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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Sep 04. 2024

밥로스 아저씨 무작정 따라 하기

 우리 사회엔 공식이 있다.

 '10대 대학 진학 - 20대 취업 - 30대 결혼'

이 과정이 쉬울 줄 알았다. 다음과 같은 진짜 공식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10대 명문대 진학 - 20대 대기업 이상 취업 - 30대 조건 좋은 사람과 결혼'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인생 공식. 이 흐름을 따를 수만 있으면 유리하다.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좋은 사람 만날 기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같은 것 말이다. 부러움을 유발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함을 느낄 수 있는 혜택은 덤이다. 이 공식에선 무조건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중요하다. 명문대 입학에 실패하면(국영수를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건 사실상 어렵다. 불행히도 나는 명문대 진학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다음 스텝으로 가려고 죽어라 발버둥 쳤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가까스로 먹고 살 직장은 구했지만 그러는 사이 마흔 살이나 먹은 청년(?)이 되었다.


'공부하고, 일하고, 사람 만나는 과정이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

그저 행복하고 싶을 뿐인데 뭔가 이상했다. 답이 보이지 않는 고민 끝에 나는 더 이상 사회가 만든 이상한 공식대로 살지 않기로 했다.




 희한하게도 정해진 틀이나 인식에서 벗어나 '마이 웨이'를 추구할 때 오히려 일이 잘 풀렸다.


 초등학교 입학 전, 엄마에게 학원을 보내 달라 조른 적이 있다. 없는 형편이라 고작 3개월 밖에 다니지 않았지만 나는 한글도 전부 익히고, 세 자릿수 덧셈까지 해낸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한 순간 열등생이 되었다. (물론 개인 가정사도 일부 작용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의지대로 재수를 선택했을 때 결과가 좋았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늘 제자리걸음이던 모의고사 성적이 학원 수강 3개월 만에 쑥쑥 올랐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원 일과 병행하면서 강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게 가능하겠어?'라며 의심했지만 묵묵히 노력해서 첫 발을 내디뎠다. 현재 진행형인 작가의 길도 마찬가지다.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니 '책을 발행하면 한 권이라도 팔겠어?'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예상을 뒤집었다. 나만의 노하우로 8,000원짜리 전자책을 55만 원어치나 팔았다.


 마이웨이. 분명 타인의 시선에 관심을 두지 않는 태도이기에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설계한 공식에 맞춰 살 때보다 더 행복했다.


사회가 만든 공식을 따라 하면 노력은 '더 노력해!'라는 고된 피드백으로 돌아 오지만

마이웨이를 따라가니 노력은 성장의 밑거름 되다.        


사회가 만든 공식을 따라 하면 실패는 자존감을 무너뜨렸지만

마이웨이를 따라가니 실패는 그냥 도전의 일부였다.


사회가 만든 공식을 따라 하면 나는 느리고 더딘 거북이였지만

마이웨이를 따라가니 재빠르고 똘똘한 토끼가 되었다. 




 '마이웨이'로 살며 내가 떠 올린 건 어릴 적 TV로 보던 미국의 화가 밥로스 아저씨의 그림이다. 그는 붓 하나와 물감만으로 풍경화를 그렸다. 그의 그림엔 밑그림이 없었다. 그것이 다양하고 멋진 풍경화를 그려 낸 비결이었을 것이다.


 밥로스의 그림과 달리 우리는 밑그림만 너무 중시하고 있다. 웬만큼 노력해서는 닿기 어려운 밑그림 말이다. 먼저 가 본 사람도 힘들고, 따라가는 사람도 버거운 설계도가 바람직한 것일까. 중요한 건 자신만의 색깔로 그림을 완성하는 일이 아닐까. 물론 가 보지 않은 길을 걷는 건 두려운 일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두려움이 싫어 누군가를 따라 걸었더니 웃지 못했다. 뚜벅뚜벅 걷는 나만의 길. 거기엔 행복이 있었다. 힘들어도 웃을 있는 그런 행복말이다.


 공부하고, 일하고, 좋은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어려워진 시대.

그 소박한 행복을 위해 노력할수록 행복과 더 멀어지는 역설적인 시대.  

힘겹게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되찾아 주는 일은 이상한 밑그림을 따라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하얀 도화지 한 장을 건네는 것일지 모른다. 밥로스 아저씨처럼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어때요? 참 쉽죠?"

조금 늦어도, 조금 달라도, 잠깐 삐걱거려도

그림을 다 그린 후 쉽다고 말하는 밥로스 아저씨처럼 행복을 느끼는 일도 좀 쉬웠으면 좋겠다.





 다음 화(에필로그)를 마지막으로 '조금 느리게 살아도 괜찮아'의 연재를 종료합니다. 브런치에 입성 후 무작정 써 본 자전적 에세이를 열심히 읽어 주신 구독자와 늘 댓글 달아 주시는 이웃 작가님 감사드려요.^^ 다음 에세이 '비 오는 날엔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도 많이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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