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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보기 May 27. 2024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던 건 아니었다

일하며 30대를 보냈던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고민

"상태가 너무 안 좋아요. 이 정도면 보통의 경우에는 자궁을 들어내요(적출해요). 근데 아직 아이가 없잖아."


진료실을 나오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병원에 함께 가고 싶다는 남편을 기어코 말렸던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당장 (회사를) 조퇴하고 병원으로 와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남편이 도착했다.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데?"


사실 큰 병은 아니었다. 많은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질병 중 하나인 자궁근종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좌절했던 이유는 이미 10년 전에 복강경으로 자궁근종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다. 더구나 이번 검사에서는 근종의 개수가 너무 많다는 것과, 근종의 위치가 좋지 않다는 결과를 들었다. 주치의는 수술방식도 복강경으로는 어려워 개복수술로만 가능하고, 그나마도 2회에 걸쳐 호르몬 주사를 맞고 (수술) 하자고 했다. 무엇보다 임신을 하려면 수술을 하는 게 좋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복강경이든, 개복이든 당장 수술을 예약했다.


일하다 보니 30대가 지나 있었다.


나는 올해 40세가 됐다. 결혼한 지는 5년. 아이는 없다. 결혼한 지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이가 없었던 건 일에 미쳐 지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심히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일에 몰두하다 보니 벌써 40세가 되어 있었다. 감사하게도 시댁과 친정에서는 아이에 대한 압박을 주지 않았다. 남편과는 시간의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말 그대로 일을 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전부 사용했다. 사회초년생 때는 어렵고 서툴렀던 일들이 30대 중반부터는 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직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을 하고, 외부 관계자들과의 네트워크도 만들어지면서 나 자신이 성장하는 느낌이었다. 그 시기가 딱 결혼직후였는데, 그렇게 몰입해서 일을 하다 보니 아이를 가져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사실 35세도 임신과 출산을 하기에 이른 나이는 아닌데 말이다. 딱히 딩크를 꿈꿨던 건 아니었는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딩크부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출산율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최근 들어 너무 낮은 출산율이 문제라는 기사가 자주 눈에 띈다. 기사 행간을 꼼꼼하게 뜯어보는 건 아니지만, 대략만 봐도 인구가 점점 줄어들어 문제라는 내용이다. 당장은 피부로 와닿지는 않지만, 곧 우리가 직접적으로 느끼는 사회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국가를 위해 출산을 하기에 우리나라는 결코 쉬운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 교육, 부동산 등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는 넘어야 할 허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자녀를 둔 부부를 보면 새삼 대단하고 멋있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자궁근종 수술을 기점으로 내 나이 40세에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물론 일을 안 한다는 건 아니다. 몰입의 대상을 일에서 임신으로 옮긴다는 의미다.) 너무 늦은 건 아닌지에 대한 걱정과, 막상 아이가 생긴다 해도 눈앞의 문제들을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뒤엉켜 있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아마 이제부터 쓰는 글은 일만 하다 30대를 전부 보낸 여성의 임신 도전기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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