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근심 속에도 희망이 찾아왔다
교실 창문으로 매캐한 냄새가 들어와 코를 찔렀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눈이 따갑고 눈물, 콧물이 흘러내렸다.
학교 인근에서 시위가 벌어져 최루탄을 쐈는지 바람을 타고 교실 안까지 들어왔다.
교실은 금방 술렁거렸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시끌벅적하다.
희경은 방과 후에 집에 어떻게 가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교통은 이미 통제가 된 상태였다.
거리는 시위하는 학생들과 막으려는 경찰들로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희경의 집 방향으로 가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서울 곳곳에서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희경은 일단 친구 경옥의 집으로 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다행히 그쪽 방향으로 갈 수는 있었다.
그것도 학교에서 서울역까지 걸어가서 가능한 것이었다.
걸어가는 동안에 거리 한복판에서 빈 관을 사진과 함께 태우고 있었다.
거리는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최루탄을 쏴서 온통 뿌옇고 매캐한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무서움과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희경은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잔뜩 움츠린 채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갔다.
친구 경옥도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버스를 먼저 타려고 서로 밀치고 당기고 야단법석이었다.
희경과 경옥은 가까스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 포화상태였다.
겨우 발만 바닥에 닿은 채 그렇게 타고 갔다.
시내를 벗어나 한강 다리를 건너자 버스 안은 차츰 공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시간 강물은 그저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희경은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불안하였다.
친구 집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집으로 갈 수 있으면 가고 상황이 여의치 못하면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하였다.
경옥의 집은 사당동이었다.
거리는 조용하고 오고 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경옥의 집은 작고 아담한 양옥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아늑하였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자 반갑게 맞아주셨다.
간단히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뉴스에서 시위 현장이 계속 보도되고 있었다.
오늘 안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시위는 점점 더 확산되어가고 있었다.
희경은 친구네 전화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께서는 위험하게 무리해서 오지 말고 그냥 친구네서 자고 아침 일찍 오라고 하셨다.
다음날이 쉬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희경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날이 밝아오자 아침 일찍 친구 집에서 나왔다.
다행히 이른 시간이라 거리는 한산하였다.
버스 정류장에도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조금 기다리자 희경의 집 방향으로 가는 버스 한 대가 왔다.
희경은 재빨리 차에 올랐다.
버스엔 대여섯 명이 타고 있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희경은 아무 말 없이 입을 굳게 다물고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희경의 동네는 인적이 드물었다.
이른 아침이라 조용하였다.
이따금 개가 짖는지 컹컹 소리만 들려왔다.
희경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희경의 집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온 동네가 아파트 개발이 된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기뻐할 일이겠지만 적어도 희경의 집은 그렇지 못하였다.
지금껏 모르고 살았는데 땅이 시유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던지 아파트를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희경이네 형편으로는 도저히 감당 못할 금액이었다.
희경의 부모님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제 겨우 살만하다 싶었는데 살 길이 또 막막해진 것이었다.
집을 살 형편도 못 되고 전셋집을 얻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도 마땅한 집이 없었다.
하늘이 노래졌다.
어떻게 해야 되나 탄식을 했다.
밤이면 밤마다 잠 못 드는 날이 계속되었다.
부모님 가슴에 근심이 날마다 그렇게 쌓여만 갔다.
모두 걱정으로 시름에 빠져있는데 기쁜 일이 생겼다.
희경에게 희망이 찾아왔다.
학교에서 날아든 희망이었다.
학교장 추천으로 모 은행에 입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학교 성적이 추천서를 써 주기에 부합하였다.
옆반 반장과 희경에게 주어진 특채의 기회였다.
희경과 부모님은 뛸 듯이 기뻤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한줄기 빛과 같았다.
희경은 면접일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설레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면접을 볼 생각에 눈이 말똥말똥 해졌다.
'과연 무엇을 물어볼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라고 생각하면서 미리 질문을 추측하고 대답할 것을 연습하였다.
기회가 왔을 때 잘 잡아야 했다.
그래서 펜글씨 교본을 한 권 사서 매일 쓰는 연습을 하였다.
희경의 반 아이들은 희경이를 무척 부러워했다.
졸업 전이라도 취업을 할 수 있으면 해도 되기 때문에 몇몇 아이들은 취업을 해서
다니기도 하였다.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술렁거렸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무더웠던 날들이 지나가고 알록달록 곱게 물든 단풍잎들이 바람에 흩날려 나부끼고 있었다.
맑게 갠 푸른 하늘은 꼭 희경의 마음 같았다.
드디어 면접 날이다.
희경은 면접을 보러 가는 내내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런데 막상 커다란 빌딩 앞에 서니 콩닥거렸던 가슴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냥 담담해졌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주어진 운명 앞에서 숨을 길게 내쉬고 건물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면접장이 있는 층에서 멈췄다.
희경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눈에 힘을 주었다.
주먹도 불끈 쥐었다.
후우~~~ 후우~~~
연거푸 심호흡을 하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손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박희경 씨!"
마침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잔뜩 긴장이 되었다.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면접관 앞 의자에 다소곳이 앉았다.
두 손은 포개어 무릎 위에 살포시 얹어 놓았다.
면접관은 모두 세 분이었다.
가족관계를 비롯해 몇 가지 질문을 서로 돌아가며 물어왔다.
희경은 천천히 또박또박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였다.
면접관들의 표정은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었다.
면접을 보고 나온 희경은 홀가분하였다.
크게 걱정하였던 것과는 달리 수월하였다.
느낌은 썩 나쁘지 않았다.
이제는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는 동안 하루가 여삼추 같았다.
길고 긴 나날들이었다.
오빠 영호가 군 입대를 한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군대에서 소포가 왔다.
소포를 뜯자 입고 갔던 옷이며 신발이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옷을 만지며 눈물을 흘리셨다.
군 입대 할 때 제대로 배웅을 못해줘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소포 안에는 간단히 편지가 쓰여있었다.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내용이었다.
희경도 그 내용을 보자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호는 최전방으로 배치를 받았다.
부모님은 자주 갈 수는 없지만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하셨다.
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희경과 부모님은 기쁜 나머지 환호성을 질렀다.
"와~~~ 드디어 됐다."
"이제 됐다."
모두 박수를 쳤다.
이제 남은 절차는 연수를 받고 발령을 받으면 된다.
온몸에 전율이 쫙 퍼졌다.
희경의 얼굴이 환하게 빛이 났다.
희경부모님은 집안에 경사가 났다며 얼마나 좋은지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활짝 웃음도 지어 보였다.
희경은 하늘이 슬픔만 주는 것이 아니라 기쁨도 함께 주는 것 같아 감사했다.
식구들이 모두 근심에 잠겨있었는데 이렇게 잠시라도 웃을 수 있게 되어서 몹시 기뻤다.
하루빨리 은행에 다니고 싶었다.
희경은 그렇게 모두의 희망이 되었다.
'나에게 이렇게 희망이 찾아오다니... '
가슴이 뿌듯했다.
희경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