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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Jul 31. 2024

박지성이 롤모델? NO!

 가난함과 엄마의 빈자리로 바람이 쌩쌩 불던 마음. 이 서늘함을 없애 보려고 발버둥 친 적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롤모델' 찾기였다.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이라도 찾아야 '희망'이란 두 글자를 가슴에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0대엔 스포츠 선수들이 롤모델이었다.  


 "축구 교도소에 와 있어요."

 축구 선수 박지성이 네덜란드 프로 축구팀에 처음 입단했을 때 했던 말이다. 언어, 음식, 사람 모든 게 낯선 상황. 오직 축구만 해야 하는 환경이란 걸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 박지성은 결국 잉글랜드 유명 프로팀(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진출했다.    


 피겨스케이팅 연습장 없는 열악한 환경, 추위에 떨며 먹고 싶은 걸 참아 가며 훈련에 매진, 부상이 있던 아픈 날에도 울면서 연습 시간을 채우고, 야식 한 번 먹어 본 적 없는 선수. '기적을 일으키는 신이 아닌 자신의 의지'라는 명언까지 남긴 사람.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이야기다.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

박지성, 김연아 선수를 보며 내가 품었던 생각이다. 열악한 환경 극복이 최대 과제였던 만큼, 이들처럼 노력하면 빈곤한 경제 상황과 결핍된 마음까지 극복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앞으로 뻗어 나가지 못했다. 아니 나아갈 수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하며 하루하루 살아 내기 바빴으니까.


'열심히 노력하는데 내 삶은 왜 멈춘 느낌이 드는 걸까?'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30대 중반. 풀지 못했던 의문에 답을 찾았다. 그건 스포츠 영웅들과 달랐던 '출발선'이었다.


 박지성 선수의 뒤엔 훌륭한 부모님이 있었다. 박지성의 아버지는 아들이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1인 기획사를 설립했고, 어머니는 박지성이 해외에서 축구할 때 아침과 점심에 꼭 한식을 챙겨 먹였다. 김연아 선수에겐 어머니가 큰 버티목이었다. 김연아의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훈련을 늘 함께 했고, 피겨 스타들의 비디오를 직접 챙겨가며 동작을 교정 봐주었다.


 선수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참 부러웠다. 나처럼 부러워하는 사람을 위해 세상은 말했다.

"조건을 갖췄다고 전부 훌륭한 사람(선수)이 되는 거 아니야."

"조선시대 노비로 안 태어 난 게 어디야"    

전부 맞는 말이다. 갖추어진 상태에서 노력하는 것도 힘든 일이고, 신분제가 없는 나라에 태어난 것도 다행이라고 여기니까.


 문제는 또 다른 목소리.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아니다."

"부모찬스가 있어야 성공한다."

여기에 흙수저, 금수저라 칭하는 수저 계급론까지. 누가 봐도 흙수저인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힘이 빠졌다.

'나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연히 청춘 콘서트를 진행했던 어느 강연자의 TV 인터뷰를 봤다. 강연자는 강연하며 받았던 인상 깊은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눈에 띈 질문이 있었다.

"가난함을 딛고 버티며 살와 왔는데 나아지는 느낌이 없어요.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요?"

강연자도 청년에게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질문. 그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내 의문과 같은 맥락이었다.




 현실에선 찾을 수 없는 롤모델과 청년이 했던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옛이야기를 읽었다. 박지성, 김연아 선수처럼 역시 위대한 영웅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 중학교 역사책에서 처음 접한 그는 서양의 역사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마케도니아의 작은 영토를 지금의 시리아, 이집트를 비롯해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더스강까지 확장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 그럼 롤모델인가? 아니다. 그는 명백한 금수저였다. 아버지(필리포스 2세)의 배려로 우리가 잘 아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왕궁으로 초빙해 족집게 과외까지 받았다. 덕분에 알렉산더 대왕은 경제, 역사, 철학, 문학 등 다방면에 교양을 쌓았다고 한다. 롤모델에서 탈락!


 한니발 장군은 어떤가. 그는 카르타고(현 튀니지 일대)라는 고대 도시국가의 장군이었다. 한 번쯤 그의 유명한 일화를 들어 봤을 것이다. 4만 대군을 이끌고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의 75만 대군을 무찔렀던 기적 같은 승리(제2차 포에니 전쟁)를. 하지만 한니발도 이름 있는 장군의 아들이었다. 롤모델에서 패스!     


 내가 주목한 건 카르타고와 로마가 벌인 3차 전쟁(제3차 포에니 전쟁)이었다. 카르타고가 멸망하게 된 이 전쟁에서 롤모델을 찾았다. 영웅? 아니다. 이름 없는 카르타고인들이다. 이 전쟁에서 카르타고인들은 로마의 계략에 빠져 모든 무기를 빼앗겼다. 그럼에도 맨손으로 싸우며 버텼다. 그것도 3년이나.


 스포츠 스타와 역사의 영웅을 제쳐두고 이름 없는 카르타고인에게 자꾸 끌렸던 이유. 그건 '버팀'이었다. 생존을 위한 버팀 말이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카르타고인들을 지켜봤다면 나는 울면서 한 마디 건넸을 것이다.

"그동안 너무 잘 버텼어요."  

'잘 버텼다'라는 이 짧고 평범한 말.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일지 모르겠다.   




 카르타고인의 저항을 보며 또 다른 유형의 노력이 있음을 알았다. 세상엔 꿈을 향한 노력도 있지만 '생존을 위한 노력'도 있다. 하루하루 힘겨웠던 삶. 버티면 무엇을 배우게 될까. '자기 존중'의 정신을 배운다. 생존을 위한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무도 몰라 주니 역설적으로 자기 삶을 돌이켜 보게 된다.

'나는 내 삶을 충분히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는가?'


 생존을 위한 노력엔 어떠한 지원도 없다. 부모의 경제적, 정신적 지원 같은 것 말이다. 대신 홀로 설 수 있는 정신을 스스로에게 상속받는다. '돈도 안 되는 정신력 따위가 무슨 소용 있겠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우리 삶이 어디 잘 나가기만 하는가. 꼬구라지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홀로 서는 정신은 넘어졌을 때 스스로 일어서는 힘을 부여한다.

  

 마흔에 접어든 지금, 나는 홀로 서기에 또 다른 의미를 담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자연스레 겪는 현상이 있다. 바로 부모에 대한 원망이다. 철없던 시절,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늘 아버지를 원망했다.

'돈도 없는데 왜 자식을 셋이나 낳았나?'

'언제까지 아끼면서 살아야 하나?'

안개처럼 자욱하던 원망은 옛날 아버지의 나이를 지나면서 조금씩 걷혔다. 그러자 숨어있던 기억들이 둥실 떠 올랐다. 


생선 한 마리를 구우면

생선살은 전부 자식들에게 내어 주고

신림동 높은 언덕에 살았던 시절, 나의 반지하방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무거운 쌀을 가져다주던 아버지.


부족하지만 뭐라도 해 주고 싶었던 마음. 기억으로 나는 알게 되었다. 진정한 홀로서기는 가난뒤에 숨은 부모의 사랑까지 마음에 담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청년의 질문을 생각해 본다.  

"가난함을 딛고 버티며 살와 왔는데 나아지는 느낌이 없어요.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요?"

강연자가 답하지 못했던 질문에 내가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력에는 꿈을 위한 것, 생존을 위한 것 두 가지가 있어요. 본인은 지금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인생의 긴 레이스에서 잠깐 넘어질 때 홀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배우고 있다 생각하세요."


 이런 힘이 생긴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억울하다 생각할지 모르겠다. 명심하자. 인격을 성숙하게 만드는 모든 가치는 내면에 머물 뿐 결코 마음 바깥을 넘지 않는다.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요즘, 이제 롤모델을 바꿔 보려 한다. 맨손의 카르타고인에서 축구선수 박지성으로 말이다. 아! 트렌드는 따라가야 하니 손흥민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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