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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Dec 17. 2022

이상한 나라에서 온 작고 흥미로운 존재들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소년 J는 엄지손가락을 누르면 어김없이 방귀를 뀐다. 그냥 아무 때나 눌러보면 안다. 소녀 H는  요플레를 닮았다고 했다. 요플레를 닮은 건 어떤 거냐고 묻자 요플레처럼 생긴 거라고 했다. 소년 B는 어느 날엔가 말 머리 가면을 쓰고 학교에 왔다. 공부로 1등인 소년 K는 ‘공부 하나도 안 하고 시험을 치면 몇 점이 나올까’를 주제로 실험을 구상 중이었다. 소년 D는 야단을 맞으면서도 웃었다. 그리고 퇴근길이면 내 차 뒤를 쫓아 달려왔다. 보조개 핀 뺨으로 해맑게 웃으면서.



 와- 쟨 도대체 뭐지?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여고 시절 미술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때 미술 선생님이 내게 그랬다. “이 자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학창 시절 내내 공부가 공부로 느껴지지 않은 과목들이 몇 개 있었는데 국어, 체육, 음악, 미술이었다. 고등학교 때 심리학 과목도 그랬다. 특히나 미술 시간은 그야말로 발산의 시간이었다. 백지 위에다가, 또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유有를 만들어가는 순간이 즐거웠다. 미술 전공자도 아니니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고 마음에 거슬림이 없었다.      



 미술 선생님은 40대 중후반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곱슬머리에 검정 뿔테 안경을 쓰고 계셨다. 누가 봐도 예술가처럼 보였다. 그때는 엄하고 무서운 남자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그런 무서운 분은 아니셨지만 그렇다고 쉬운 느낌도 아니었다. 한여름에도 긴소매를 입고 계셔서 흉흉한 소문이 많았다. 왕년에 조폭 생활을 했었다느니, 팔에 칼빵이 있다느니, 용 문신이 새겨진 걸 봤다느니... 말 많은 여고에서 논란의 도마 위에 종종 오른 미스터리남이었다.     


 

 미스터리남이 가끔 우리에게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해봐-” 과제를 주실 때가 있었다. 그러면 엄청 신이 났다.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했다. 주제도 자유, 종목도 자유, 그냥 모든 게 자유로웠는데 학교에서 이렇게 자유로운 시간은 유일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유의 시간에 나는 콜라주 기법을 활용하여 엄마의 자궁을 표현했다. 잡지나 신문지, 인쇄물에서 마음에 드는 색감과 사진과 그림을 오리고 뜯어 붙였다. 친구들 앞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보라 하셔서 열심히 설명을 했다. 잡지를 뜯어 붙인 푸른 바닷속 벌거벗은 여인을 가리키며 우리의 탄생은 엄마의 자궁에서부터였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하자, 꺅- 푸하하하- 교실이 폭소의 도가니탕이 되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왼쪽 45도 각도로 기울이시고 피식- 웃으셨다. 실기점수 70점 만점에 69점을 주셨고 70점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가 거슬림이 없었으나 그때부터는 안심하고 더 까불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해봐-” 두 번째 시간에는 내 방 책장에 꽂혀있던 소설가 염상섭의 위인전을 들고 갔다. 표지에 그분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어서였다. 흰 도화지 위에  4B연필로 다짜고짜 그분의 얼굴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왼쪽 이마의 살구만 한 혹에 명암을 넣고 있을 때쯤 교실을 돌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오셨다. 내 행태를 지켜보시던 미스터리남이 또 고개를 왼쪽 45도 각도로 기울이시고 오른손으로는 턱을 매만지시며


“이 자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라고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64점을 주셨는데 배워본 적 없는 데생 실력이었으니 이 정도면 많이 봐주신 거라 생각했다.      



 지우개 도장 파기를 할 때는 구불텅구불텅 요상한 글씨체를 만들어 권지연 이름 석 자를 새겨 넣고, 스스로도 웃겨서 “슨생님 이것 좀 보세요-” 라고 말하며 도장을 쑤욱 내밀었더니, “뭐야, 잘했잖아.”라고 말해주셨다.


      

 그때 선생님께서 ‘넌 왜 맨날 이상한 짓만 하냐’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해야지’ 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러한 내 행태의 결과물에 대해 기준 미달의 점수를 주셨더라면. 아마도 다시는 엄마의 자궁 같은 것은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고, 횡으로 걸어 다니며 괴이한 행동을 하여 횡보라는 호를 가진 어느 소설가의 주름진 미소 같은 것도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미술 시간은 더 이상 자유의 시간일 수 없었겠지.


    

 소년 J의 엄지손가락을 슬쩍 눌러본다. 뿡- 하면 반 전체가 까르르한다. 요플레는 맛도 향도 좋으니 욕은 아닌 것 같아서 요플레 샘- 이라고 부르면 왜애- 라고 답한다. K의 기발한 실험 정신에는 박수를 보냈다. 허나 그냥 두면 진짜 그럴 것 같아서 에둘러 말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둬도 괜찮았을 것 같다. 말 머리를 머리에 쓰고 있는 B에게로 가서는 찰칵 사진을 찍어 주었다. D에게는 그렇게 차를 쫓아오면 위험하니 조심하자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 내 생일에 그 D로부터 연락이 왔다. 열다섯이었는데 곧 열아홉이 된다. 샘 차 뒤를 따라다녔던 시절이 그립다며, 영원한 팬클럽이라며 핸드크림 선물을 보내왔다. 카톡에서도 여전히 아앜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를 보내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D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보조개 핀 뺨과 얼굴이 그려졌다.      


  

  이상한 너희들을 보면 조금 더 이상했던 내가 생각이 나고, 그런 이상한 나를 이상했지만 흥미롭게 봐주시던 그 시절 미스터리남 미술 선생님이 생각난다.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이 혹여나 소외감을 느낄까 봐 말하자면, ‘나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대도 송구하오나 살짝 이상한 것이다. 이쯤되면 서로의 이상함을 연민하며 긍정하고 어렵더라도 흥미롭게 바라봐주면 어떠하려나. 조금 이상하더라도 괜찮을 수 있겠다.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이상한 나라에서 온 작고 흥미로운 존재들이니까.






    해맑게 웃으며 달리던 이상한 소년 D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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