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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Jul 24. 2024

실종된 친구를 찾습니다

실종 친구 정보


- 이름: 반석평

- 국적: 조선

- 직업: 한 때 노비, 중종 재위기 문신

- 인상 깊은 사건

 어떤 재상집의 종이었으나 재상의 아들 이오성과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음. 하지만 노비임에도 공부도 잘하고 성품까지 뛰어나 조금씩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함. 반석평의 재주를 눈여겨본 재상이 양자로 받아들이려 하자, 이를 시기한 이오성이 반성평을 다시 노비로 하대하기 시작. 이를 알고 재상은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아들이 없던 양진사에게 입양 보냄.


 이후 연산군의 폭정 중신이었던 재상은 화를 입고 이오성을 포함한 모든 식솔들이 노비로 전락함. 중종 즉위 반석평은 과거에 급제해 관직(재상이 됨)에 오름. 이오성의 어려운 상황을 알게 되자, 반석평은 중종에게 원래 신분(노비)밝히고 재상 집안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간청함. 결국 청이 받아들여지고 반석평과 이오성은 예전보다 더 돈독한 우정을 쌓게 됨.   


 TV로 본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각색해 보았다. 변함없는 두 친구의 우정 이야기에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반성평이 '지금도 동무입니까?'라고 이오성에게 묻는 마지막 장면엔 살짝 목이 떨렸다. 나이 든 게 확실하다. 어려 보이고 머리숱만 많으면 뭐 하나. 아이책에 나올 만한 이야기에 이렇게 울컥하는데. (쩝.)


천일야사 제61화


'나도 반석평 같은 친구가 있나?'

휴대폰을 열어 보았다. 한 번씩 정리를 하는데도 아직 200명이나 저장되어 있다. '어디 보자!' 역시 반석평 같은 친구는 없다. 목적이 분명한 친구가 대부분이다.


'술친구 A, 산책 친구 B, 송년회 친구들...'




"잔 비었다. 한 잔 따라줘"


 한 잔 마시기 바쁘게 다음 잔을 요구하는 술친구 A. 

힘든 날 전화하면 술 한 잔 할 수 있는 꽤 오래된 친구다. 단, 진짜 술만 마신다. 고민을 말하려는 순간 '술 마시는 분위기 좋은 자리에서 진지한 이야기 NO!'외친다. 멀쩡한 상태에선 '좀 있다가 한 잔 하며 이야기하자'라고 한다. 도대체 언제 이야기하자는 건가. 머리 아픈 이야기는 그냥 하지 말자는 거다. 어쩌다 고민을 털어놓으면 '이야기한다고 뭐가 해결되냐? 답도 없는데?'라며 반문한다.

   

 관계의 본질을 잘 모를 때 나도 A처럼 친구의 고민을 피하거나 억지로 답을 주려 한 적이 있다. 그럴수록 친구라는 껍데기만 유지한 채 마음은 점점 멀어져 갔다. 관계 맺음은 이성 아닌 '감정'에서 시작된다.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는 말이다. 고민이 있다는 건 감정에 균열이 생긴 상태다. 해답을 제시나 회피로 대응하기보다 술잔 기울 이 듯 상대방 말에 귀 기울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가끔 A와 술 한잔을 할 때면 유튜브 시청하듯 '킬링 타임용' 대화를 많이 한다. 진지함 제로에 재밌는 이야기만 하니 스트레스 해소엔 제격이다. A의 집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우연히 마당 한편에 소주병 여러 개가 오와 열을 맞춰 깔끔하게 정리된 걸 보며 생각했다.

'술병 정리하듯 고민 듣는 일에도 A가 정성을 들이면 좋으련만!'

나이 들며 술 마시는 게 더 힘들어지면 A도 휴대폰에서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인사권자면 그 인간을 잘라 버리고 싶어"

"그 사람의 꼬장꼬장한 성격 때문에 일하다 말라죽을 것 같아."


 친구 같은 동생 B와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산책하면서 푸는 경우가 많다. 주로 늦은 저녁 인적 드문 공원에서 걷기에 싫어하는 사람 욕(?)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주기를 갖고 걸으니 만나면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다. 직장이 서로 다르니 소문이 퍼질 위험도 없어 거리낌 없이 말하는 편이다. 실컷 이야기해도 뭔가 풀리지 않으면 가끔 코인 노래방으로 향한다. '해소'에 중점을 두다 보니 고음 노래만 골라 부른다. 2시간 정도 지랄발광하 듯 노래를 하니 코인 노래방 사장님은 분명 '한 많은 놈들'이라 생각할 것이다.  


 B와 걷거나, 코인 노래방을 다녀오면 가슴이 뻥 뚫리면서도 불안함이 밀려온다. 왜 그런 걸까. 애초에 B와는 '비난의 공감'으로 이어진 관계였다. 꼰대 상사 같은 '공동의 적'이 있어 쉽게 친해졌다는 말이다. 이는 미워할 대상이 사라지면 관계가 쉽게 끊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B와는 노래 부르기를 자주 하든지 화제 전환을 시도해 봐야겠다. 좀 더 오래가려면 말이다.      



 

"이번에 00동 아파트에 입성했어."

"드디어 임원으로 승진했어."

"00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박 났어."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탔어."


 자랑 잔치가 1년에 한 번 열리는 자리. 여기는? 10년 이상된 고등학교나 대학교 친구들이 함께하는 송년회 모임이다. 물론 학교 다니던 시절의 옛이야기도 한다. 아주 잠깐 동안. 모임에 가면 돈도 없고, 아직 결혼도 안 한 나는 늘 쪼그라들었. 이상했다. 긴 시간을 함께 해 온 친구들이라 대화가 잘 될 것 같았는데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니 말이다. 과거의 우리는 가난해도, 부자여도 잘 어울리며 지냈는데 서로를 품어 주던 따뜻한 마음은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


 모임을 거듭할수록 과거에 함께했던 시간은 눈앞에 보이는 직업, 돈이나 재산, 학력 따위속절없이 삭제되었. 더 이상 송년회 모임에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알게 되었다. 돈독한 관계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라는 사실보다 변해가는 모습, 생각, 관점을 얼마나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글을 쓰며 다시 휴대폰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정말 반석평 같은 친구는 없는 걸까?'

앗차! 비슷한 친구가 한 명 있긴 있구나. 오랜 초등친구 C.


'미안하다. 오늘은 좀 그래. 담에 보자.' 

C와 약속을 잡으려 했다가 가끔 거절 문자를 받을 때가 있다. 굳이 '다른 일정이 있다' '바쁘다'는 이유를 대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다. '좀 그래'라는 말의 의미를 '오늘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 공간이 없구나'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고 싶거나 피곤해서 쉬고 싶은 날도 있지 않은가. 내가 거절하면 C 또한 같은 생각을 한다. 친구 간에 좀 매정한 거 아닌가 싶겠지만 그게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이 괜찮은 날 상대방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 보려고 약속을 잠시 미룬 것뿐이다. (물론 상대방이 정말 힘들어서 꼭 만나야겠다고 하면 그냥 만난다.)   


 만나면 모든 대화가 가능하다.

"너 공무원 합격하니 좀 부럽더라."

"아파트 청약 됐다며? 이제 나보다 좋은 집에 살겠네. 부럽다."

서로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해 주면서도 부럽다는 말을 숨기지 않는다. 숨기지 않아야 뒤끝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C와 다투는 일은? 당연히 있었다.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갈등 한 번 없었겠는가. 하지만 금방 풀었다. 비결은? 솔직함이다. 우리 사이엔 '그런 척'이 거의 없다. 부러운 척, 괜찮은 척, 잘난 척 같은 것 말이다. 

대신에 아이들은 잘 하지만 어른들이 잘 못하는 말을 자주 한다. 


'미안하다. 부럽더라. 고맙다. 섭섭했다'

오랜 시간 C와의 관계를 지탱해 온 건 

'충고, 회피, 비난, 직업, 재산'이 아니라 

솔직한 네 마디 말이 전부였다.


 다음에 C와 만나면 술 한잔 따르며 말해야겠다.

"우리 껍데기만 보지 말고 앞으로도 솔직하자."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반석평 같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계속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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