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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Sep 21. 2022

납작한 뒤통수를 만지며 너를 생각해

열다섯을 쓰다듬어

 나는 태생이 뒤통수가 납작하다. 납작한 뒤통수의 근원을 물으면 엄마는 내 신생아 시절 이야기를 꺼내신다. 아기였을 때 모빌만 보고 누워있었기에 그렇다고 했다. 어지간해서는 떼 부리는 일 없는 순둥이였다고 했다. 천장에 매달린 모빌을 보며 씩씩 용쓰는 게 내 일이었고, 그래서 말랑말랑한 뒤통수가 납작해졌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는 잠잘 때도 정면으로 천장을 향해서만 잤다. 아침에 일어날 땐 자기 전 누운 자세 그대로 일어났다. 그냥 타고나길 그런 건지 진짜 모빌만 보고 누워 있었기에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납작한 내 뒤통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고로 뒤통수는 볼록하고 둥글어야 예쁘다. 머리를 묶거나 풀어도 맵시가 난다.      


 외모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뒤통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대로 그냥저냥 큰 불편 없이 살아왔건만 뒤통수만은 좀 그렇다. 뒤통수에 인을 친 것 같달까. 주변 사람들 속 썩이지 말고 물 흐르듯 살아가는 게 내 일인 것만 같다. 가끔 상대방에게 불만과 저항의 욕구가 솟구칠 때면 내 납작한 뒤통수가 떠오른다.     


 소년 S의 뒤통수는 납작하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남들 뒤통수가 유독 눈에 잘 들어온다. 종종 S처럼 뒤통수가 가지런히 반듯한 동지를 만나면, 너도 참 어지간히 천장만 보고 용썼나 보다 생각한다. S는 보기만 해도 듬직한 학생이다. 자기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을 뿐인데 존재만으로도 든든하다. 선생님의 수업에 힘을 보태는 귀한 학생이다. 모든 면에서 바르고 착실하다. 수업 시간에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고, 허튼소리 한 번 한 적 없다. 맡은 일도 척척 해낸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나무랄 데 없는 순둥이 모범생이다.    

  

 그런 S의 어머님께서 상담을 신청하셨다. 모월 모일에 만나기로 했다. 모범생 S의 어머님께서 상담 신청을 하신다기에 진로 상담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도 함께 오셨다. 학부모 상담 때 부모님께서 함께 오시는 일은 흔치 않다. 두 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상담을 신청하신 이유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S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화가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집에서는 아예 입을 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님께서는 한 말씀 한 말씀 뱉어내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님께서는 고개를 숙이고 계셨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우셨다.     


 S의 납작한 뒤통수가 떠올랐다. 가지런하고 반듯한 뒤통수처럼 늘 가진런하고 반듯하게 앉아 있는 S의 얼굴이 떠올랐다. 학교에서만큼 집에서도 모범생이었을 S를 생각했다. 한참 동안 부모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부모님께서는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지금도, 앞으로도 아이가 착실하게 커 주길 바랐을 뿐이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렇다. 아이는 부모의 그런 당연한 마음이 때론 버겁다. 열다섯을 넘기고 열여섯의 어느 날, 말 잘 듣는 S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부모님께 S의 학교생활에 대해 말씀드렸다. 입 댈 것 없는 학생이라고, 스스로 커가느라 애쓰고 있다고, 칭찬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전했다. S를 믿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인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소년 S와 마주 앉았다. S는 꾹꾹 눌러두었던 마음속 이야기를 또박또박 정갈하게 꺼냈다. 자신의 의견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고 했다. 자신의 계획과 생각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S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자고 했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너의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부모님께서는 이제 들을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어렵더라도 너의 마음을 꺼내 보자고 했다. S는 내가 하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S의 가지런하고 반듯한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학교에는 S와 같은 수많은 뒤통수들이 있다. 불평과 저항은 천성을 거스르는 것 같아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분을 삭이고, 감정을 삭힌다.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있는 것이 나의 일인 것 같다. 뒤통수가 납작한 나는 가끔 어린 동지들의 고달픈 눈빛을 발견한다. 하나씩 꺼내 보는 연습을 해보아야 한다. 우린 홍어가 아니다. 감정을 삭히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나의 예의 바른 불평은 상대방을 불행으로 빠트리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별 타격을 주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오히려 솔직한 내 모습을 편안해하거나 반가워하기도 한다. 그러니 평평한 뒤통수들이여 천장만 보지 말고 좌우로 고개도 돌려볼 것을 추천한다. 어쩌면 천장에 매달린 모빌보다 백배 천배 더 재미난 것과 마주할지도 모른다.       


 S의 중학교 졸업식 날 S의 어머님으로부터 편지를 건네받았다. 긴 글이었다. 아들이지만 어렵고, 도와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가까이 가면 저 멀리 가버리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고 쓰여 있었다. S가 열다섯을 넘기고 열여섯의 고개를 넘는 동안 어머님, 아버님도 함께 고개를 넘었다. 길고 힘겨웠지만 잘 넘었다. 편지에서 짠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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