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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Aug 14. 2024

안 좋아해도 싫어하진 않기로 했다

아주 잠시 당신 아들이어서 다행입니다

 꿈이나 좋아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은 행복할까? '좋아하는 일이 생계와 직결되면 고통이 된다'는 견해를 감안하면 행복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복이 많다고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업이 될 수 있다'라는 건 돈을 벌 만큼 잘할 수 있다는 의미니까. 축구를 좋아한다고 축구 선수가 될 수 없듯 '잘해야' 직업이 된다.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이 생계수단이 된다면 행복하다 단정할 순 없어도 복 받은 사람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좋아하지 않은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 비해선 분명 그렇다.


 나는 원치 않는 일(공무원)을 직업으로 택했다. '누가 하라고 시켰니?'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누구도 강요하진 않았다. 문과생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 선택을 강요당한(?) 느낌이 있을 뿐. 좋아하는 일을 잘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말한다. '복잡하게 생각 말고 그냥 월급 받고 적당히 살아'라고. 이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적당히 만족하며 마음 편히 살기 때문이다.     


 나는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안다. 그래서 좀 더 고통스럽다. 눈앞에 놓인 급한 일을 두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상상을 자주 다. 잘할 수 있는 확신도, 퇴사할 용기도 없으면서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하는 일을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고민이었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계속 다녀야 하는데 이렇게나 힘들어하니 어쩌면 좋을까?'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관성처럼 반복됐다. 그만두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경제적 궁핍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말이다. 다행(?)인지 몰라도 이리저리 출렁이던 마음을 진정시킨 사건이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일하던 시절.

 아버지뻘 되는 손님이 동사무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아버님은 손을 떨며 서류를 내밀었다.      

"사망 신고 좀 하려고요. 사망 진단서는 여기 있어요."

사망자가 아들인 것을 확인하고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버님이 물었다.

“혹시 담당자 선생님은 공무원 한지 얼마나 되었나요?”

“아.. 저는 1년 6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아 그래요? 우리 아들이랑 나이가 비슷하겠네.. 집이 넉넉하지 않아서 아들은 좀 안정적으로 살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었어요.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아들놈이 몇 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어렵게 합격을 하고 그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다가 며칠 전 교통사고가 났어요.. 해 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아버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님.. 울지 마시고...”

나도 왈칵 눈물이 났다. 엄마와 사별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마가 살아 있다면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엄마!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잘 자랐다고 말할 정도면 잘 큰 거 맞지?'

엄마의 대답도 어쩌면 아버님이 하고 싶었던 말.

'아들아, 고맙다.'가 아니었을까.  

  

 듣고, 말하고 싶어도 할 없는 마음. 그런 안타까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 그 순간 아버님의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참 동안 눈물을 글썽이던 아버님은 말했다.   

“담당 선생님이 아들처럼 느껴져서 주책을 떨었네요. 잘 들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마음이 한결 괜찮아지네요."


 누군가를 떠나보낸 아픔은 아주 천천히 사라진다. 아버님도 오랫동안 묵직한 아픔을 감당하셔야겠지. 축 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님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잠깐이었지만 아들이 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가슴 아픈 사연으로 무겁게 알게 되었다.

 

내가 싫어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간절한 소망이나 꿈일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지금 하는 을 더 이상 싫어하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안 좋아해도 싫어하진 말자'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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