주로 도깨비나 요정 같은 환상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실제 전래동화의 스토리를 구현하는 것들이 많아

 그의 작품은 따뜻하면서도 교훈적이었다.     

<사진 출처 후지이로 세이지 오사카 파노라마전>

흑백의 세계에서 다채로운 색까지 여러 색의 향연 속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빛과 그림자의 어울림이었다.

 빛을 투과해 재료의 질감을 보여주고, 

그림자의 디테일은 빛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둘의 어울림이 좋을수록 그림의 감동은 배가 됐다. 

어두운 그림 속에서 따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따뜻한 그림 속엔 어두움의 이야기가 배어 있었다. 

빛과 그림자의 어울림 속에 

때로는 아름다운 동화가 때로는 잔혹 동화가 완성되었다. 


<사진 출처 후지이로 세이지 오사카 파노라마전>


빛은 그림자를 낳는다. 

그림자로 인해 빛의 존재가 더욱 빛난다. 

그림자를 맞닥뜨려야 빛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

 시대는 달라도 안데르센의 동화와 후지이로 세이지의 전시는 다른 듯 닮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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