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처럼 Jul 10. 2024

일잘러? 잘 놀면 됩니다


"싹싹하게 잘하네요."


 신입사원 시절, 민원인 응대나 전화 통화 후 직장 상사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 과한 칭찬이 늘 민망했다. 잘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결손 가정에 있는 학생에겐 "용기 내요! 좋은 하루 보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홀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던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힘을 주고 싶었다. 손을 떠는 연세 드신 할머니에겐 오른손 꼭 잡아 드리며 민원 신청서를 같이 작성했다. 거칠지만 따뜻했던 할머니의 손은 엄마가 가출하고 엉엉 울 때 과자 한 봉지 건네 던 어릴 적 동네 할머니의 손 같았다.  




 입사한 지 9년이 지난 요즘, 신입 사원에 대한 칭찬 대신 박한 평가가 더 많다.  

'옆자리에 전화가 울려도 대신 받지 않는다.'

'아침에 행사(회의)가 있어 일찍 출근하랬더니 평소보다 5분 정도 빨리 왔다.'

'어쩌다 술 마시는 회식을 하면 슬그머니 빠진다.(평소엔 계속 점심만 먹는 회식을 함)'


 직장 동료 A가 말했다.

"눈치 있게 행동하는 건 기대도 안 해. 전화라도 잘 받으면 좋을 텐데. 애들이 전부 왜 이렇지?"

A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았다. 요즘 친구들 중에도 센스 있게 일하는 신입 직원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눈치 있고 '빠릿빠릿'하게 일하는 친구들이 예전보다 줄긴 했다.


A의 말을 듣다가 궁금해졌다.


'나는 전화받고, 사람 상대하는 일을 어떻게 자연스레 체득했던 걸까?'




 어릴 적 누나와 형은 실컷 놀다가 배가 고프면 말했다.


"햇살아, 중국집에 전화해서 짜장면 좀 시켜."


 휴대폰이 없고 집집마다 유선 전화만 있던 시절, 중국집 배달 주문은 내 담당이었다. 사소한 일이라 여겼는지 누나와 형은 주문 전화를 내게 위임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우선 먹고 싶은 음식을 가족들에게 물어봤다. 서로 다른 메뉴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으니 메모는 필수! 전화를 걸면 배달받을 곳(우리 집)의 위치를 설명했다.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큰 건물 위주로 다시 말해 줘야 한다. 진중함은 필수다. 형의 장난에 통화 도중 웃어 버리면 '왜 장난질이냐!'며 중국집 사장님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난 짬뽕으로 바꿀래."

"난 곱빼기로."   


 통화 중 누나와 형이 메뉴를 바꾸는 돌발 상황도 있었다. (아휴... 지들이 좀 전화하든가!) 마무리할 때쯤엔 계산할 금액을 미리 물어봤다. 돈을 미리 준비해 둬야 음식이 도착했을 때 허둥지둥하지 않는다. 전화를 자주 해 보지 않았던 초반엔 많이 긴장했던 탓에 전화기를 든 손엔 땀이 흥건했다.

 

 전화를 자주 하고 어른들의 행동을 눈치껏 따라 하면서 나는 점점 노련졌다. 

"자주 시켜 먹는데 단무지 좀 더 챙겨 주세요."

"기사님, 무더운 날씨에 수고 많으십니다. 물 한잔 드릴까요?"




 여덟 살 어느 날, 동네에서 B와 딱지치기를 하다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왜 그래? 누가 그랬어?"

형이 물었다. 울먹이며 대답했다.

"B랑 딱지치기를 했는데 전부 잃었어."

나보다 두 살 많고, 형보단 한 살 어렸던 B는 팔 힘이 세서 내 딱지를 모두 따갔다. 복수를 위해 형과 다시 딱지를 접어 B를 찾아갔다.


"퍽! 퍽!"

형이 큰 소리 나도록 B의 딱지를 하나 둘 넘겼다. 딱지를 모두 잃자, B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형이 일부를 돌려주며 말했다.

"앞으로 동생이랑 할 때는 몇 장이라도 돌려줘."     

형이 멋져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떤 놀이를 하든 어린 동생들을 배려했다. 딱지 돌려주던 형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초등학교 4학년 땐 친구 C, D와 삼총사처럼 뭉쳐 다녔다.

"엄마가 좀 빨리 집으로 돌아 오래."

"안 돼. 저번에 약속했으니까 6시까지 놀다가."

C가 집에 먼저 가야 한다고 하자, 나와 D는 더 놀자고 떼를 썼다. 우리의 강요에 B는 더 놀다가 집으로 간  엄마에게 꿀밤을 맞았다.


 얼마 뒤 나도 집에 빨리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B를 붙잡던 순간이 떠올라 먼저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결국 늦게까지 놀다가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혼났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더 놀자고 한 친구들과의 약속은 지킬 수 있었으니까. 바통터치하 듯 돌아가며 엄마한테 혼난  우리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미리 잡은 약속이라도 엄마가 찾으면 즉시 해산한다.'



   

 부서에 신규 직원이 오면 나는 전화를 걸고 받거나 질문하는 법 등 기초적인 걸 상세히 알려 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직장 동료는 장난스레 말한다.

"햇살 선생님! 안 힘들어요?"   

 힘들다. 하지만 함께 일하려면 힘들어도 가르쳐야 한다. 똑똑한 친구들은 많다. 뭐 하나 알려주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전산업무는 빛과 같은 속도로 처리한다. (전산 처리는 거꾸로 내가 배우는 경우도 많다.)


 취약한 분야는? 바로 사람들과의 어울림이다. 일부 꼰대들은 전화하는 법을 알려 주는 내 모습을 보며 '학교도 아니고 그런 걸 왜 가르쳐?'라고 말한다. 이런 들에게 한 마디하고 싶다.


'학교에서 배운  없거든요!'  


 요즘 친구들은 대학입시나 취업 같은 생존형 공부는 많이 했지만 세상 살아가는 공부는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세상 공부는 어떻게 배울 수 있나? 놀아야 한다. 그럼 제대로 놀아 본 적은? 없다.


 영어 유치원, 예비 의대반까지 다니며 어릴 때부터 입시에 시달린다. 대학에 입학하면 1년 정도만 숨을 돌린다. 남은 대학 생활은 취업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하면 너도 나도 부자가 되는 걸 목표로 '미라클 모닝'이다 뭐다 자기 계발에 뛰어든다. 번아웃이 유행처럼 번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체 언제 놀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엔 놀아야 배울 있는 것도 있다.


나는

누나, 형과 놀다가 중국집에 전화하며 대화하는 법을,

동네에서 딱 치치기를 하며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삼총사 친구들과 어울리며 약속과 신의

배웠다.


여기에 엉엉 울던 내게 과자 한 봉지 건네던 할머니의 마음까지. 전부 '놀다' 배운 것이다.


 얼마 전,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갑자기 쓰러졌다. 주변에 앉아 있던 승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아저씨를 눕힐 공간을 만들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저 따라서 숨 들이쉬고 내 쉬세요. 하나.. 둘.. 하나.. 둘.."

승객들과 역무원의 재빠른 응급조치 덕분에 아저씨는 의식을 회복했다. 그 후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뿔뿔이 흩어졌다.


 병 속에든 물 같이 함께 모였다가 물방울처럼 사라지던 사람들. 무심한 따뜻한 이들의 선행도 '건강한 놀이'에서 비롯된 거라고, 나는 믿는다.




 경쟁과 비교가 심해져 가방은 무거워지고 있지만 더불어 사는 마음은 점점 비어 가고 있다. 지식은 머리를 채워주지만, 놀이는 마음을 채워준다. 놀이가 부족함에도 우리는 지나치게 교과서만 파고 있는  아닐까.


 가까운 미래(인공지능의 시대)엔 지식보다 협동, 설득, 공감능력 같은 사회적 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제대로 놀아 본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일잘러)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거다. 안 되겠다. 조금 이상한(?) 셀프 칭찬을 해야지!


'하라는 공부 안 하고 놀기를 잘했다'.  하하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