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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Feb 10. 2024

의무만 가득한 직장에서 '권리'를 말할 기회, 노조

: 시작하며

노동조합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지    


직장생활을 멈추고 다음 일자리를 위해 준비하던 시기, 노동절 집회 홍보나 군중이 모인 사진을 볼 때마다 ‘나도 노동절 집회에 가고 싶다. 어느 노조의 깃발 아래에 서서 행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해고자들도 있지만, 내게 노동절 집회는 노동자, 그러니까 어쨌든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참가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직장이 있는 게 부럽고 깃발이 있는 건 더 부러웠다. 한국사회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아서, 노조가 있는 회사에 다니는 건 쉽지 않으니까.     

몇 번의 이직 후 지난해 가을까지 몸 담았던 모 기관에서 나는 초대 노조위원장을 맡아 두 번의 연임을 하게 되어 6년 동안 위원장으로 일했다. 기관 신규 입사자들의 오리엔테이션이 열릴 때마다 1시간의 노조 교육시간이 배정되어, 우리 노동조합을 소개하고 가입을 권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마다 나는 첫인사를 이렇게 시작하곤 했다.      


“이틀 동안의 신규 입사자 교육 시간표를 보면 모두 다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제부터 해야 할 ‘의무’에 관한 내용인데요. 이 시간은 유일하게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입니다.”     


그렇다. 직장은 의무의 공간으로 각인되어 있어서, 할 일과 조심해야 할 규범으로 채워져 있다. 일하는 노동자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경영진이나 관리자가 먼저 나서서 챙겨주는 걸 본 적이 없다. 권리를 찾는 최선의 방법이 바로 노동조합 활동이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혼자 현관에서 시위를 할 수도 있고, 회사 대표를 찾아가 하소연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혼자 해결하거나 몇몇이 모여 건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진 곳이 노동조합이다.      


현실은 녹녹지 않더라     


노동조합, 많이 들어봤고 공부도 해봤고 노종자 집회도 꽤 나가봤다 싶어도, 현실에서 직장동료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현실은 이론보다 훨씬 복잡하고, 때로는 엉망진창이고, 지루할 틈 없는 사건사고의 현장이다. 결연한 의지로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라기보다는, 상사에게 한 마디도 못하는 용기 없는 직장인이자,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소시민들이 모인 곳이 노동조합일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노동조합이 살아 숨 쉬는 조직이고 결국은 힘 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랬지만 요즘은 더 많이 외부에서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 같다. 도덕성에 흠이 있다거나 비리가 있다거나 억지를 쓴다는 이야기들은, 그러나 가려서 들어야 한다. 그 의도가 노동조합의 위상을 깎아내리고 노동자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것인지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노동조합은 당연히 완벽할 수 없고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정확하고 발전적인 비판은 내부에서 조합원들이 한다.       


노동조합 활동기를 적어 내려가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와 동료들의 기록이 조금이라도 노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미디어로만 노동조합을 접한 사람이라면 현실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막막함을 덜어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노동조합이 너무 고리타분하고 마초 같아서 일생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활동도 가능하니 한번 해보자고 독려하는 마음에서 모니터 앞에 앉았다. 특히, 깨어 있는 시간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인 직장이 여성들에게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평등해졌으면 하는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기록하면서 교훈을 다시 되새길 수 있을 테니까.     


노동조합은 구성원, 업종, 역사 등의 조건에 따라 각각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이 기록은 ‘중소 규모 사업장’,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의 노동조합의 이야기이며, 창립 준비부터 6주년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다룬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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