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팀장 14(다음 편에 연결됩니다)
이번 이야기는 좀 시간이 지나다 보니 기억이 희미해지는 부분도 있고, 더 깊은 내용을 거론하기가 어려워서 나름 중요한 사항 위주로만 써보았습니다. 그래도 제법 내용이 되네요.
7년 간, 두 팀에서 5년 그리고 2년 간 팀장을 하면서 업무 외에 참 많은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팀장은 인원 육성과 조직관리도 해야 하고, 팀의 역량 향상뿐 아니라 일정 성과도 만들어 내야 하는 부담이 되는 자리입니다.
저는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인원 육성과 조직의 관리입니다.
이게 우선적으로 안정화되어야, 나머지를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입니다.
참 지긋지긋하게 충원을 안 해주는 팀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비용(2014년 기준으로 년 80억 원 사용)을 사용하는 팀이다 보니 일종의 경리업무를 담당할 인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전에 업무를 하던 직원이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지요.
요청한 후 얼마 안 되어서 인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남자직원인데 괜찮겠냐는 것입니다.
지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닌 입장에서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바로 Okay를 하고 학인해보니, 보훈대상자라고 하네요.
군대에서 허리를 다쳐 의병전역(현역군인이 질병이나 상해로 인해 업무수행이 어려운 경우, 예정보다 일찍 전역하는 것을 뜻함)을 한 모양입니다. 허리 수술을 두 번이나 했지만, 현재도 후유증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인근에 있는 군 병원을 다니고 있지만,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이 아니면 문제는 없다고 하네요.
당연히 인사에서 인원채용 시 신체검사를 하니, 이 문제는 큰 우려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인터뷰를 위해 만나보았습니다.
생각보다 덩치가 크지만, 순하게 생긴 친구여서 같이 참석한 직원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네요. 바로 인사와 협의하여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입사하는 것으로 협의가 되었지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업무에 적응하여, 그동안 밀려있던 비용처리 업무에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도 쉽게 가까워지는 친화력도 있었습니다.
원래 비용처리 업무를 하다 보면 회계팀이나 재무팀과 다소 껄끄러운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때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갔습니다. 팀원들의 잦은 부탁과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싫다는 표정 없이 힘 닫는 데까지 도와주고 처리해 주어, 팀 내 막냇동생과 같은 존재로 자리를 잡더라고요. 팀장으로서는 행정처리와 경리업무를 지원해 주니, 다른 쪽 업무에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어서 고마운 친구였지요.
하지만 다친 허리의 통증으로 인해 월차나 연차를 사용하는 경우가 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인해, 밤이나 새벽에 카톡으로 병원에 간다며 휴가를 급하게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였습니다. 그래도 하루나 이틀 후에 복귀하여 전표를 처리했기 때문에, 월말이나 월초가 아니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었습니다.
이 친구 하고는 집도 같은 방향이라 퇴근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가끔씩 면담을 해보니 아픈 상처가 많더군요. 보통 드라마에서 봤던 배다른 형제와의 갈등, 아버지의 사망 후 사업을 인수하면서 오히려 빚을 대신 걸머지게 된 사연 등입니다.
빚이 2억이 넘어 도망 다니기도 했고, 큰돈을 벌어보고자 인터넷 도박이나 스포츠경마에도 빠진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용불량자 신분이지만 개인회생을 통해 월급의 일부를 변재 하는 상황이라고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다 보니 좀 당황했습니다. 말로만 들었지 실제 개인회생 절차를 밟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이 없었거던요.
더 놀라운 것은 인사에서 채용할 때는 당연히 이런 부분도 확인했을 것인데, 알고도 승인한 것인지 아니면 몰랐던 것인지 궁금하더군요.
시간이 흘러 입사 후 2년 정도 되었을 때 결혼도 하였고, 곧 아이도 생겼으니 이제부터는 순탄한 생활만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월급의 상당 부분이 개인회생을 위해 빠져나가서, 실제 집에 가져가는 금액은 턱없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도록 시간적 배려도 해주면서, 성실히 살아가기를 바랐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연락도 없이 출근을 안 했습니다.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안 된다는 목소리만 들렸고, 메시지나 카톡을 보내도 읽지 않았습니다. 계속된 연락에도 회신이 없어, 이틀째 되는 날 ○○의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의 아내는 "회사에 일이 많아서 며칠 못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해서 그렇게 알고 있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그런 일은 없다고 이야기했더니, ○○의 아내는 근래에 인터넷 도박에 빠져서 집에 안 들어오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고 알려주더군요. 과거 도박을 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회사에 들어오고 결혼을 한 후에는, 완전히 손을 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도 추가 확인이 필요해서 지방에 계신 어머니한테 전화를 했더니, 공무원인 친형에게 전화를 해보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친형은 "이런 경우가 자주 있었고, 며칠 뒤에는 돌아오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을 아주 쿨하게 이야기하더군요.
일단 상황은 파악이 되었으니 실장에게 ○○의 무단결근이 지속되고 있는데, 인사에 보고해야 되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호인이신 실장은 며칠만 더 기다리면 안 되겠냐고 저에게 묻더군요. 일단 남은 휴가로 처리를 할 수 있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하고 좀 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4일째 되는 날, ○○으로부터 저에게 카톡이 하나 날아왔습니다. 구구절절 죄송하다는 내용이네요. 바로 전화를 했더니 이번에는 신호가 가고, 좀 있다가 전화를 받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일단 만나자는 약속을 잡고, 실장과 함께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는 수척한 얼굴로 약속 장소에 들어오더니, 보자마자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하고 있네요.
그 간의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니, 빚 독촉이 심해서 일단 회사에 피해를 안 줄려고 피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허리 수술을 했던 군 병원의 수간호사에게, 허리가 아프다고 입원을 부탁하여 거기서 지냈다고 하고요.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심스럽기도 했습니다. 피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닐 텐데.
두 시간 동안 설득을 해서 다음 날 출근한다는 확답을 들은 후, ○○의 집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다음 날 출근을 하더군요. 다행히 직원들도 농담 몇마다 정도만 하고 다들 반갑게 맞아주었고요.
이렇게 해서 추가적인 인사조치 없이, 이 일은 일단락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한 반년 정도는 업무도 잘하고,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표정도 어둡고, 근태를 보니 월차와 연차를 생각보다 많이 사용하길래 추가로 면담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남은 기간이 많은데 이런 식으로 계속 사용하면, 휴가 일수가 부족할 수 있으니 조절을 잘하라는 의미였지요.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장인과 장모가 본인을 싫어해서 사이가 안 좋아졌고, 결국 아내와 얼마 전에 이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고 본인은 집을 나와,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전에도 처갓집에서 이 친구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혼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고 행복해질 날만 있을 것 같아, 무척이나 보기가 좋았는데... 안쓰럽더군요.
그래도 회사 생활은 착실하게 수행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왠지 모르는 찝찝함은 남아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카톡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지방에 계시는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시다고 하네요. 급하게 인근 종합병원에 입원하셨고, 본인도 바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자식 된 도리로 당연한 것이니 얼른 내려가서 잘 보살피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를 했더니 위독한 상태라고 했고, 다시 며칠 후 전화를 했더니 더 안 좋아지셨다고 합니다.
결국 일주일 간 입원하셨던 ○○의 어머니는, 주말에 안타깝게도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직원들이 조문차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도무지 연락이 안 되어서 장례식장을 알 수가 없더라고요. 수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도 남겼는데 회신 없이 이틀이 지났습니다.
월요일 출근을 하니 제 책상 위에 비용 처리를 위한 전표가 한 묶음이 올라와 있고, 그 위에 노란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저를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나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인지라 이제 그만두려고 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됩니다.
메모를 몇 번씩 읽었고, 마침 출근한 그룹장과도 같이 읽어 보았습니다.
회사를 떠나겠다는 의미인 것은 맞는데 행간의 의미로 보니, 혹시 자살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되더라고요.
...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와 카톡을 보내도 회신이 없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지난번 알게 된 ○○의 친형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안 받네요. 미안하지만 이복형에게도 전화해서 혹시 ○○의 어머님의 장례식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모른다고 하네요. 하긴 배다른 형제이니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어서 관심조차 없을 수 있었습니다. 이혼한 부인에게도 전화를 했지만 모른다는 답변이었고, 인사 기록부 어디를 봐도 더 이상 연락할 곳이 없으니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잠시 멍하고 있다가 혹시 어머님 집에 누군가 있지 않을까 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한참 동안 신호가 간 후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혹시 ○○집 아닌가요?"하고 물으니 "맞습니다"라고 하시네요.
순간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혹시 ○○ 어머님 되시나요?"..."예, 맞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하시네요.
...
당황해서 "아! 혹시 ○○가 집에 가지 않았는지요? 어머님이 편찮으시다고 하시던데?"라고 했네요.
"좀 몸이 아프기는 한데 큰 문제는 없다"라고 하시며, 오히려 ○○가 잘 지내는지 물어보시더군요.
그래서 요 며칠 회사에 출근을 안 해서, 연락을 드린 거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한 저도, 옆에서 듣고 있던 그룹장도 순간 멍해졌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더군요.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그간의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며 정리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생각보다 다루어야 할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너무 길게 할애하면 지루할 것 같아서 다음 편에서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 To Be Continued -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