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빛 Feb 06. 2024

새벽을 외치는 빵빠레

글린더만, <트럼펫 협주곡> 2악장 안단테

    하루 종일 온 세상을 구석구석 밝히다 져버린 해가 다시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데까지는 길고 긴 밤이 지나야 한다. 힘을 내어 세상에 다시 빛을 비추기 위해선 아주 강한 힘과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이 곡의 트럼펫 빵빠레 처럼. 새벽의 시원한 공기와 어스름하게 안개, 그리고 희물그레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브 글린더만의 트럼펫 협주곡을 들으면 마치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용기가 샘솟는다. 


글린더만, <트럼펫 협주곡> 2악장 안단테 (음악 듣기)




    트럼펫이라는 악기는 일반적으로 용맹하고 곧으며 밝은 소리를 낸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서 작곡가들은 트럼펫을 일반적으로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를 구현하고 싶거나 음량을 크게 내어 강조하고 싶은 부분, 일종의 음량 공격을 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재즈 음악에서는 독주 주자로 나와 멜로디를 낭만적이면서도 당찬 외침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재즈의 관악기 하면 조금 느끼한 색소폰 소리를 떠올리지만 재즈 관악기의 진가는 바로 트럼펫이다. 마치 우수에 젖은 남자가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을 하는 느낌이랄까. 특히 이 곡에서는 트럼펫음이 높은데도 얇지 않고 적당히 굵고 부드러워서 슬픈 수사슴이 숲 속에 홀로 서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학생들 등교시간이 여덟 시 삼십 분이다 보니 내가 일어나는 시간은 다른 직장인보다는 조금 빠른 편이다. 여섯 시 삼십 분쯤 일어나 준비를 해서 일곱 시 삼십 분 조금 넘어 집을 나서면 가을과 겨울에는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출근을 한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창밖에 보이는 산과 산 사이에 안개가 자욱이 깔려있어 마치 한 폭의 수묵풍경화 같을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이 곡을 틀어 안갯속에 서있는 누군가를 상상하며 고고한 마음가짐으로 출근을 해본다. 음악 하나로 공간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고, 마음이 좋다. 


    이 곡은 트럼펫 독주자 한 사람과 여러 명의 오케스트라가 협주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도와가다가 어떨 때는 현악기, 관악기의 다양한 음색을 주고받는 등의 다양한 구성을 취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고 재미를 느끼게 하는 형식이다. 아침 풍경을 보며 이 곡을 듣다 보면 어느샌가 곡이 끝나버리는 경험을 많이 했다. 풍경 감상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감상에 조용히 집중하게 해주는 좋은 음악이다. 




    이런 멋있는 트럼펫 곡을 들으면 다른 어떤 악기보다 트럼펫 음색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각 악기의 소리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는데, 용감하고 곧지만 한편 부드럽고 낭만적인 트럼펫은 내가 원하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악기를 배울 때, 자신과 비슷한 악기를 고르는 경우가 많아 '악기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 사람은 바이올린 상이다', '이 사람은 플루트 상이다' 이렇게 각 악기의 특징이 사람과 매칭된다. 미래에 나는 내가 트럼펫처럼 곧고 용감하지만 겉은 부드럽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트럼펫 음악을 들을 때면 희망차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듣게 되는 듯하다. 


    인생은 길다. 아마 평생 넘어지고 아프면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왕 살 거면 트럼펫처럼, 그리고 질기지만 잘 휘어져 부드러운 갈대처럼. 인생을 심지 있지만 유연하게 살아내고 싶다. 혹은 땅 가까이 휘어졌더라도 계절이 바뀌면 일어나는 갈대처럼. 실수하더라도 잠시 쉬다 호기롭게 다시 일어나 해를 마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트럼펫과 같은 소리가 센 악기를 불려면 성격도 호기롭고 배짱이 있어야 한다. 악기를 배우면 성격이 바뀌기도 할까. 궁금해진다. 





이전 09화 시간이 가도 난 그대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