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불친철한 인사 명령, 애사심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이상한 나라의 팀장 13

오랜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불친절한 인사 제도를 자주 보게 됩니다.

예전부터 '인사는 만사(人事萬事, 사람을 채용하고 배치하는 인사가 모든 일을 잘 풀리게 한다)'라고 했는데, 제가 있는 회사는 '인사는 망사(人事亡社, 사람을 채용하고 배치하는 인사가 모든 일을 망치게 한다)'입니다.



인사에서 시행하는 대부분의 방안이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입니다. 왜 그럴까요?

'외국어 사용과 전혀 무관한 업무에도 어학점수 적용하여 진급 제한', '부서 간 이동 시 특정 부문 또는 대리급 이하는 배제', '사전에 어떤 사유의 설명 없이 보직 해임', '현실적이지 않은 조직문화 혁신 방안 제시', '동료 간 및 상하 평가를 통한 개인 인성 분석', '조기 진급 제도를 만들어 놓고 막상 신청하면 조기 진급 없음 통보', '휴무일을 직급마다 다르게 설정'등 다양한 사항들이 있습니다.

일부 사항은 인사에서 시행할 수 있는 업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은 개선하거나 폐지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사전 통보 없이 보직 해임'이 된 사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래전 일이라 불쾌한 감정이 거의 사라져, 담담한 마음으로 적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네요.



제가 10여 년간 팀장과 실장으로 모셨던 분으로, 업무에 대한 열정과 능력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다만 꼼꼼하고 완벽주의를 지향하고 있어,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힘들어 하기는 했습니다.


이 분이 팀장에서 실장으로 진급을 한 후, 사업부장의 지시에 따라 신규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갔지요.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실행되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인 시기인지라, 초기 계획한 결과와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핑계는 아니지만 글로벌 빅테크(Big Tech) 기업도 시제품이나 홍보영상 정도만 있었지, 현실에 적용은 제대로 못한 상태였습니다(2016년 당시에는 증강현실/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이 폭발할 때였습니다).

실장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현재의 결과물이 최선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눈높이가 다른 사업부장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깊어진 감정의 골

수차례의 설명을 통해 설득과 이해를 구했지만, 번번이 사업부장과 실장 사이에 언쟁이 생기면서, 감정의 골은 깊어져만 갔습니다. 결국 사업부장 주관의 회식 자리에서 이 이야기가 다시 거론되면서, 심한 말싸움을 하다가 급하게 회식은 마무리가 되었지요.

다음 날 실장이 사업부장을 찾아가서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는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업부장은 예전부터 실장을 안 좋아했었고, 뒤끝도 엄청 있는 양반이라 이후에도 분위기는 계속 냉랭한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다행히 이 프로젝트는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회사 내에서 인정을 받아, 사내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해당 업무를 수행하였던 팀장은 '업무능력 부적합과 조직 평가에서 최하위 수준'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1년도 안되어서 보직을 해임당했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사업부장이 인사에 직접 요구하여 팀장의 보직해임 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봐도 충분히 그럴만한 인성의 사업부장입니다.


별일 없이 넘어가나?

희한하게 그 해에는 경기가 안 좋았는데도, 임원들의 인사 발령이 12월에 소규모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고, 2월 중순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실장이 저한테 넌지시 이야기를 하더군요.

"더 이상 인사 발령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니, 내 자리는 문제가 없나 보다"라고요.

저 역시도 이 놈의 프로젝트 문제로 인해 담당 팀장이 보직 해임까지 되었으니, 더 이상의 추가 조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갑자기 해당 요일이 아닌데, 실·팀장 주간회의를 한다고 해서 급하게 본사로 올라갔습니다.

모두 회의실에 앉아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온다던 사업부장은 안 오고 대신 인편으로, 저희 실장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고 사업부장실로 오라고 하더군요. 그로부터 한참을 기다려도 회의는 시작되지 않았고, 뭔지 모를 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와서 "내일 날짜 인사 명령에서 ○○실장이 면직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지... 이제 겨우 이사대우 달고 1년뿐이 안 되었는데, 바로 면직이라니요.

임원의 면직은 곧 회사를 나가라는 이야기니,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 모두 황당한 상황이었습니다.


실장과 같이 돌아오는 길에 한 마디도 못하다가, 주차할 때 "식사라도 하실까요?"라고 하니 괜찮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일 토요일에 혼자 짐을 정리하고 떠날 테니, 절대 나오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만 남기고 회사를 나가셨습니다.



일개 직원도 아니고 대기업의 꽃이라는 임원인데도 사전에 아무런 언질 없이, 바로 전날 면직을 통보하는 것이 인사 정책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사 사항은 비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이나 인근 사람들 빼고는 다들 2~3주 전부터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고 하니, 비밀은 '당사자에게만 비밀'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 일로 인해 실장 밑의 팀장이나 팀원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회사의 인사 정책에 대한 신뢰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무슨 웃자고 장난치는 '몰래카메라'도 아니고, 인사에서 이토록 처참하게 인격을 모욕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요. 진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최소한 본인에게는 주변과 마음을 정리할 시간은 주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저 역시 실장에서 면직될 때 대면도 아니고 전화로, "나이가 많으셔서 보직에서 내려오셔야겠습니다"라는 연락을 인사 발령 바로 전 날에 받았습니다.

실장 정도 되면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애사심은 상당 부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회사는 도리어 직원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고, 쓰다가 버리는 물건과 같이 취급한다는 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회사는 직원들이 주인정신과 애사심을 가지길 원합니다.

직원도 회사에게 일하고 싶은 곳이 돼주길 바랍니다.

어느 일방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들어주어야 됩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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