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J Feb 10. 2024

노조와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도 싸우는 여성들이 있다     


노동조합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빨간 조끼 입고 머리띠 두른 아저씨’이기 쉽다. 경영계와 언론이 덧씌운 ‘불법’, ‘폭력’, ‘밥그릇 지키기’ 같은 억지스럽고 부정적인 프레임 외에, 노조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무척 마초적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의 남성중심성은 내부에서 줄곧 비판을 받아왔다. (‘내부에서’는 꽤 의미 있다. 왜냐면 ‘불법’, ‘폭력’, ‘막무가내’라고 비난하는 외부(경영계와 언론)는 자기네도 갖고 있는 남성중심성을 가지고 노조를 비난하지는 않으니까.) 남성에게 쏠려있는 대표자 구성,  성별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역할 분담, 성명서나 홍보물에 등장하는 차별적 언어 같은 것이 비판의 대상이다. 세상이 가부장적이니 노동조합도 예외가 아니겠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조직, 민주주의의 조직원리를 원칙으로 하는 조직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그런 조직문화를 허용할 수 없다. 노동조합이 추구하는 가치와 노동권은 여성을 배제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과연 성평등을 지향하는 노동조합은 없을까?     


세계적으로, 노동자 구성의 다양화를 인식한 노조들이 평등과 다양성 존중을 표방하고 있다 하고, 한국에서도 양대 노총과 산별노조들이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개별 사업장 단위로 가게 되면 성평등을 노동조합의 중요 의제로 다루는 곳을 보기 쉽지 않다. 성폭력, 성희롱 예방을 성평등 정책/사업의 전부로 알고 있는 곳들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은 반여성적이니까 일단 적대적으로 본다거나 아예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건 옳지 않다. 그런 태도는 오늘도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성평등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니까.      

페미니스트에게 필요한 노동조합노동조합에 필요한 페미니스트     


일반적으로 알려진 노조의 남성중심성과 성인지 감수성 부족에 대한 우려는 우리 노조가 창립 준비를 할 때부터 민감하게 나타났다. 제도 언론이 노조를 다루는 방식에는 반감을 갖지만 운동사회에서 나온 비판들에 대해서는 신뢰를 갖는 편인 우리 조합원들의 특징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다른 노조들을 접할 일이 있을 때 이런 걱정을 많이 했다. 창립 준비모임에 초대된 타 기관 선배 노조의 강연자가 성인지 감수성이 모자라는 단어 사용을 한 경우가 있어 비판이 나왔고, 이런 비판을 강연자에게 잘 이야기하고 이후 노력할 것을 요청한 적도 있다.      


외부의 사례를 들고 선입견이 생겨버린 경우도 없지 않다. 한 번은 입사한 지 며칠 안된 신입 조합원이 단체교섭 준비 간담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심의는 외부 전문가에게 맡겼으면 좋겠다. 노동조합의 대표가 심의할 때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노동권에 더 신경 쓸 수 있으니까”라는 취지의 의견을 낸 적이 있다. 노동권을 주장하는 것이 노조다 보니 가해자의 노동권(아마도 잘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뜻했을 듯하다)까지도 옹호하지 않겠냐는 걱정은, 아마도 노조들이 성희롱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감추려고 했던 과거의 사례들을 많이 들어서 생겼을 것이다. 사실 당시 대표자였던 내가 성희롱 심의에 들어갈 가능성이 제일 높은데, 나는 반성폭력운동 시민단체 출신이고 다른 여러 기관에 ‘외부 전문가’ 자격의 심의위원이기도 했다. 다른 노조들이 저질러왔던 잘못 때문에 우리도 이런 오해를 받는구나 싶어 아쉬웠다. 아무튼 중요한 건, 피해자의 권리야말로 노동권이라는 사실, 그러니까 성폭력은 노동권의 침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이해해야 한다.      


우리 노조가 있는 기관은 성평등에 관한 사업과 연구를 하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직원이 뛰어난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건 아니었다. 공공기관에서 페미니스트만 골라 채용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 완벽한 직장은 없을테니까. 남성이라서 손해 본다는 말을 앞에서는 못하면서 뒤에서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성차별적인 언어 사용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 역시 노조 집행부가 노력해서 모두의 인식 수준을 높여야 하는 이유였다. 누군가 차별을 당연시하고 혐오 발언을 할 때, 싹을 잘라버려야 하는지, 단죄해야 하는지, 설득해야 하는지, 감화시켜야 하는지, 대상과 상황에 맞는 방법을 선택해서 구사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공공연하게 차별을 일삼거나 말 안 통하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분노할 때도 많을 것이 뻔하다. 그렇지만 노동조합을 변화시키면 회사도 바꾸기 더 쉬워진다는 희망을 갖고, 조금 더 힘을 더 냈으면 한다.      


노동조합은 말할 것도 없이 페미니스트가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노동조합들이 세대 차이를 고민하면서 청년과 여성 조합원들에 대한 고민을 했었는데, 조합원이 등 돌리는 게 두려워서라기보다, 그것이 노조의 본분이기 때문이어야 한다. 우린 사용자, 관리자들의 권위주의와 불평등한 조직문화를 제일 싫어하는 집단이지 않은가. 

     

이전 01화 의무만 가득한 직장에서 '권리'를 말할 기회, 노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