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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din Jun 06. 2024

면세점 근무자의 하루

일상의 에피소드

이 이야기는 공항 면세점에서 근무했을 당시의 이야기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공항에 있는 코스메틱 브랜드에 운 좋게 바로 입사하게 되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라 첫 출근 당시 많이 긴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항의 경우 보안이 철저하기 때문에 출입 패스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어서 첫 출근에는 선배님이 마중을 나왔다. 그때의 어색한 공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공항 면세점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 장단점이 명확하다. 먼저, 로컬 면세점에 비해 공항 수당이 들어가 있어 초봉이 높다. 그리고 근무 환경이 깨끗하며, 여성 직원들이 많아 복지도 좋다. 그중 가장 좋았던 점은 해외 연수 기회가 잦고, 임직원 할인을 통해 화장품을 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단점으로는 아무래도 공항 면세점 특성상 오랜 시간 서서 일해야 하고, 근무 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점이다. 교대 근무를 하게 되는데, 공항의 특수성으로 A조 출근 시간이 매우 이른 편이다.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셔틀버스가 오는 장소까지 가야 했고, 중간 조의 경우 셔틀버스가 없어 자차나 버스로 이동해야 했다. 


이러한 장단점 외에도 공항에서 근무하게 되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부터 공항 면세점에서 근무하면서 겪었던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해당 이미지는 생성형ai로 제작되었습니다.


공항에서 만남들


공항 면세점에서 일하는 것의 매력 중 하나는, 아마도 연예인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일 거다. 나 역시 근무 중 많은 연예인들과 마주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중에서도 윤여정 배우님과의 만남은 특별히 인상 깊었다. 립스틱 진열대를 정리하던 중, 앞으로 드리워진 그림자에 응대하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순간 배우님의 후광이 비쳤고, 그야말로 고급스러움이라는 단어가 인간의 형태를 갖추었다면, 바로 윤여정 배우님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배우님께서는 자주 사용하시는 제품이 있는지 물어보셨고, 유감스럽게도 찾으시는 제품이 품절이어서 구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만남은 강렬한 여운을 남기며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또한, 소녀시대의 윤아님, 빅뱅의 GD님과 같은 다른 스타들도 근무 중에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면세점이 시끌벅적하거나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대개 중심에 그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해하며 그들을 관찰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역시 사람은 적응하는 데 놀라울 만큼 능숙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나 스스로가 증명한 셈이 되었다.



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할까♬


넓디넓은 공항, 락커에서부터 매장까지의 거리가 멀어 항상 경보로 걸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코스메틱 브랜드의 매장은 협소해서 재고를 보관할 만한 공간이 부족했고, 대부분의 재고는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매일 아침, 아침을 먹고 창고에 가서 전날 발주한 물량을 가져오는 업무가 있었다. 그날은 고객들이 많아 선배님이 동행할 수 없었고, 나는 혼자 가야 했다. 지난번 창고에 가서 재고 위치를 기록해둔 수첩을 챙겨 매장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며 길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한 라인의 똑같이 생긴 매장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겨우 기억을 더듬어가며 길을 찾던 중, 창고로 가는 듯한 직원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쫄래쫄래 따라갔다. 매장에서 창고까지의 거리가 멀었고, 길을 찾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해 빠르게 재고를 찾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재고를 찾아 챙기던 중 마지막 상품의 재고가 보이지 않아 진땀을 빼다가 겨우 찾아 매장으로 돌아왔다.

매니저님은 왜 이렇게 늦었냐며, 자기는 5분 만에 재고를 찾아오는데 요즘 애들은 너무 느리다며 핀잔을 주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는 더 빠르게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매니저님은 그냥 고객 응대만 하라고 하셨다. 그 말에 엄청 기가 죽었다. 같이 근무했던 선배님이 입사 초에 울면서 퇴근했던 일화를 말씀해주셨는데, 그땐 몰랐다. 내가 그렇게 선배님처럼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울면서 퇴근할 줄은.

퇴근길 지하철 창밖에는 야경이 아름답게 빛났고, 그 야경을 보면서 내 눈에는 부끄러움과 서운함에 빛나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언니는 뭐 발랐어요?


메이크업 색조 브랜드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고객들은 항상 직원들을 보며 사용하는 립 컬러나 파운데이션 등의 정보를 궁금해 한다. 그래서 우리는 노 메이크업 상태로 출근해 각자 입사 후 받았던 파우치로 메이크업을 하는데, 원래는 근무하는 브랜드의 제품으로 메이크업을 해야 하지만, 그날따라 옆 브랜드에서 받았던 샘플 립스틱을 아무 생각 없이 발랐다.

근무 중 모녀로 보이는 외국인 여성 두 분이 매장을 방문했고 전시된 립스틱을 살짝 보더니 내 립 컬러가 예쁘다며 그걸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라에 상관없이 여자들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다른 브랜드의 립스틱을 바른 것이 생각나 순간적으로 뇌가 멈춘 듯했다. 하지만 곧 최대한 비슷한 컬러를 찾아 고객에게 추천해 드려야겠다고 결심을 했고 미소를 지으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재빨리 립 컬러를 찾아 헤맸다. 공항 특성상 비행기 탑승 시간이 있어 바쁜 고객들이 많기 때문에 빠르게 찾아야 했다. 다행히 고객분이 마음에 들어 하셨고, 구매까지 연결되었다. 안도감과 함께 내게 남은 것은 팔레트가 되어버린 내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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