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팀장 15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 중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번 내용은 '이상한 나라의 팀장 14'에서 이어져 나오는 내용이오니, 14화를 먼저 보실길 부탁드립니다.
그간의 정황을 보니 ○○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셨던 것도 아닙니다.
그럼 이 친구는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거짓말을 하면서 까지 출근을 안 한 것인지?
그리고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는 회사에 몰래 나와 전표처리를 하고, 왜 다시 사라진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미안함이 있어서 메모라도 남기고 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참 알다가도 모를게 사람의 속이라지만,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한동안 멍하고 있었습니다.
○○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거짓말이라는 이야기가 팀 내에 퍼지면서, 다른 파장이 발생하더군요.
한 직원이 저에게 와서 ○○에게 소액이긴 하지만, 몇 십만 정도 되는 돈을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조사를 해보니 10명 정도가 더 돈을 빌려준 모양입니다. 대부분 ○○가 "어머니가 아프셔서, 본인이 아파서 또는 아이가 아파서 등"과 같이 급하게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실장도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대충 따져보니 천만 원 단위는 그냥 넘어갈 정도의 금액이더군요.
이제는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을 하여야 할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정리한 후 실장과 사업부장에게 우선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경조휴가에서 무단결근 처리로 전환시킨 후, 인사와 대응방안을 협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인사도 좀 지켜보자는 의견을 내었지만, 저는 바로 인사조치를 통해 해고시킬 것을 요청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우리 모두에게 이야기한 것이, 모두 거짓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은 계속해서 인터넷 도박을 하고 있었고, 거기에 빠지다 보니 몸이 아프다고 하면서 연차와 월차를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하다 하다 안되니 '어머니가 아프시고, 위중하시고, 돌아가셨다고'까지 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더라고요.
도대체 자식이 돼서 살아계신 어머니도 돌아가셨다는 거짓말을 할 수가 있는지, 그리고 그게 들통이 날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동료들 모두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신의를 저버린 직원을 계속 데리고 일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의 강한 요구에 인사는 무단결근 처리를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야 인사조치를 시작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자료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일종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을 알고 있는 저하고 그룹장이 집도 찾아가 보았지만, 불도 꺼져있고 오래전 우편물도 그대로 꽂혀있더군요. 한참 동안 집에서 생활하지 않은 듯했습니다. 그룹장과 며칠 동안 저녁 늦게 집을 찾아가 보았지만, 불도 꺼져있고 초인종을 눌러도 사람의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결국 전화·문자·카톡을 계속 보내고, 내용증명도 3번 보내고, 현관문에도 매일 "회사로 연락을 안 하면, 무단결근으로 해고 조치될 수 있다"는 안내문도 계속 붙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사시는 어르신 한 분이 저희를 보더니 한 말씀하시더군요.
저희 말고도 다른 사람도 와서, ○○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웃에 사시는 분도 몇 개월 동안 얼굴을 본 적도 없었고, 불이 켜진 것도 본 적이 없다고 하시네요.
도대체 이혼 후 여기서 안 살았다면, 어디서 기거(起居)를 한 것인지 참 궁금하더군요.
지방에 계신 어머님과 친형에게도 연락을 해서 "연락이 안 되는데... 계속 무단결근이 지속되면 해고 조치될 수 있으니, 연락이 오면 꼭 전화 부탁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은 깊은 한숨만 쉬셨고, 친형은 또 이런 일이 발생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회사의 조치에 수긍한다고 하시네요.
시간은 계속 흘러 무단결근한 지 벌써 한 달 가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식이나 연락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동안 모은 자료를 갖고 인사위원회가 열렸고, 회사는 해고조치를 하게 됩니다.
해고조치는 사용자(회사)의 일방적 의사표시입니다.
단순히 며칠 동안 무단결근을 했다고 해고조치가 되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고 하네요.
1. 출근 독려 증거 확보: 전화, 문자, 메일 등을 통하여 출근을 독려하였음에 대한 증거 확보.
2. 1차 내용증명: 1번 사항에도 불구하고 이에 불응 시 내용증명을 통하여 정식의 출근명령 진행. 이때 언제까지 출근하지 않을 경우 자발적 사직처리하겠다는 내용을 포함.
3. 2차 내용증명: 계속하여 불응 시 더 이상 근로제공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특정 일자로 자발적 사직처리 한다는 근로관계 종료 통보.
무단결근 사실을 적시한 출근통지서를 통해 출근을 독촉하고 있었음에도 출근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므로, 출근통지서를 받은 날 이후의 무단결근은 정당화될 수 없다(대법 2003.10.23, 2003두 9282)
매일 ○○집에 가서 있는지 확인하고, '무단결근 사실 적시 출근통지서'를 붙이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이게 일반적인 상황에서 하는 일은 아니더군요. 오랜 시간 동안 맘고생도 했고, 몸도 피곤했습니다.
한 달을 훌쩍 넘긴 후 회사는 ○○의 해고조치를 시행했습니다.
그 후로 1년이 넘도록 아무런 연락이나 소식은 없었습니다.
몇몇 직원은 혹시 자살한 것이 아니냐 하는 추측도 하더군요. 저 역시 마지막 날에 남긴 쪽지의 내용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습니다. 이제 대체 인원을 확보하면서 업무는 안정화되었고, 뇌리에서도 서서히 지워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카톡이 새벽에 날아왔습니다.
○○가 보낸 장문의 카톡입니다.
"정말 죄송하고 죽을죄를 졌다"는 매번 보낸 카톡과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새롭게 추가된 것이 있다면 "기거할 곳이 없어서 거리를 전전하고 있는데, 암까지 걸렸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한참 동안 ○○가 보낸 카톡 내용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번 만나자고 회신을 했는데, 더 이상의 답변은 없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다른 직원들에게 혹시 ○○로부터 연락받은 것이 있냐고 물어보니, 아무도 없다고 하네요.
벌써 6년 정도 지났는데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납니다.
도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양파는 '까도 까도' 속이 안 나오는데, 이 친구도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봐도' 도무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었는지 조차 알 수가 없네요. 그래서 꼭 한 번은 만나서 물어보고 싶습니다.
오랫 시간 회사 생활을 했지만 직원의 문제로 이렇게 걱정하고, 고민하고, 힘들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보통 직원의 어려움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해결방안도 보이고, 뭔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모든 일은 팀장 선에게 조치가 이루어집니다.
그만큼 팀장에게 주어진 역할이 크고, 무겁다는 것을 방증(傍證)한다고 봅니다.
모든 팀장님들의 고생과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