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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Dec 21. 2022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별명에 관하여




 며칠 전 여고 동창 춘에게 연락을 했다. 이틀 뒤에 있을 임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 동창생들의 결혼식은 어떡하든 참석하고 싶은데 그날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고민 고민 끝에 춘에게 연락하여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춘은 뽀래미의 안부를 물었다. 나도 연락한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결혼식 후 춘이 사진을 보내주었다. 결혼식에 참석한 동창생들 얼굴을 보니 더욱 그립고 아쉬워서 고3 때 짝이었던 깨돌이에게 연락을 했다. 깨돌이는 몹시 반기며 재돌이의 안부를 전해줬다. 재돌이도 깨돌이와 마찬가지로 싱글이고 연예인처럼 예뻐졌다며 점점 예뻐지는 걸로 봐서 계속 계속 뭘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춘, 임, 뽀래미, 깨돌이, 재돌이는 얼핏 암호처럼 들리지만 여고 시절 그녀들의 별명이었고, 나는 지돌이였다.     



 스물대여섯쯤 되었을 때 초등학교 6학년 반창회에 나갔다.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자리라서 설레는 마음을 추스르고 약속 장소로 갔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호프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한 남자가 “숏지래이!”라고 외쳤다. 숏지래이의 심오한 뜻을 밝히자면 숏(short)과 지렁이가 결합된 합성어이다. 이름에 ‘지’가 들어가서 지렁이인데 좀 짧다고 해서 숏지렁이, 숏지랭이, 숏지래이가 되었다. “숏지래이!” 소리를 듣는 순간 설렘은 휘발되고 정겨움과 반가움이 밀려왔다. 6학년 5반 교실의 나무 책상에 앉아 있는 듯했다. 내 별명을 부른 남자는 대발이였다. 대발이 옆으로는 돌삐, 숙주, 마귀할멈, 싱기, 똥길이가 앉아 있었다. 옹고와 소띠, 주발이가 오지 않아 아쉬웠다.     



 한동안 이름 뒤에 말을 이어 별명을 짓는 것이 유행이었다. 예를 들면 조인성게비빔밥, 박서준비운동 같은 것이다. 중3 아이들은 내게 ‘권지연구대상’이란 별명을 붙이고는 선생님과 찰떡이라며 만족해했다. 무언가 반박할 수 없는 작명 실력에 내심 감탄했다. 그 정도면 양호한 것이었다. 한 녀석은 ‘권지연날리기’라고 하여 오존층 너머 멀리멀리 날려갈 뻔했다.



 가만히 보면 별명은 대부분 비하 발언이다. 대놓고 업신여기거나 우스꽝스럽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별명을 부른다고 해서 속상하거나 언짢지는 않았다. 별스러워하지 않으니 별명이 하나둘씩 자꾸 붙어서 별명 부자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길거리 간판을 빼놓지 않고 유심히 보는 습관이 있다. 간판에 걸린 가게 이름이 가게의 특징을 기막히게 내포하면서 창의성이 도드라질 때면 희열을 느꼈다. 별명도 마찬가지였다. 유달리 재치 있게 지어진 별명 앞에 탄복했다. 언어를 적재적소에 배열하여 예사롭지 않은 말하기를 하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재밌었고, 그러다 보니 금방 가까워졌다.     



 쌀알이란 별명을 지어준 건 룸메이트였던 정 선생이었다. 그녀도 언어를 맛깔나고 신나게 요리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우린 유브이(UV)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를 들으면서 유세윤은 천재라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어느 날엔가 그녀가 “선생님 꼭 쌀알처럼 생겼어요.”라고 말했다. 평소 쌀알과 밥알, 밥이 가진 경이로움 대해서 진한 여운을 지니고 있던 터라 별명이라기엔 생경한 표현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물론 정 선생의 발언은 1차원적인 표현에 불과했지만. 쌀알이란 말은 어느새 주변 이들의 폭풍 공감을 얻으며 별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털보, 요미, 똥글, 담쓰, 쫌쫌씨, 표고, 빵뚤, 쌍디, 투투, 뽕사마, 손마니, 애땅, 동맹, 동자씨. 모두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별명이다. 별명이 많은 나는 또 그만큼 많은 별명을 지어 부른다. ‘그’라는 존재 자체가 좋은데 표현할 길이 없을 때 별명을 짓는다. 사랑스럽다고 느껴지는 순간순간마다 안아 줄 수도 없고, 깨물어 줄 수도 없어서 별명을 지어 부른다. 맞춤복처럼 꼭 맞으면서 입에  달라붙은 별명을 생각해내면 몹시 뿌듯하다. 성격이 시원시원하거나 개그 코드가 통하는 사람에게는 좀 더 웃긴 별명을 지어준다. 그러면 별명을 떠올리기만 해도 든든하고 행복해진다.     



 별명은 내가 그를 자세히 보는 방법이다. 아끼는 마음이다. 너의 허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너는 내 사람이란 뜻이므로 내 앞에서는 마음껏 까불어도 된다는 뜻이다. 너를 웃기고 싶다는 뜻이고 니가 웃으면 나도 좋다는 뜻이다. 콩을 팥이라고 우겨도 반쯤은 넘어가 줄 수 있다. 내가 그의 별명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별명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별명을 지어줄, 지어도 될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창작 욕구가 활활 타오르는 뮤즈를 만나기가 영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해도 내 안의 창작에의 의지를 막을 순 없다. 언제고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에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문정희)  






생각난 김에 오늘 아침에 별명을 불러보았다.


손마니언니- 띠동갑 언니, 손이 많이 가서 손마니언니

까동 - 까칠한 동생, 손마니언니만 부르는 별명



뽕사마 - 어릴 적부터 함께한 안동 권 씨 동네오라버니, 뽕디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주로 뽕사마

할매 - 어쩐지, 왜, 어느 순간부터 할매라 부름. 손자 거두어들인다 생각하고 지내고 있음



투투 - 소꿉친구, 투투는 개구리 왕눈이에 나오는 아로미의 아빠

별명을 안 불러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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