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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Dec 26. 2022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절 새벽송의 기억




 성탄절이 되면 쑥스럽게도 여전히 마음이 울렁거린다. 어릴 때는 예수님 탄생보다도 성탄절이면 허용되었던 것들에 더 두근거렸다. 성탄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여 있던 장난감, 꼬부랑 손 글씨 카드, 마니또 선물 교환, 촛불 무용과 합창 같은 것들로 채워진 성탄 발표회, 올나이트.. 생각만 해도 콩닥거리는 순간들이었다. 추운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던 콩닥거림의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마흔 넘어 어른이 된 지금에도 추운 계절, 성탄일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울렁이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생생한 질감으로 기억되는 것은 성탄절 새벽송이다. 어릴 땐 집집마다 새벽송을 돌았다. 그땐 어렸기 때문에 집에서 새벽이 되기를 기다렸다. 띵-동 적막한 새벽을 깨우는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면 볼 빨간 무리가 함박웃음을 짓고 다짜고짜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잠에 취해 꿈결인 듯 캐럴 소리에 귀 기울였다. 열린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과 겨울 냄새, 화음인 듯 아닌 듯 오묘한 중창단의 캐럴 소리가 영화 속 장면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스무 살이 되고부터는 새벽송을 따라다녔다. 이쯤부터는 집으로 다니지 않았다. 새벽 캐럴이 어떤 이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다 하여 집집마다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다. 새벽 현관문 앞에서의 꿈같았던 시간은 추억 속의 시간이 되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일부가 되었다. 대신 파출소나 소방서 같은 곳으로 갔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밤과 새벽 사이에도 일터를 지키고 계시는 분들에게 찾아갔다.      



 회색 스타렉스가 새벽을 달렸다. 어깨, 팔, 궁둥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스타렉스가 내달리는 대로 몸을 맡겼다. 차 안에 있어도 손이 시리고 발꾸락도 시렸다. 운전대를 잡은 전도사님은 지금의 나보다도 젊었다. 젊은 전도사님이 도착했다-고 말씀하시면 우르르 내렸다. 인력시장의 봉고차 같기도 했다.      



 차에서 내리면 그러잖아도 캄캄한데 하얀 입김 때문에 친구들 얼굴이 잘 안 보였다. 호호 불며 시린 손을 부비면 군데군데 입김이 모락모락 폈다. 파출소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는 동안에 귀찮아하시면 어쩌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성가시게 여기실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경찰관님 두어 명이 야간 근무를 하고 계셨다. 소방서엔 더 많이 남아 계셨다. 화려하고 소란한 바깥의 크리스마스 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고요하고도 거룩한 밤이었다.     



 인사를 드리고 연습했던 캐럴을 불렀다. 따뜻한 온기 덕분에 뺨도 귓불도 바알간 젊은이들이 열심히 캐럴을 부르면 빙그레 웃거나, 소리 내어 웃으셨다. 내가 몸통보다 더 큰 기타를 메고 어설픈 실력으로 좡좡거릴 땐 박장대소를 하셨다. 특히 태화지구대 경찰관님들께서는 매년 미리 준비해 두신 초코파이 한두 통을 건네주셨다. 다른 파출소나 소방서에서도 이따금 오예스나 초코파이 같은 것들을 주셨다. 따수운 정이 초코파이를 타고 전해졌다. 초코파이의 목적 달성이려나.   



 회색 스타렉스는 성탄절 어둠을 헤치며 부지런히 구석구석을 달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을 보며 측은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일었다. 저 들밖에 한밤중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같은 캐럴을 부르며 마음속으로 그분들을 위해 기도했다. 밤과 새벽 사이를 지키는 사람들의 오늘과 내일을 지켜 주십사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몇 해 동안 그렇게 성탄일의 밤과 새벽 사이를 내달렸다.     



 언제부터인가 새벽송을 돌지 않게 되었다. 새벽송을 돌지 않는다고 했을 때 섭섭한 마음과 함께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태화지구대 초코파이였다. 태화지구대 경찰관님들께서 매년 그러했던 것처럼 초코파이를 사놓고 우리를 기다리시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미리 가서 말씀을 드려야 할까 고민하다가 찾아가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사랑을 나누고 가셨는데 내 삶은 인색해도 너무 인색하다. 낮아지고자 마음먹는 순간 교만이 고개를 쳐든다. 넓어졌나.. 생각하면 다시 옹졸해졌다. 나누기는커녕 내 것 닳아질까 전전긍긍 사랑의 본질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새벽송은 별 볼 일 없을지라도 내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이었다. 캄캄하고 적막한 밤에게 어설프고 우스운 웃음이라도 나눌 수 있었다. 성탄일 밤과 새벽 사이 회색 스타렉스를 타고 달리던 젊음들, 그 하찮은 움직임은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했던 몸부림이었다. 화려함을 뒤로한 채 나누는 삶을 따르고자 했던 애절하고 설익은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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