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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Jan 13. 2024

우주의 몽타주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이라 하면 클래식 전공자들도 실제 연주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동시대에 활동했고 같은 러시아 출신인 차이코프스키의 웅장하고 비통한 교향곡에 가려서일지, 작곡가 본인의 열정적인 피아노 협주곡에 가려서일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은 비교적 많이 연주되지 않는다. 내가 이 곡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졸업을 위해 졸업곡을 쓰던 시점이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작품인 만큼 오케스트라 편성의 교향곡으로 작곡하기로 마음을 먹고 세상의 모든 교향곡들을 찾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곡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다.

    '라흐마니노프' 하면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으로 설명이 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세계적인 콩쿨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우승했을 때 연주했던 곡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 본인이 피아니스트였고, 본인이 연주하기 위해 이 곡을 만들어서 피아노 음악에서 특별히 성공했지만, 그의 교향곡은 피아노 협주곡 못지않게 위대한 보물과 같은 음악이다.




    교향곡은 서양의 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 등의 모든 악기군의 악기가 편성될 수 있는 음악으로, 보통 4악장(챕터)으로 작곡되는 경우가 많다. 각 악장마다 형식이 다른데, 이 형식의 차이를 알고 교향곡의 흐름을 알면 더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아래는 일반적인 클래식 교향곡의 악장별 느낌이다. 각 악장이 구별되어 있지만 위대한 작곡가들은 '음'이라는 재료로 건축을 하는 '소리의 건축가'들이라 모두 하나로 이어지게 설계를 해놓았다.


1악장: 소나타 형식(정반합​의 원리에 의한 형식이다). 음악으로 건축을 한다. 여러 음을 한 데로 뭉쳐 '주제 동기'라는 벽돌을 만든다. ’뽀로로‘ 주제가를 예로 들면 ’노는게 제일 좋아‘로 볼 수 있다. 그 벽돌을 이리저리 쌓아 벽과 방을 만들고 위아래로, 혹은 양옆으로 확장하여 하나의 완성된 집을 만드는 과정을 ’시간‘이라는 선상 위에 풀어놓는다.

교향곡의 1, 4악장에 주로 쓰이는 소나타 형식은 마치 커다란 성을 건축하는 것과 같다. 고전주의 시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이룩한 업적이다.


2악장: 3개의 부분으로 된 묶음이 또 여러 개 모인 형식. 보통 느리고 여유 있는 빠르기로 연주한다. 교향곡의 서정성을 담당한다. 공연장에서 이 부분을 뛰어나게 연주하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게 졸음이 몰려오는 마의 구간이다. 이미 기술을 익힐 대로 다 익힌 전문 연주자들에게도 느리고 서정적인 부분은 화려한 기술이 없고 서정성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연주하기가 쉽지 않다.

3악장: 2악장과 유사한 형식이지만 재빠르고 힘차며 재치 있는 분위기로 연주된다. 2악장에서 졸음으로 인해 수그러들었던 나의 고개가 깜짝 놀라 벌떡 들리는 부분이다. 가볍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악장이다. 곡에 따라 2악장과 3악장은 위치가 서로 바뀔 수 있다.

4악장: 1악장과 같은 소나타 형식이 대부분이다. 피날레, 즉 끝을 내는 악장으로, 가장 웅장하고 기세등등한 부분이다. 달리기로 친다면 결승점이 다가와 최후의 스퍼트를 내는 구간이며 모든 악기가 오랜 시간 동안 총출동하는 악장이다. 특히 끝나는 부분이 가장 화려한데 말로 풀자면 ‘이제 끝, 진짜 끝! 이번에 안 끝내면 4악장 아니다. 정말로 끝이다! 잘 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아냐 잘 가! 끝!.. 끝!.. 끄끄끄끄끝!!!... 끝!!!!' 이런 느낌이다. 휴.




    예외는 항상 존재하지만 우리가 유튜브에 '교향곡'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대부분의 음악들은 위의 느낌에 부합할 것이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이 뛰어난 부분은 바로 3악장에 있다. 4개의 악장 중 가장 유명한 악장이 3악장인데, 그 이유는 아래 음원에 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 (듣기 링크)


    이 곡을 듣다 보면 높은 산맥의 울렁이는 갈대 속에 서있는 기분이 든다. 위 영상에서 재생시간 35분 정도가 하이라이트인데, 이 부분을 들으면 내 앞에 360도로 우주의 수많은 별들이 펼쳐지는 시각적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다 사그라들면 흑백화면처럼 고요해지며 내 마음속을 바라보다 또다시 우주 앞에 서게 된다. 만약 내가 이 곡을 주제로 음악 감상회를 한다면, 미디어 아트 전시처럼 동그란 방에 360도로 화면을 채우고 우주와 지구의 모든 광활한 풍경을 날아서 횡단하는 영상을 음악에 맞춰 상영하고 싶다. 정말 실감 나게 아름다운 체험이 될 것이다.  

    음악을 전공하면서 수많은 공연에 갔었는데, 이 곡을 연주한 공연은 딱 한번, 어느 해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교향악 축제에서 감상했다. 그날은 카리스마가 대단한 지휘자가 하는 공연이라 지휘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합창석에 앉았다. 아직도 그날의 감동을 생생히 기억한다.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 작게 피어오르는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난 꽃이 내 마음을 훤히 밝혀주어 점점 마음이 불타오르는 내 마음을 느꼈다. 일종의 유체이탈 같은 느낌일까 싶기도 하고, 몸이 아니라 뇌의 작용만을 오롯이 느끼는, 불타오르는 마음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음악에 대한 내 열정이었고, 사랑이었고, 그땐 음악이 내 모든 것이었다. 영화관에서 판타지 액션 영화를 보면 영화 속 세계관과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느낌이 들어 빠져들다가 영화가 끝나면 현실로 돌아오듯이 나에겐 음악이 그러했다.

    이 곡은 오래오래 여러 번 들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그만큼 내가 얻고 느끼는 감정과 치유, 음악적 경험이 방대하다. 책을 보거나 요리를 하는 등 다른 활동을 하며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아도 좋고, 심해 속으로 들어가 유영하는 느낌을 받고 싶다면 의자에 편하게 앉은 채 음악만 크게 틀어놓고 귀를 열어 듣는 것도 좋다. 곡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곡으로 넘기거나, 느린 부분은 넘겨버리는 등의 습관은 쉽지 않겠지만 잠시 내려놓고 천천히 마음에 담아야 한다. 들을수록, 곱씹을수록 점점 그 우주의 공기가 조금씩 느껴지고, 들을 때마다 점점 그 우주가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전악장 (듣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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