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취업도 못했는데
마침내 미국 영주권 비자를 받아, 20시간에 가까운 비행 끝에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에서 미리 찾아두었던 셰어하우스에 콜택시를 타고 도착하니 밤 8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임시로 한 달간 예약했던 숙소는 뉴욕 퀸즈 Jackson Heights에 위치한 개인 집이었습니다. (오늘 다시 검색해 보니 올해 뉴욕 시내에서 처음으로... 사건이 발생한 지역이 그곳이라고 뜨네요. 그 시절 동네 분위기를 떠올려봐도 많이 어두웠습니다.) 교사로 퇴직한 필리핀 출신 할머니가 혼자 사는 2층 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1인실을 한 달간 $1,000을 내고 렌트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이미 제가 예약했던 방은 다른 사람이 들어갔다며 투 베드룸을 주는 겁니다. 투베드룸인데 같은 가격이니 제 쪽이 이득이라면서요. 그저 피곤했던 저는 그 시간에 다른 집을 구하긴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그냥 받아들이고 선불로 집세를 냈습니다.
집주인 할머니가 문만 열어주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문자나 전화하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말이죠. 저는 일단 제게 배정된 1층에 위치한 방에 제 짐을 풀고 화장실은 어딘지, 냉장고 사용 규칙은 무엇인지,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몇 번은 대답을 해주던 집주인이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뭐 이렇게 알고 싶은 게 많냐고 하면서요. 그러다 밤 12시쯤, 시차로 인해 제가 잠을 못 자고 있다가 잠시 2층에 있던 화장실을 간 사이에, 제 방 문을 열쇠로 잠가버린 겁니다!
화장실을 가기 전에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 열쇠를 챙겼었는데, 덕분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모든 게 너무 무서워지는 겁니다. 집주인이 언제든 문을 따고 들어올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제가 예상하지 못하는 돌발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제 방 옆이 부엌이었는데, 그 집주인에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기척과 칼 등의 식기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와 굉장한 공포감에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그 집을 다음 날 나갈 테니 하룻 치를 차감한 집세를 돌려달라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그럴 순 없으니 나갈 거면 그냥 저만 나가라는 (제 입장에서 듣기엔) 뻔뻔한 답을 받았습니다. 저를 위해 선심을 써서 예약한 방보다 큰 투베드룸을 준 건데 괘씸하다고 하더군요. (저는 어차피 혼자였는데 투베드룸이 무슨 소용입니까.)
결국 여러분이 TV에서 많이 보셨던 NYPD에 신고를 했고, 경찰관들이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경찰에게 발생한 상황에 대해 다 설명해 줬지만, 당연히 세상에 제 편은 없었습니다. 경찰관들은 아직 집주인이 제 몸에 직접적으로 상해를 일으킨 건 아니기에 자기들도 할 수 있는 건 없으며, 집세는 알아서 잘 대화해서 돌려받으라는 말을 하고 떠났습니다.
낯선 땅에 외국인 신분으로 그저 혼자였던 저는 모든 게 무서웠습니다. 과장된 사고라고 할지 모르지만 언제든 집주인 할머니가 칼이나 총과 같은 흉기로 위협해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습니다. 결국 미국에 도착한 첫날밤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결국 한 달 치 월세를 포기하고 그 지옥 같은 집을 도망치듯 떠나 Jamaica의 호텔(이라고 쓰여있었지만 모텔이었던)로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1,000는 한국에서 한 달을 꼬박 일하고 생활비를 최대한 절약해야 해야 모을 수 있었던 큰돈입니다. 지금도 무척 큰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속상하고 억울했지만, 손실을 보더라도 제 목숨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이 들었기에 망설임 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이틀간 비싸고 후진 Jamaica의 호텔에서 기거하며 새로 지낼 곳을 찾아다녔고, 결국 새로운 셰어하우스를 찾아 옆동네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1층에 방 3개 (남녀 공용)와 부엌, 2층에 방 3개 (여자만), 화장실은 층별 1개가 있었으나 거실 같은 건 없던, 애초에 고시원 목적으로 세워진 듯한 집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제 방이 가장 작은 방이었는데, 창문이 있었으나 열면 손 한 뼘 되는 거리에 옆집 벽이 위치했던 (...) 막막함이 기억납니다. 문 열면 바로 매트리스가 있을 만큼 작은 방이라 걸어 다닐 곳도 없었지만 다행히 천장이 높아 덜 답답했습니다. 침대 프레임도 없이 그저 매트리스만 바닥에 떡 하니 있었던 작은 방 하나 렌트하는데 그 시절에 한 달에 $715 정도 냈던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뉴욕 생활과 너무나 달랐지만 그래도 이전에 겪었던 공포는 이어지지 않으니 괜찮을 거라는 마음 하나로 그곳에서 1년이 넘는 시간을 버텼네요. (대신 다른 사건이 터졌죠. 셰어하우스에서의 생활이란...)
취업해서 출근하기 전까지 월세를 돌려받기 위해 법원에도 가보고 무료 변호사 상담도 받아봤지만 역시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집주인이 미웠고, 가진 게 없어서 불안했던 제 모습이 속상했습니다. 그 감정은 지금까지도 여전합니다. 다만 그 끔찍한 경험을 통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배웠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너무나 무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되돌아볼 일이 없었으면 할 정도로요. 30대 중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겁먹지 않고 대처할 자신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취업을 위해 뉴욕에 가시는 분들은 돈 조금 아낀다고 저처럼 홈스테이나 셰어하우스로 바로 들어가시기보단, 좀 더 안전이 보장된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에서 며칠 지내시면서 주변 상황을 몸소 파악하고 집을 구해서 들어가신다면 위와 같은 불쾌한 경험을 피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충격과 공포가 너무 큰 나머지 주변 모든 걸 의심하느라 배가 고픈 줄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았더니 시간이 내일로 그다음 날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 월세 사기를 당했지만,
3일 차에 (작지만) 내 한 몸 뉘일 보금자리를 찾았고,
4일 차에 하늘이 회색인 동네에 위치한 뉴욕 시립 병원 중 한 곳에서 면접을 보았으며,
5일 차에 취업이 확정되었습니다.
잔뜩 쪼그라든 심장과 오그라든 어깨를 감싸고
용기를 내어 걸어간 그 길에 대해 다음 글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