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덤'이란 무엇인가?

문윤희 작가님의 글은 읽은 후(D-9)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화살과 같다'라는 말이 맞네요.


여행 마지막 날, 동행하였던 어르신 두 분께서 꼭 시간을 내서 한 번 보자고 하셨는데 그냥 오고 가는 인사말 정도로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점심식사를 하시자며 카톡으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만나서 특별히 나눌 이야기도 없을 것 같아 몇 주를 망설이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날짜와 장소를 결정하여 연락을 드렸습니다.



오늘이 산본중심상가에서 두 분을 뵙고 점심도 함께 하기로 한 바로 그날입니다.

저희도 약속시간 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도 약속시간보다 일찍 오셨더군요.


여행 후 재회가 낯설고 어색할 것 같았는데, 막상 다시 두 분을 뵈니 무척 반갑더군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기 전, 한 분이 노란 봉투에서 프린트 물을 꺼내시면서 “이번 여행에서 우리를 생각하면 쓴 글입니다.”라고 하시네요.


우선 식사를 먼저 한 후 조용한 찻집에서 차분히 읽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공통 주제는 크루즈 여행에 대한 것이었고,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 나누며 식사를 마쳤습니다.


토요일 오후이지만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찻집의 창가자리가 남아 있더군요.

자리에 앉아 좀 전에 전해받은 글을 읽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분 중 더 연장자이신 분께서 낭독을 하십니다.

순간 약간 당황을 했지만 아닌 척하면서, 종이에 적힌 글을 천천히 또박또박 낭독하시는 것을 따라서 저희도 한 줄 한 줄 눈으로 읽어 나갔습니다.


<덤> 작가: 문윤희

기분 좋은 일이다. 대추 한 되를 사니 한 주먹 더 주시는 할머니의 늙은 주름살 웃음이 흐뭇하다. 에누리와 덤은 둘 다 좋지만 덤을 더 좋아한다. 덤이 성행하던 시절이 그리운 것은 나이 탓일까. 덤에는 ‘가심비’가 존재한다. – 중략 –


과학과 의술의 발달로 백 년 전보다 곱으로 늘어난 수명은 덤 인생의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중략 –


누군가는 말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요. 여행은 다니면서 하는 독서라고. 덤 인생에 여행만 한 게 어디 있으랴. 나서기로 계획한다. – 중략 –


룸메이트를 물색했다. 마침 팔순을 맞은 친구가 기념으로 어디라도 가고 싶어 했다. 결정한 후에는 뒤돌아 볼 것 없이 직진만이 답이다. -중략-


배는 안락한 의식주가 해결되는 집의 개념이다. 집안에서는 시시각각으로 공연하는 뮤지컬, 연극, 영화, 댄스지도, 게임, 수영장, 스파, 각종 운동기구, 옥상의 케이블카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세계 인종들 3천여 명이 같은 영역 안에서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을 못 느꼈다.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는 기본이다. – 중략 –


파티 옷 준비로 망설이다 수(壽) 복(福) 글자가 수놓아진 모시 한복을 준비해 간 것이 세계인들의 눈에 한몫했다. ‘한복, 한복!’하며 코리아 원더풀을 연발한다. – 중략 –


인생은 미완성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했던가. ‘일생의 마지막 여행’이라고 가족에게 호언장담 출발은 변해가고 있었다. 21명의 크루즈 동행 팀들은 한 이레 만에 절친이 되었고, 서로의 연락처를 입력하며 헤어져야만 하는 시간을 아쉬워했다. – 중략 –


굴레에 갇혀 산소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고 덤 인생의 지혜는 멀게만 느꼈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뭍에서 바다를 향하던 생각에 휘돌아 뭍으로 돌아오니 산소의 소중함이 일깨워지듯, 덤 인생의 지혜를 만날 수 있었다. ‘물러설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

덤은 언제나 쏠쏠한 것. 덤 인생까지도.




저도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이지만, 크루즈 여행을 인생의 ‘덤’이라 여기시고 쓰신 글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간결하지만 사실적이며 관조적인 관점에 연륜을 더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고 보니 두 분은 여행 중 항상 단아하시고 진중하신 모습만 뵈었던 기억이 납니다.

늘 같이 간 일행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한발 먼저 움직이시고, 모든 친절에 감사함을 표시하던 그 모습.

오늘 다시 뵈었으나 여전히 그 모습에 변함이 없으시네요.


두 분은 독서 동아리에서 만나신 관계라고 하시는데,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후 서로 낭독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셨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런 관계로 까지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낭독을 시작하신 것이네요.


크루즈 여행의 추억을 시작으로 독서 동아리 활동과 두 분의 결혼 생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노라니, 오랜 연륜에서 나오는 귀중한 삶의 지혜가 녹여져 있더군요.


‘천재가 경륜(徑輪)을 이기지 못하고 경륜이 연륜(年輪)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머리가 아무리 좋고 재능이 뛰어나도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따라가지 못하며,

경륜을 어느 정도 쌓아도 삶의 연륜으로 터득한 지혜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이치에서 나온 말입니다.

♥ 경륜은 큰 포부를 가지고 어떤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또한 그러한 계획이나 포부, 세상을 다스림, 또는 이에 필요한 경험이나 능력을 말합니다.
♥ 연륜은 여러 해 동안의 노력이나 경험으로 이룩된 숙련의 정도, 또는 그러한 노력이나 경험이 진행된 세월을 말합니다.



요사이 회사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서 원로들이 늙었다는 이유로 소외당하고 있습니다.

늙으면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지혜나 경륜마저 늙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회와 국가가 발전하려면 젊고 유능한 인재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활용하고, 연륜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어야 균형 있고 조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인의 덤으로 사는 인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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