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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하마 Jan 14. 2024

미국 간호사 면접

얘, 너 취미가 뭐니?

이전의 불쾌한 쉐어하우스 경험을 뒤로하고 겨우 새로운 안식처를 구해 막 이사를 마친 참에 저를 고용한 미국 의료 인력 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인력 사무소 담당자: "너가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할 것 같아서 근무라도 빨리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가 뉴욕 시립 병원 중 한군데에 면접을 잡았어. 내일 9시까지 그 병원 간호부로 찾아가면 돼."


 제가 일을 시작해야 그들에게도 수입이 생기기 때문에 저를 빨리 취업시키는게 그들의 주 목적이었겠지만, 그래도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라 나름 큰 위로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한국에서 대학 병원 면접을 봤을 때 처럼 승무원 머리에 정장을 차려입고 면접 볼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막 미국에 도착했고, 미국에서의 첫 면접이었다보니 꽤 기합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고 단정하게만 입고 가면 될 것 같아요.)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1시간 만에 도착을 했습니다. 지하철 출구를 나와보니 회색 하늘에 가운데 도로를 중심으로 갈색 벽돌 건물이 양쪽에 끝없이 배열되어 있었습니다. 길에 드러누워 있는 노숙자들도 많았고, 그 주변에서 아시안은 저 하나 뿐이라 상당한 긴장감에 빠른 걸음으로 병원 건물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면접 장소에 도착했고, 면접은 2번에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1차로 unit manager를 만나 자기소개를 하고, 일하고 싶은 희망 부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이전에 중환자실 근무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명확히 전달했습니다. 그 다음 2차로는 간호부 부장이 들어와서 인성 중심의 질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문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간호부 부장: "넌 취미가 뭐야?"

: "난 걷는거 좋아해."

간호부 부장: "에이, 그게 뭐야. 그거 가지고 어떻게 스트레스가 풀려? 말도 안되는 소리하네." (뭔 멍멍이 소리하냐는 표정)

: "왜 걷는 걸로 스트레스가 안풀린다고 생각해? 걸어다니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경도 하고 운동도 되고 얼마나 좋은데!!!" (버럭)


운동에 뛰어난 소질은 없지만 걷는 것에만은 늘 진심이었던 저는 면접관의 도발에 넘어가서 결국 그녀에게 공격적인 어투로 반박하고 말았습니다. 2초의 정적 후 저는 느꼈습니다. '망했다...'


곧이어 1차 면접을 진행했던 unit manager가 들어오더군요. Unit manager와 간호부 부장이 둘이서 쑥덕쑥덕거리더니 저를 보고 말합니다.

Unit manager: "너 아까 나랑 이야기할 때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싶댔잖아. 근데 너 경력을 보니까 중환자실은 안될 것 같고 대신 중환자실 옆에 나름 중증도 높은 병동으로 보내줄게."

간호부 부장: (끄덕 끄덕)


왜 중환자실은 안되냐며 물어도 보고 어필도 했지만 '너는 중환자실에 갈 깜냥이 안된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으나 언제 다른 병원에서 면접이 가능할지 기약도 없고 당장 취업이 급하기도 했던 저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offer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같은 날 저보다 먼저 면접을 본, 같은 인력 사무소에 고용된 다른 한국인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한국에서 간호사로 임상 경력을 쌓아 미국에 온 저와는 다르게, 미국에서 간호 대학을 졸업하고 아무런 경력없이 처음 취업을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중환자실로 배정되었습니다. 그 병원에서 간호사를 각 병동에 배정하는 기준이 과연 무엇이었을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배정된 병동에 가서 일하며 보니 더더욱 모를 일이었습니다. 중환자실 간호사들보다 더 대단한 능력의 간호사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죠. 심지어 저희들끼리는 이런 농담도 종종했습니다. "이 병동에서 살아남으면 세계 어딜 가도 살아남을 수 있어!"


오히려 '중환자실 대신 그 병동에 가게 되어 운이 좋았던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땐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그 병동에서의 근무 경험을 통해 간호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응급 상황이 팡팡 터지는 급성기 병동 그 자체였지만 주변엔 늘 좋은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 어떤 상황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합이 맞는 동료, 상부상조하는 팀은 사랑입니다!


이제 슬슬 병원 이야기가 시작되려고 하네요. 다음 글에서는 병원 오리엔테이션에 대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Michal B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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