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처럼 Aug 28. 2024

안 하던 짓 할 용기

 '안 하던 짓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는 뜻인데 나는 변해야 했다. '강사'가 되기로 했으니까. 

'어떤 분야를, 어떤 주제로 강의하지?' 

막상 시작하려니 아무것도 없었다. 직업 또한 사람들이 가장 비생산적이라고 말하는 '공무원'아니던가.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가장 먼저 시도했던 건 '업무 매뉴얼' 만들기다. 인사이동이 이루어지면 공무원은 일시적으로 '업무 마비' 상태가 된다. 인수인계시스템이 엉망이라 그렇다. 최소 1년 이상했던 업무를 몇 시간 안에 인수인계하고 끝내야 한다. 제대로 된 업무 매뉴얼도 없다.      


 이런 현실을 비집고 들어 매뉴얼을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여유 있으면 미친 듯 매뉴얼을 작성했다. '매뉴얼의 달인'으로 소문이 날 만큼. 아무도 안 하던 일을 하니 주변 사람들이 간섭하기 시작했다. 

'네가 전문가야? 만든 매뉴얼이 100프로 정확하다고 할 수 있어?' 

'힘들게 업무 배워서 후임자 좋은 일만 시키는 거 아니야!' 

이런 훈수질에 종종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매뉴얼을 제작하고 활용하는 것이 강의 기회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강사 모집에도 꾸준히 도전했다. 꺼렸던 사내 행사의 진행도 자주 맡았다. 역시 사람들이 입을 댔다. 

'뛰어난 강사 엄청 많아. 지금 준비한다고 잘 될까?' 

'사회 보는 거랑 강의는 다른 영역이야.' 

사람들의 평가에 자신감이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꿋꿋하게 견뎠다. '참새들이 어찌 봉황의 뜻을 알랴'라고 호기로운 척하면서 말이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지원서에 한 줄 한 줄 채워 나갈 이력이 생겼다. 물론 '업무 매뉴얼 경진대회 표창', '00 기념식 행사 진행'처럼 강의와 약간 무관한 경력이었다. 강사로 섭외해 주는 곳이 없었다. 답답해하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공무원 교육원입니다. 지원서 보고 연락 드렸어요. 신규 직원 대상으로 강의 요청드려도 될까요?"

"네?? 뭐라고요?"

갑작스러운 전화에 깜짝 놀라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비대면(온라인) 강의입니다. 가능할까요?"

코로나가 심해서 대면이 어려웠던 시기. 고민이 되었다. 온라인으로 무언가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얻은 기회인가! 

"네. 해보겠습니다."

조건반사적으로 수락해 버렸다. 무작정 하겠다고 했지만 첫 출강이면서 비대면(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하는 강의. 수강 인원도 200명이라 부담감은 컸다. 


 강의 당일. 아침부터 콩닥콩닥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잘할 수 있을까?' 

긴장감을 앉고 강의를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000이고요..."

2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네.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의 끝. 내 머릿속엔 '일단 끝났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저 '해냈다'는 데 안도한 나와 달리 수강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실무적인 강의라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들었던 강의 중에 최고!'

'공무원 되기 전 학원 강사를 했었는데 제가 강의 듣는 귀가 좀 있습니다. 강의력이 너무 좋아요.'


 얼떨떨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하는데 배가 너무 불렀던 그날의 기억. 아직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경력도 없고, 부담만 안고 시작한 강의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강의와 무관한 경험들이었다. 실무적인 강의를 가능케 한 건 오랜 시간 만들던 매뉴얼, 강의력은 각종 행사를 진행하며 쌓였던 노하우에서 비롯되었다.  


'점들이 모여 선이 된다'라고 한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관련 없어 보이는 과거의 일이 점처럼 모여 현재에 도움을 준 이다. 만약 '네가 매뉴얼 전문가야?', '뛰어난 강사가 엄청 많아.'라는 말에 흔들렸다면 만족할 만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SNS를 보면 세상은 전문가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착각 때문일까.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하며 '내 주제에 무슨!'이라며 쉽게 포기하거나, 타인의 도전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쉽게 받는 시대. 그런 만큼 우리는 '전문가처럼 될 용기'는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점들이 모여 선이 된다는 잡스의 말은 옳다. 단, '안 하던 짓 할 용기가 있을 것'이라는 조건을 붙여야 유효할 듯하다. 기억하자. 시도할 용기가 있어야 비로소 점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