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무수히 스쳐 지나가는 많은 장면들, 그중에는 분명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오래 머물러 있고 싶고,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장면, 눈을 감으면 샘물처럼 올라와 가라앉지 않는 장면. 그중 하나가 밀레의 ‘첫걸음’(First Steps)이다. 어떤 이유로 이 그림을 보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그림 앞에 나는 한참 머물러 있었다.
그림 속 엄마는 아이의 허리를 꽉 잡지 않았다. 그저 살짝 손을 대고, 너는 할 수 있을 거라는 암시를 주는 것 같다. 몇 걸음 뒤 맞은편에 있는 아빠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히고 두 팔을 벌린다. 행여나 오는 거리가 멀까, 팔을 뻗어 거리를 좁히고, 조금이라도 빨리 안아줄 준비를 한다. 이제 아이는 준비를 마치고 첫걸음을 뗀다.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들지만 망설이지 않는다. 처음 가보는 길, 아이는 아마도 곧 넘어질 것이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한 발짝씩 다가가 아빠의 품 안에 안겼을 때, 아이는 얼마나 큰 자부심을 느낄 것이며, 엄마와 아빠는 얼마나 큰 기쁨을 느낄까.
첫걸음(First Steps), Jean-François Millet (Google Arts and Culture, The Cleveland Museum of Art)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내 무릎은 늘 상처투성이였다. 아침을 먹으면 무조건 밖에 나가 노는 게 일이었고,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무릎은 까져 있었다. 딱지가 덮일 새도 없이 다음 날 또 나가 놀았으니 바람 잘 날 없는 무릎은 당연한 나의 일상이었다. 이런 무릎이 매끈해진 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인 듯하다. 따뜻했던 어느 날,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평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매끈해진 무릎을 보고 한참 동안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는 손바닥으로 무릎은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그건 이제 넘어지지 않고 달리기를 할 수 있다는 일종의 표식이었고,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 자부심의 시작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 먼지 쌓인 기억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아이를 기르면서였다. 머리도 가누지 못했던, 팔뚝보다 작은 우리 집 아이가 몸을 뒤집고, 기고, 일어났다. 얼마나 좋았을까. 손뼉을 치며 까르르 웃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이는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자부심보다 아마도 백 배는 더 큰 기쁨을 맛보는 듯했다. 그렇게 아이는 일어나고 넘어지고 또 일어났다. 그렇게 하기를 수천 번, 아니 셀 수도 없이 반복하며 아이는 커갔다. 그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고, 밀레의 그림을 보았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이유였다.
영어에는 다시 일어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resist이다. 이 단어 뒤쪽에 보이는 ‘-sist’는 고대영어 ‘sta-’가 변형된 말이다. ‘sta-’는 ‘일어서다’라는 뜻인데 stand가 여기에서 생겼다. ‘-sist’로 끝나는 단어는 꽤 많다. 돕는다는 뜻의 assist와 끈질기게 계속한다는 뜻의 persist가 대표적이다. 어원으로 풀어보면 assist는 좋아하는 쪽에(as-) 서 있다(-sist)는 뜻이고, persist는 처음부터 끝까지(per-) 서 있다(-sist)는 뜻이다. 다시 resist로 돌아오면, 이 단어는 ‘서 있다’(-sist) 앞에 ‘다시’라는 뜻의 접두사 ‘re-’가 붙었으니, 어원적으로 ‘다시 일어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resist는 오늘날 저항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으니, 언뜻 보면 김수영의 시 ‘풀’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단어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우리가 태어나서 걷기까지, 셀 수 없이 넘어지고 일어섰던 지극히 일상적인 삶이 바로 저항의 시작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이라는 한자는 막아서 겨룬다는 뜻이지만 resist는 모든 생명의 시작, 곧 중력을 딛고 일어나는 생명력을 강조한다. 특히 ‘다시’는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첫걸음을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시’를 했을까.
고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친구가 한숨을 쉬며 한 말이 생각났다. 딸이 고등학교를 입한 한 후에 많이 변했다고 했다.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한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아이는 곧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면 왼쪽으로 가는 청개구리가 되었단다. 하루는 퇴근길에 딸이 진한 화장을 하고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집에 와서 아이 엄마한테 물어보니 저녁 먹고 독서실에 갔다고 하더라고. 봤다는 얘기는 안 했지. 거의 매일 전쟁이야. 사춘기 반항을 제대로 하네. 나 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얘기를 듣다 보니 대학 때 철학 강의를 하던 교수님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 교수님도 중고등학생을 키우고 있었는데, 애들이 반항을 제대로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 철학자는 그 반항을 보면서 아이들이 기특하고 흐뭇하다고 하셨다. 괴변 같았지만, 꽤 솔깃했다. 부모의 잔소리에 또박또박 대꾸하는 말이 철학적으로 꽤 논리적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런 저항 의식을 집에서라도 키워 주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는 자식 키우는 얘기를 반찬 삼아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애들이 뭐라도 혼자 해 보려고 한다는 게 다행이지 않겠냐며 서로의 마음을 다독였던 것이다.
그 후로 한 달쯤 뒤, 친구네 가족과 식사할 기회가 생겼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같이 보아왔던 사이라, 고등학생 아이의 근황이 궁금했던 터였다. 학교 생활이 힘들지 않으냐는 내 말에 친구 딸이 발랄하게 대답했다.
“요즘 우리 엄마랑 아빠가 이상해요. 예전엔 이래라저래라 잔소리 엄청나게 했거든요. 요즘은 너 알아서 해라, 이러고 아무 말을 안 해요. 무서워 죽겠어요. 저 어떻게 해요?”
급반전된 얘기를 듣고 나니, 밀레의 그림이 다시 떠올랐다. 친구 부부는 작전을 제대로 세운 모양이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오늘도 조마조마하다. 제대로 걸어갈 수나 있을까. 넘어져 상처라도 나면 어떡할까. 그쪽 길보다는 이쪽 길이 더 편한데…. 마음이 여기저기 갈라진다. 그럼에도 이 세상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오늘도 소망한다. 우리 아이들이 중력의 힘을 딛고 다시 한번 일어나 달려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