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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주 Dec 19. 2024

구름 속에서 피어난 꽃

(소설) 나는 퉁심이


제4 화


희경은 반 아이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유독 말수가 적은 조용한 아이였다.

언제나 외톨이처럼 옆에 앉은 짝과도 거의 대화가 없을 정도로 붙임성이 없었다.

소심하고

겁도 많은

융통성이라고는 일도 없는, 그냥 마음만 착한 그런 아이.

뭐든 곧이곧대로 하는 건 잘했다.

그러나

조금만 원칙에서 벗어나면 용납을 못 하였다.


집안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희경이를 퉁심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희경은 사람들이 퉁심이라 불러도 불쾌하지 않았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를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희경이라는 이름보다 퉁심이가 더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해졌다.

어린 희경은 영문도 모른 체 그 별명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희경이라는 이름은 학교에서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이발을 하기 위해 작은아버지가 하시는 이발소에 모처럼 갔다.

작은아버지는 가끔 희경의 머리를 잘라주신다.

삼구머리 스타일로 매번 똑같이 잘라주셨다.

희경이 이발을 하기 위해 의자에 앉으면 한 번도 거르는 일 없이 의례 "퉁심아"라고 부르신다.

뒤통수가 나와서 못생겼다는 말도 잊지 않고 놀리신다.

희경은 언제나 놀림을 당해도 그냥 배시시 웃고 가만히 있었다.


꽤 큰 동네임에도 이발소는 딱 한 군데 작은아버지 이발소가 유일했다.

이발소에 손님이 많아 붐빌 때는, 집에서 어머니가 머리카락이 몸에 떨어질까 봐 목에 보자기 하나 둘러주고,

손수 희경이 머리를 동그란 바가지 모양으로 잘라주셨다.


집안이 망하게 된 것 때문에 사법고시를 포기했다며 늘 원망을 해온 터라 서로 왕래를 안 하고 살다가,

희경이네가 서울로 이사 오면서 다시 왕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로 자주 오고 가는 사이는 아니었다.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는 희경의 가족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혹여 온 식구가 뭐나 얻어먹으려고 귀찮게 자주 드나들까 봐,

절대로 집으로 오라고 하진 않았다.

그래서 한동네 살아도 집으로 놀러 간 적이 없다.

작은아버지 집은 부자였다.

돈이며, 먹을거리, 옷가지 등 모든 것이 풍족하였다.

하지만 손을 벌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럼에도 늘 거지 같은 족속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분명 무시하는 말투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자존심 상하는 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아픈 말인데도 그냥 무시하며 살았다.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가난이 죄라면 죄였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가산을 탕진한 죄가 커서 더 그러했다.

집안사람들에게 있어서 만큼은 부모님이 늘 무시당하는 죄인이었다.


희경어머니는 찐빵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에 막걸리를 넣었다.

그리고

반죽한 것을 한참 따뜻한 아랫목에 두었다.

그랬더니 반죽이 한껏 부풀어올라 뻐끔거렸다.

어머니는 팥을 삶아 달고 맛있는 앙꼬를 만들었다.

군침이 돌았다.

동글동글 찐빵을 만들어 쪄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는 냄새에 어찌나 먹고 싶은지 입맛을 다셨다.

뜨거워서 이쪽저쪽 손을 옮겨가며 호호불어 맛있게도 먹는다.

모두 즐거웠다.


어머니 음식 솜씨는 남달랐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는 만능 재주꾼 같았다.

무엇이든 나와라 뚝딱하면 나오는 마술사 같았다.


언제부턴가 부모님은 희경을 퉁심이라 부르지 않으셨다.

왜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들을 수도 없었다.


모두가 부르는 별명 퉁심이

희경은 아무래도 좋았다.

희경이라 부르든,

퉁심이라 부르든,

아무 상관없이 대답하였다.

어색함도 없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불렀다.

퉁심이는 희경의 삶 속에 한 몸처럼 녹아들었다.


희경의 아버지는 차츰 공장일에 익숙해졌다.

눈치껏 설계도면 그리는 것도 배워나갔다.

하는 일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런데도 견딜만했다.

머리는 좋았다.

한때 P상고를 다녀서였을까?

계산이 빨랐다.

희경아버지는 부산에 있는 P상고를 다니다 해병대 군입대를 해야 해서 중퇴를 하였다.

교복은 입대를 하러 가는 도중 찢어서 바다에 버리고 가셨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습득력이 빨랐다.

그렇지만 힘든 일에 몸은 늘 천근만근이었다.


언니희숙은 봉제공장에서 시다를 하면서 틈틈이 미싱을 배웠다.

일은 힘들고 고단했지만 그래도 돈을 벌 수 있어서 즐거웠다.

눈썰미도 좋고 머리도 똑똑하고 영리했다.

손끝도 야무져 일을 시키면 빨리 배우는 편이었다.

하루하루 날이 가면서 사람들 칭찬도 자자했다.


희숙의 얼굴은 꽃이 피듯 활짝 피었다.

사람들이 달덩이 같다고 하였다.

동그란 얼굴에 피부도 하얗고 쌍꺼풀도 짙고 선명했다.

그래서 집에 올 때면 뒤따라 오는 남자들이 많아졌다.

반면에 희경은 못생겼다.

가족 아무도 닮지 않았다.

평범한 얼굴에 쌍꺼풀도 없는, 아직은 시골티가 남아있는 그런 애였다.

퉁심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아이로 비칠 만큼.

희경은 그 별명이 싫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항상 그대로인 아이,

아직은 순박한 시골아이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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