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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Aug 21. 2024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나아가자

'강사'

 취준생 시절부터 가슴에 품었던 꿈이다. 막연하지 않고 꽤 뚜렷했다. '대기업에 취업 후 경력을 쌓고 사내 강사로 시작해 보자'라고 계획을 세울 만큼 말이다. 하지만 대기업 입사엔 실패했고, 꿈과는 거리가 먼 공무원이 되었다.

'꿈은 개뿔!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자 잠시 꿈을 접어 두기로 했다.


 그냥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자 싶었다. 좋은 짝을 만나 알콩달콩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삶.

'이 정도의 현실적인 소망은 쉽게 이루겠지?'

오판이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직장 동료가 말했다.

"좋은 사람 만나려면 피똥 사는 노력을 해야 돼. 나도 소개팅 100번 정도 해서 집사람을 만났거든."

한 번만 소개팅을 해도 결과가 안 좋으면 감정 소모가 큰데 100번까지 만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좋은 사람 한 명 만나는 일이 취업하는 일만큼 어렵다니.  


 연애도, 결혼도 쉽지 않다면 '일로 인정받자' 싶었다. 성취감 또한 소박한 행복의 원천일 수 있으니까. 몇 년간 일에 매진하며 '일잘러'가 되었다. 그럼 빠른 승진에 성공했을까? 아니다. '능력은 짭밥을 이길 수 없다.'는 공직의 불문율만 재확인했다. 허탈했다. 고속 승진을 바란 건 아니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과 벌어진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소탈한 바람마저 과욕이었던 걸까.


 일할 동기가 꺾이자 다시 꿈을 생각했다.      

'지금 시작해도 강사가 될 수 있을까?'

열망은 여전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말이다. 근원적인 고민에 빠졌다.

'강사가 될 소질은 있는 걸까?'




"학생의 설명, 아주 좋았어요!"


 대학교 3학년 경제학 전공수업. '노동 시장의 임금 경직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후 교수님께 칭찬을 받았다.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에게 박수세례도 받았다. 이쯤 되면 '잘한다'라고 스스로 인정하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노력하면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50명 남짓한 강의실에서 벌벌 떨며 첫 발표를 했던 대학교 1학년 때보다 그날은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했으니까.


 시간이 흘러. 공직에 입사 후 또다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했던 순간이 있었다. 구청 전 직원이 강당에 모이는 월례 행사에서 사회를 맡게 된 것이다. 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 앞에 섰던 터라 긴장을 했고, 약간의 실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동료들은 '잘했다'라며 칭찬해 주었다. 행사장을 정리하고 부서로 돌아가려던 찰나, 축하 공연을 했던 팀원 한 분이 다가왔다.


"혹시 뭐 하는 분이세요?"

"공무원입니다."

"여기서 왜 이렇고 있어요. 제가 스피치 강사도 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딱 강의에 맞는 톤이에요."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칭찬을 들으니 얼떨떨했다. 무엇보다 마음이 흔들흔들했다. 공직에 첫 발을 내딛은 지 얼마 안 된 시점. 여기서 뭐 하고 있냐는 스피치 강사의 말 때문에 '혹시 직업 선택을 잘못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계속 출렁였다. 하지만 애써 넘겼다. '그냥 예의상 하는 칭찬이겠지'라며.  


 몇 년 뒤. 신임 구청장 취임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행사를 주관하는 부서 팀장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햇살씨! 사회 볼 사람이 필요한데 이번에도 어떻게 좀 안 될까?"

"안 됩니다."

일에 대한 의욕이 한풀 꺾였던 시기라 단번에 거절했다. 며칠 뒤 팀장님이 직접 나를 찾아왔다.

"이번 한 번만 부탁할게. 다른 사람들이 전부 안 하겠다고 해서.."        

결국 팀장님의 간청과 부서장의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수락하게 되었다.


 500명이 참가하는 2시간이나 진행되는 행사. 이번엔 떨지 않았다. 자신감? 아니다. '사회를 잘 보지 못하더라도 그건 억지로 시킨 사람 책임이야'라는 '배 째라'식 무덤덤함 때문이었다. 준비는 열심히 했지만 잘해 보겠다는 마음 없이 진행했던 행사. 결과를 의외였다. 행사가 끝날 즈음 구청장님이 격려 차 한 마디를 건넸다.


"대기업 같은 곳에 가서 강의해도 잘하겠다."


 말 한마디가 가슴을 쿵! 때렸다. 꿈이라 여겼던 일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을 줄이야! 물음표였던 강사의 꿈이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강사는 무조건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오랫동안 꿈을 그릴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일까. 나는 '뜨거운 열정'이 유일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점점 멀어져 가는 꿈에 다시 불을 붙인 타인의 인정, 그런 평가가 객관적인 치열하게 고민했던 나의 서늘한 인식이었다.


 꿈을 향해 가는 길. 우리는 자주 멈칫한다.

'의지가 부족한 걸까?'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면 스스로 질문해 봐야 한다. 혹시 '객관성이 결여된 건 아닐까?라고. 움츠린 꿈을 다시 펼치게 만드는 건 때론 단호한 결심이 아닌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다. 생각해 보라. '나는 노래를 잘하고 싶다'라는 다짐보다 '당신은 노래를 잘 부르는 것 같아'라는 누군가의 한마디 말에 마음이 꿈틀댄다. 만약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면? 한 걸음 물러서서 냉정하게 바라보자. 정말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것인지 말이다.


 꿈이 있는가? 그렇다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듯 뜨거우면서도 차갑게 나아가는 것이 좋다. 꿈을 위한 여정엔 뜨거운 결의와 서늘한 인정 모두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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