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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내 Sep 04. 2024

명절대이동 눈치게임시작

<월간 오글오글:9월호 추석>

<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 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9월호 주제는 '추석'입니다.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누구를 위한 눈치게임인가 단 한 번도 귀향길 기차표 예매에 성공해 본 적이 없는 사람 여기 있습니다.

2024 추석 기차표예매



대학시절 우리나라에 KTX가 도입되었다. 지금은 서울에서 고향집까지 2시간이면(진짜 빠르다) 도착지만 그 당시 우리 집까지 가는 KTX는 없었고  "용산-익산"행 KTX를 타고 익산에서 다시 무궁화호를 갈아타고 남원역으로 가야 했는데 갈아타는 게 번거로웠기에 나는 늘 한 번에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랬기에 명절 연휴 기차표 예매 티켓이 오픈된다는 뉴스를 봐도 내 관심밖이었다. 고속버스는 매진이 되어도 그 인원을 다 수용해 줄 만큼 계속해서 임시버스가 오픈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항상 고향집에 올 때마다 "아이고 오느라 고생하겠네,, 오느라 고생했네.."라고 늘 말씀하셨지만, 움직이는 차만 타면 잠이 드는 고속버스에 최적화된 습관 탓에 3,4시간쯤 버스를 탄다는 건 나에게 최고의 쉼을 얻는 시간이었다. 준비물로는 좋아하는 노래 가득 담은 배터리 만땅 MP3 하나정도!





초등학교 때 애증의 친구를 스무 살 후반에 만나게 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도 서울에 살고 있는 걸 알게 되었고 약속을 잡고 친구를 만났는데 역시 십몇년만에 만나도 고향친구는 고향친구였다(아 물론 처음에 친구를 못 알아보긴 했다 ㅎㅎ 고칠 수 없는 부분들만 쏙 빼고 고칠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엔 의느님의 손길이 묻어나 보였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어쨌거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야기에 솔로였던 우리는 연애이야기를 하며 신나는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청담에서 미용을 하는 친구였기에 쉬는 날이 달랐던 친구에게 물었다

"이번에 고향 언제가? 기차표 예매했어?"

"추석 당일날 다녀오려고 당연히 예매했지"

"아 진짜? 대박이다!! 어떻게 했어?"

"나는 명절 기차표 예매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어 무조건 성공하지!"


친구는 나에게 비법을 전수해 줬는데 방법은 이러했다


명절표 오픈하는 날 아침 PC방으로 간다. 새 로고침하며 티켓이 오픈되면 가장 빠른 시간 특실을 예매한다



그 비법을 듣고도 나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시간을 돈으로 사는 건데 그 시절 나에겐 남는 게 시간이요. 일반 KTX표값도 부담스러운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이번주 올라올 거야?"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 엄마가 평일엔 일을 하셨기에 주말을 끼고 우리 집에 종종 와주셨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KTX왕복 기차표를 예매해서 보내드렸다


"으내야 왜 또 KTX를 끊었어 비싼데.."


"2시간이면 오잖아 편하게 올 수 도 있고"


"고속버스도 3시간이면 도착해 시간도 많은데 뭐 급한일도 아닌데 매번 KTX를 끊어"


"엄마 터미널에서 우리 집 오는데 갈아타고 뭐 하면 한 시간이야 그럼 총 4시간이야!! 기차역이 우리 집이랑 더 가깝기도 하고"



엄마가 서울 온다고 미리 말하면 내가 기차표를 예매해 버리는 탓에 엄마가 조용히 고속버스를 예매해서 올라오신 적도 가끔 있었다


"엄마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와! 2시간 빨리 와서 애들하고 놀아주면 나는 완전 만족이야! 나 힘드니까 그냥 KTX 타 ㅋㅋ"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시간을 돈으로 사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엄마도 버스 오래 타면 허리가 아프시다고 했다. 또 짐은.. 매번 한 짐 가득 들고 오시는지




일 년 전 추석도 대체공휴일까지 포함하여 쉬는 날이 많았다. 고향길로 내려가는 날 둘째가 열이 났다. 또 수족구였다 작년에 수족구만 3번 걸린 것 같다(아이들 이야기에 열이 빠지면 섭섭할 지경이네) '하.. 첫째는 언제 또 열이 오르려나' 명절도 길고 병원도 문을 안였는데 해열제를 넉넉하게 챙겨 짐을 싸며 언제 올라가야 차가 덜 막히고 갈 수 있는지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엄마 차가 막힐 것 같아서 일찍 출발할게"

늦은 아침을 먹고 승용차에 한 짐 가득 챙겨서 출발했다


(네비 음성) 새로운 길로 안내합니다

"아 왜 자꾸 새로운 길 이래"

최적화된 길로 새롭게 안내하며 휴게소도 없는 국도길을 뱅뱅 돌려가며 힘겹게 힘겹게 서울로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첫째가 조용하다..

그렇게 첫째가 열이 오르고 있었다


눈물 난다 눈물 나 여긴 어디


휴게소에 겨우 도착하여 화장실에 들렀다가 형식상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젤리, 과자를 넉넉히 사서 다시 차에 올라탔다. 휴게소에서만도 한시간이상 걸린 것 같다. 오늘 안에는 도착하겠지..


아침 10시경에 시작한 출발이 저녁 9시를 훌쩍 넘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디 비행기 타고 해외라도 다녀왔으면 이리 억울하지 않을 듯싶다




이번 추석도 기차표예매는 성공하지 못했다. 오늘도 나는 고민 중이다 언제 내려가야 최대한 안 막힐까? 그리고.. 언제 올라오지?



지금 나에게 추석은 언제출발해야하는지 무슨일이 생길지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모험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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