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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동안 이렇게 힘든 김장을 어떻게 했어?

병든 배추 받고 마음은 멍들다

by 그리여

주말농사를 접으면서 김장하는 게 단출해졌다. 밭에서 수확을 하여 손질하며 300 포기 하느라 골병이 들었던 지난날들에 비하면 지금은 식은 죽 먹기다. 내편과 나는 손발을 오랫동안 맞춰서, 일을 하면 뚝딱 빨리 하는 편이다.

아파트에서는 배추를 절이기가 불편하니까 몇 해 전부터는 절임배추를 구매해서 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작년에 맛있어서 100kg 재구매를 하였는데 불상사가 생겼다. 처음 한 박스를 뜯어서 할 때는 그럭저럭 안 좋은 게 보여도 뜯어내고 손질하면서 했다. 올해 날씨가 배추농사를 짓기에 좋지 않았다는 걸 알기에 이해하면서 하려고 했다. 내편의 '아 이건...'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속으로 '제발 문제없기를 제발...', 하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계속해서 안 좋은 게 나오고 병든 게 나왔다. 어떻게 저런 걸 넣었지 쾌씸하기까지 했다.

김장을 중단하고 다른 박스를 뜯어서 확인해 보니, 대부분이 이렇고 포기는 이것저것 잘라내니 손바닥만 해진다.


사이트를 들어갔더니 폐쇄가 되어 있었다. 난리가 났구나 직감했다. 어찌어찌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주말이라 불통이고 톡톡으로 보냈더니 묵묵부답이다. 오늘 시간을 내서 같이 김장을 도와주던 막내가 폭풍검색을 하여 피해자 오픈채팅방을 찾아서 들어가 보니 피해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배추 속은 잔뜩 만들어 놨고, 하다가 중단할 수는 없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내일 시골에 아버지 갖다 드릴 것도 마무리해야 하는데 속상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마트로 달려갔다. 마침 세일을 하고 있어서 인터넷보다는 좀 비싸긴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우선은 40kg을 구매했다. 이것도 배추가 작았지만 병들어서 누렇게 무른 건 아니라 그냥 하는데 착잡하다. 이게 무슨 일이람

옛날에 농사지어서 할 때 배추가 녹아서 부랴부랴 시장 가서 사서 하던 일이 생각났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김장을 시작하였다.


"엄마 김장이 보통일이 아니네"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이건 일도 아니야"

"와 이것도 힘든데 어떻게 했대"

"예전에는 자다가 일어나서 배추 뒤집고 또 뒤집고 새벽부터 추운데 씻어서 하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지금은 슬슬 해도 아빠랑 둘이 하면 반나절이면 끝나지"

"엄마 배추 속을 넣는데 그냥 넣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다리고 아프고 도대체 이 힘든걸 그동안 어떻게 했어?"


막내가 엄마 아빠의 일을 체험하면서 고생한 걸 알아줄 정도로 커버렸다.


"엄마 이제는 나에게 전수해 줘. 내가 할게 엄마 몸도 안 좋은데 이제는 내가 해보도록 할게"

"말이라도 고맙네"

"아니야 진짜로 알려줘"

"엄마가 하다가 정말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때 하렴"

"아빠 이제 김치 사 먹을까"

"안돼 우리는 김치를 많이 먹어서 해서 먹어야 돼 내가 해줄게 걱정 마"

"엄마, 아빠가 힘드니까 그렇지"

"아직은 할 수 있어 괜찮아"

"이제는 내가 꼭 참여할게. 엄마 아빠 나를 수제자로 키워줘"


딸과 두런두런 얘기를 하면서 하니까 재미있다. 내편은 막내가 속을 넣는 게 야무지다고 흐뭇하게 바라본다.

김장날.png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속상하다. 오늘 끝내고 홀가분하게 쉬려고 했는데, 김치 속이 많이 남아서 냉동실에 얼려두고 일부는 김치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11월 한 달은 김장주간이었다. 동치미, 알타리. 섞박지는 미리 해두었기에, 김장의 하이라이트 배추김치를 끝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쉽게 할 수도 있었는데 시간이 많이 허비되고, 몸도 마음도 멍들었다.


먹는 거로 장난치는 사람들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한숨이 모니터를 뚫고 나오는 것 같다. 이 집 저 집 일정이 꼬이고 싸우는 집도 있다고 한다.

살면서 숱한 일을 겪었어도 대충 참고 넘어갈 수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어 반품을 신청하고, 환불을 요청했는데 답이 없다. 베란다에 쌓아둔 배추 박스가 쓰레기가 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저렇게 허접한 걸 어떻게 넣어서 팔았는지... 차라리 물량이 없었으면 팔지 말았어야 하는데, 거짓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업체를 이해할 수가 없고 쾌씸하다. 오픈채팅방에 올라온 톡들을 보니 사업자 등록을 하고 이름을 갈아치우며 장사를 하는 집안네들이며, 사기라는 것이다. 그걸 일일이 찾아서 올려둔 사람도 대단하다. 김장은 집안의 대행사이기에 얼마나 속상했으면 저랬을까 알기에 이해가 되었다. 심상치 않은 사태로 이어질 기미가 보인다. 빨리 해결되길 기대해 본다.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이해하려고 했던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엄마 허리와 등짝이 아파"

"안 하던 일을 해서 그러네"


딸의 등에 약을 바르고 주물러 주고 온찜질을 하게 해 주었다. 고생한 딸과 가족들이 모여서 수육을 삶아서 육젓 같은 오젓을 양념해서 올려 먹고, 김치를 싸서 먹으며 애써 웃어본다.



#김장 #월동준비 #절인배추 #사기

#공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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