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 시험지 인쇄 지원 아르바이트
첨단 지식산업센터가 즐비한 도심 한복판에서 낡은 인쇄소 하나를 발견한 순간, 오랜 기억의 방아쇠(트리거)가 당겨졌습니다. 빨간색이라고 할지 분홍색이라고 할지, 벽돌로 쌓은 인쇄소를 보면서 오래 전 1980년 당시의 기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Go back to the 1980s
1980년대만 해도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하는 것이 일종의 '국룰'이었습니다.
1학년 때는 국가안보와 강화된 병영체험이라는 미명하에 '문무대(학생중앙군사학교)'라는 곳에서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학년 때는 실제 병영생활의 체험을 위해 '병영집체훈련'이라는 이름으로 5박 6일간 전방부대에 입소하였습니다.
당시 육군 현역 복무 기간이 30개월(2년 6개월)이었는데, 이 두가지 병영집체훈련을 모두 마치면 3개월의 복무기간 단축이라는 상당히 큰 혜택 주어졌습니다. 이렇게 제대를 한 후 복학하기 까지는 약 5개월 정도 여유가 있더군요.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상 집에서 쉴수 없어서 아르바이트라도 찾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지금과 달리 아르바이트라는 개념 조차 없었던 시절이니 복학생을 위한 일자리는 귀하기만 했습니다.
학력고사 시험지 인쇄 작업
이웃집 아주머니로부터 우연히 제의 받은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약 두 달간의 막노동을 통해 제법 돈을 벌기는 했는데 더 이상 일거리가 없다고 하더군요. 다른 곳을 알아보는 도중 학력고사 시험지를 인쇄하는 단기 일자리가 있는데 가보겠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흔쾌히 가겠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대학 학력고사를 전기대, 후기대, 그리고 전문대로 나누어 3번 실시했습니다. 이때마다 시험문제를 달리 출제하였기 때문에 인쇄도 따로 했어야 했고요. 학력고사의 특성 상 인쇄를 시작할 때부터 시험이 종료되는 날까지는 인쇄 공장에서 나올 수 없는 감금상태가 됩니다. 이는 인쇄된 문제지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요. 그래서 인쇄공장에 알바생이 모두 들어가면 외부와 연결되는 모든 문과 창을 막고 봉인합니다.
전기대 입시 때는 인쇄물량이 많아서 15일간, 조금 적은 후기대는 10일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문대는 5일간 감옥아닌 곳에서 수감생활하듯이 감금생활을 했습니다. 처음에야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감금상태를 맞았으니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자유를 박탈 당하니 그 스트레스가 상당하더군요. 같이 일을 했던 동생은 다음 번에는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고 하더군요. 저도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이라 마지막 전문대 시험때도 들어갔습니다.
모두 3번 들어온 사람이 저 말고도 더 있더군요.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죽했으면 또 들어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전 옥살이를 할 일을 없을 것이지만 이런 아르바이트를 통해 간접체험은 해봤네요.
당시에 인쇄소는 지금도 그 이름이 생생합니다.
"보진재(寶晉齋)"
1912년 8월에 순수 민족자본으로 세워진 국내 최고(最古)의 인쇄소라고 합니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역사 깊은 인쇄사로 제가 일했을 당시에는 영등포 당산동 인근에서 공장을 운영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파주출판단지로 이전하였다가 현재는 인쇄 사업을 종료했다고 하니 아쉬움이 남네요.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친 옛스러운 인쇄소 건물 하나가 과거의 추억을 소환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려웠고 힘들었던 기억조차 세월이라는 너른 강물에 희석되어, 이제는 그저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았네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