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나무로 빚는 에세이
어릴 적 살았던 집에는 꽤 너른 마당이 있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차례로 살구나무, 대추나무, 배나무, 라일락, 그리고 마지막으로 앵두나무가 있었고, 그 사이 사이마다 장미, 국화, 백합이 계절마다 꽃을 피웠다. 대추나무는 두 그루가 있었는데 누가 봐도 그 모양이 달랐고, 하나는 동글동글한 열매를, 다른 하나는 길쭉길쭉한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두 나무 모두 키가 전봇대만큼이나 컸고, 특히 아버지가 장대로 대추를 털 때는 후드득 떨어지는 대추에 머리를 맞기 일쑤여서, 아무리 예쁜 대추가 달린다고 해도 키 작은 꼬마에게는 친해지기가 어려운 상대였다. 살구나무는 병에 걸렸는지 열매가 잘 열리지 않았고, 그나마 열린 살구도 먹으려 치면 벌레가 나왔기에 그 이후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배나무에 열린 배도 작고 딱딱한 것이 그다지 맛있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나무는 단연코 앵두나무였다. 의자를 놓고 올라가면 앵두를 딸 수 있을 만큼은 되었기에 꼬마에게는 가장 만만한 나무이기도 했고, 한여름에 조그맣고 빨간 열매가 열리면 그 모양과 색이 아기 입술만큼이나 예뻤다.
한여름 마당에서 놀다가 심심할 때 한 움큼 따서 먹으면, 새콤한 맛이 온몸에 퍼지는 듯했다. 키 큰 어른에게 따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칼로 껍질을 까는 번거로움도 없었고, 한참 따 먹어도 티가 나지 않을 만큼 열매도 주렁주렁 달렸으니 꼬마에게는 그만한 나무도 없었다. 한창 열매가 익을 때쯤 되면 어머니와 나는 바가지를 들고 의자 위에 올라가 앵두를 땄다. 커다란 대야가 다 찰 정도로 많았다. 수돗가에서 깨끗하게 씻고 나면 어머니는 그걸로 종일 잼을 만드셨다. 그것이 내가 먹어본 최초의 잼이었고, 우리 집에서는 잼이라고 하면 으레 앵두 잼을 말하였기에, 나는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잼이란 원래 앵두로 만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냉장고를 열면 항상 잼이 있었기에, 그게 그리 귀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집을 떠나 큰 도시로 오면서, 마트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야, 앵두나무와 잼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났다.
어린 시절 그 나무는 이제 볼 수 없지만, 등산이나 산책을 하다가 앵두나무를 마주치면 기쁨과 반가움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여러 나무 중에 섞여 있어도 금방 눈에 띄는 건 우연이 아니다. 한여름 빨간 앵두가 달려있다면 쉽게 구별이 되겠지만, 한겨울 잎이 모두 떨어져 있어도 나무껍질과 가지가 뻗어나간 모양만으로 알아볼 수가 있다. 발길을 멈추고 한동안 바라보면 나는 작고 작은 꼬마가 된다.
몇 해 전, 겨울 산행을 하다가 어린 시절 내 오랜 친구를 옮겨 심은 것처럼 똑같이 생긴 앵두나무를 만나고 나서, 그해 여름 다시 찾아갔던 적이 있다. 궁금하고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 험한 산속에서 무사히 지내고 있는지 쓸데없는 걱정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조금 늦었던 탓일까? 새들이 쪼아 먹고 남은, 몇 안 되는 앵두가 달린 그 나무를 다시 보았을 때, 반가움과 함께 애처로운 감정이 뒤섞여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나무를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마루에 걸터앉아 햇빛에 반짝거리는 앵두를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던 초등학교 1학년의 내가 있었다. 그해 늦봄, 어머니는 건강이 몹시 안 좋아지셔서 6개월 정도 멀리 외할머니댁으로 요양을 가셨다. 앵두나무에는 앵두가 주렁주렁 달렸지만, 누구도 그 앵두를 따지 않았다. 매년 달콤한 향을 풍기며 한 솥 끓여 만들었던 잼도 없었다. 어머니가 몹시도 보고 싶을 때면, 어머니가 입던 옷에 코를 파묻고 한껏 냄새를 맡다가, 마루에 앉아 앵두나무를 바라보았다. 하루하루, 앵두는 조금씩 사라졌다. 참새들이 쪼아 먹고, 장맛비에 떨어졌고, 그나마 가지에 매달려 있던 것들은 뜨거운 태양에 쪼그라들어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신 건 앵두나무 잎조차도 다 떨어진 가을이었다. 그동안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돌보아 주시던 사촌 누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마당 한가운데서 안아주며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하였다.
“오늘 저녁에 엄마가 오신다고 했어. 아빠가 퇴근하고 터미널에 가서 엄마랑 같이 오실 거야. 좋지? 그런데 누나는 오늘 하룻밤만 더 자면 가야 해. 네가 보고 싶어서 어쩌니.”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누님과 그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누님은 그때 내가 환호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고 했다. 정 많은 사촌 누님은, 그때 그 얘기를 전해주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날 저녁 대문을 열고 어머니가 나타나셨을 때, 뛰쳐나가 안겨서 맡았던 어머니의 냄새는 앵두 잼보다 더 진하고 진하였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올 때까지 나는 어머니께 아까운 앵두를 새들이 다 먹었다며,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하였고, 어머니는 내년엔 앵두를 꼭 같이 따자고 약속하셨다.
다음 해 여름, 앵두를 따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어머니의 8남매 중 가장 친하게 지내셨던 이모였다. 이모는 음악 선생님이셨기에, 우리는 피아노 이모라고 불렀다. 피아노 이모는 빨간 앵두를 보며 감탄을 연발하시고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제 보니 네가 앵두랑 닮았구나. 저기 의자 위에 올라가서 서봐. 이모가 예쁘게 사진 찍어줄게.”
나는 부끄럽다며 도망갔지만, 이모의 끈질긴 설득 끝에 나무 옆에서 포즈를 취하였다. “찰칵”. 이모는 그렇게 찍은 사진을 예쁜 액자에 넣어 주셨다. 어린 꼬마와 앵두나무가 그렇게 지금도 사진으로 남아 있다. 칠순이 넘은 이모는 지금도 나만 보면 그 얘기를 하신다.
“그때 너랑 앵두가 정말 예뻤는데 말이야.”
오늘도 아내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앵두나무를 발견했다. 동네 가까운 곳에, 이렇게 자라고 있을 줄은 몰랐다. 반가운 나머지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5월 초. 꽃은 지고, 하얀 솜털이 돋은 잎은 작고 여린 초록색 열매를 보호하듯 덮고 있다. 내가 설명하자 아내도 신기하듯 열매를 바라본다. 산책하는 내내 앵두나무에 얽힌 나의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주었다. 다음 달쯤 되면 여기에도 앵두가 빨갛게 달려있을 것이다. 산책이 즐거운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