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팀장 11
어느덧 12월이네요. 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항상 이맘때가 되면 후회도 하고 내년이 기대되기도 했는데, 퇴직을 1년 남짓 남은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네요. 그저 무덤덤한 느낌이라는 것이 가장 적합한 단어인 듯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11월쯤 되면 직원들에 대한 인사 고과가 종료되는 시점입니다. 모든 직원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한 평가를 받고, 이를 기반으로 내년도 연봉을 책정받는 시기라 일부 직원은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좀 심한 직원은 팀장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이때 대놓고 고과를 잘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일을 잘하는 직원이면 당연히 "알고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라고 하면 되는데, 팀장이 보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거던요. 여하튼 이맘때가 팀장으로서는 심적인 갈등을 많이 겪는 계절임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새발의 피'입니다.
진짜 걱정은 인사고과를 최하로 주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때입니다. 관리직에게 최하고과를 준다는 것은 연봉이 올해보다 내년에 더 깎인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향후에 진급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기 힘들어지니까요. 그래서 일반적인 팀장이라면 자기 팀원에게 최하고과를 주길 꺼려합니다.
그런데 조직이 클수록 최하고과를 줄 사람이 생깁니다. 보통 5단계(S, A, B, C, D)의 등급을 사용할 경우, 각 등급별 비율로 인해 최하 등급(D)도 주어야 합니다. 다행히 저희 팀은 D등급이 나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런 젠장!
그런데 갑자기 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좀 하더니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저희 팀 내 1명에게 최하고가(D)를 주라는 것입니다. 아예 ○○와 ○○가 있으니 그 둘 중 한 명에게 주라고 말합니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고 가슴 한편이 답답해집니다.
"작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올해도 우리 팀에 또 주어야 하는지, 다른 팀도 이런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등을 읍소를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짜증과 욕이 섞인 "안되니 둘 중에 한 명을 결정해라"라는 답변뿐이었습니다. 다른 팀에 비해서 우리 팀에 역량이 떨어지는 직원이 많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항상 이런 편견 아닌 편견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던 팀에 대한 이미지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올해도 실패한 모양입니다.
혹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해당 팀원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당신이 올해 D를 받아야 합니다"라는 양해(?)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결국 엄청난 고민과 고민 끝에, 해당 팀원을 불러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당연히 "왜 내가 대상자이냐? ○○는 나보다 일을 더 못하지 않냐", "계속 고과가 안 좋았는데 너무 하는 게 아니냐"와 같은 불만이 나옵니다. 듣고 있는 저도, 말하는 팀원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달성했다고 하는 업무 실적이 저조했다. 애초에 모두 달성할 수 있었던 목표만 수립하였다", "목표 설정 시 수정을 요청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신이 말한 ○○는 이런 일을 해서 일정의 성과를 내었다", "최대한 다음 고과에는 불이익을 안 받도록 하겠다" 등과 같은 무의미한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기를 한 시간 정도 한 것 같습니다.
마지못해 알았다는 체념 섞인 답변을 듣고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팀장인 저나 팀원 모두 진 게임입니다.
애초부터 승자는 없는, 말도 안 되는 게임이 시작되었고, 뻔한 결말이 난 것이지요.
만약 입장을 바꿔 제가 저 입장이라면 어떨까요? 저 역시 쉽게 수긍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팀은 회사 조직 내 가장 하위에 있는 조직 단위이며, 팀장은 회사 조직 내 최초의 인사고과자입니다.
모든 일은 팀에서 시작하여 여러 단계를 거친 후, 그 결과도 결국 팀으로 돌아와서 마무리가 됩니다.
모든 좋은 일도 팀에서 시작하지만, 모든 나쁜 일도 팀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좋은 결과도 팀에서 마무리가 되지만, 나쁜 결과도 팀에서 안고 가야 할 짐으로 귀결됩니다.
결국 팀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그 어깨 위에 올려진 부담 역시 막중합니다.
모든 일에 올바른 답을 내기는 어렵지만, 최악의 답을 찾지 않기를 바랍니다.
직원의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그 상처가 영원히 가지 않도록 관심과 배려는 필요합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