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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Feb 03. 2024

시간이 가도 난 그대로.

이효리, <이발소 집 딸>

    얼마 전부터 OTT플랫폼에서 발견한 KBS의 심야음악프로그램 <더 시즌즈>의 공연을 몰아보고 있다. 내가 평소에 관심 있었던 가수 위주로 건너뛰며 보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더 시즌즈> 중 시즌3 '악뮤의 오날오밤'에서 이효리가 나오는 편을 보게 되었다. 첫 부분은 내가 알고 있었던 이효리의 강력하고 기센 무대였다. 뭐 늘 그렇듯 그렇구나, 하며 퍼포먼스를 구경하며 감상하고 있었다. '옆머리를 층층이 내서 예쁘네', '터키풍 블루가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카고 반바지에 하이힐이 어울리는구나' 등의 감상말이다. 가벼운 노래와 랩 사이의 '싱잉랩' 느낌의 신곡을 들은 후, 마침내 마지막을 향하게 되었다. 영상에서 이효리는 마지막 곡으로 3집 앨범에 있는, 본인의 팬들만 아는 <이발소 집 딸>이라는 곡을 부르겠다고 소개했지만 그다지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효리, <이발소 집 딸>(영상 보기)


    영상을 보다보니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진심이 전해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화려하지도 않고 가창력도 대단하지 않았지만, 이효리는 자기 이야기를 노래했다. 아마 이발소집 딸로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지만 연예인이 되어 갖가지 험한 일을 겪었으리라.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르는 이효리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고, 그녀의 눈웃음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웃음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화려하고 대단한 가창력보다 이렇게 진심이 담긴 단순한 노래가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이효리의 미소.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볼 수 있는 멋진 여유가 느껴지기도 한다.




저기 멀리 나를 보는 화려한 차림 속에 웃는 내 얼굴

때론 나조차 그 모습에 익숙해져 잊고 살진 않았을까

지금이 내가 되기 전에 걸어왔던 수많은 시간들


나는 여전히 너의 친구야 시간이 가도 난 그대로

나는 여전히 이발소 딸이야 시간이 가도 난 그대로


나는 노력했지 단 한순간도 기댈 수 없는 연예계란 바닥에서

나는 괜찮아 변하지 않아 또 나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며

잊고 싶던 순간들 나를 이끌어준 힘인 걸 알아


반짝거리는 보석과 짙은 화장 속에 Stay strong Breathed on

많은 사람들 함성에 익숙해질 때도 Stay strong 기억해


-이효리, <이발소 집 딸>




    공연 영상을 보면 이효리는 관객과 눈빛으로 마음을 나누고 다양한 움직임과 표정으로 노래한다. 노련한 가수라서 이런 무대 위에서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전의 강렬한 무대와는 상반된, 왕년에 한가닥 했던 '댄스가수 이효리'라는 껍질을 한 꺼풀 벗은 민낯의 이효리를 만나는 시간이라는 느낌이었다.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듣다 보니 나는 내 모습 그대로를 잃어버리지 않고 잘 지켜나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아직도 내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다. 그 기준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살아가다 보면 알게 될 수도, 어쩌면 죽을 때까지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고 나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토닥토닥. 조금 부족해도, 모자라고 서툴러도 나는 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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