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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Feb 10. 2024

창립 : 시작부터 창대한 게 좋다

먼저 튼튼한 집을 만들어 놓아야     


노동조합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는 회사마다 다르다. 그러나 대개 회사 자체가 존립 위기에 닥쳤을 때, 누군가가 크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또는 공분을 자아낼 사건이 생겼을 때 등 특별한 계기가 생겨 ‘이대로는 못 참겠다’ 거나 ‘위기 상황이다’ 같은 생각이 분출될 때 노조를 설립하는 일이 흔하다. 그게 아니라면 조직원들의 작은 불만이 쌓이고 쌓여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때 설립의 움직임이 생긴다. 우리 노조의 경우는 후자라고 할 수 있었다. 특별히 큰 사안이 발생했다기보다는 ‘그래도 직장에 노조는 있어야 하지 않냐?’또는 ‘노조가 생기면 뭐라도 달라지겠지’ 같은 생각으로 창립했다.      


준비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노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 안에서 돌이킬 수 없는 의견대립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이 함께 해야 하고 모두에게 열린 노조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신속하게 그러나 급하게 서두르지는 않고 준비했다. 준비를 위해서는 노조에 대한 기초 상식을 배우는 교육과 앞으로 어떻게 노조를 만들어갈 것인지 토론 모임이 기본이었다. 처음에는 평소에 기관 경영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 내길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하나둘씩 늘어나 ‘준비모임’의 모양새도 갖추게 되었고, 교육과 간담회가 열릴 때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후에 상급단체가 된 공공운수노조와 서울시 출연기관 노조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창립을 준비했고, 노동정책 전문가를 강사로 모셔 거의 모든 직원이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준비모임은 이런 교육, 간담회 마련과 함께 창립에 필요한 실무 준비를 했다. 그리고 유사 기관들의 규정집을 수집해서 비교하고 우리 기관에 모자라는 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이 작업은 나중에 첫 단체협약 요구안을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숨겨서 가져온 가입신청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최대한 많은 동료들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었다. 인원이 많을수록 힘이 생기니까. 공개적으로 노동조합 가입을 안내하고 강의와 간담회를 열 때마다 가입을 독려했다. 당시엔 누가 볼 새라 가입원서를 몇 번씩이나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어온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이고, 눈에 띄게 노조 탄압을 하기는 어려운 기관이었음에도, 노조에 가입하면 혹여나 관리자들의 눈 밖에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수습기간 중인 신입 직원 중에는 혹시라도 평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염려되어 수습만 끝나면 가입하겠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기관에서도 노조 가입이 쉽지 않다는 게 도통 믿어지지 않았고, 그 정도 용기도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이게 바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많은 직원들이 합류하면서 노조 가입이 대세가 되었다. 대부분의 부서에서 부서원 전원 가입이 이루어졌을 정도다. 대세를 거스를 수 없어서라든가 가입하지 않으면 의식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가입한 사람이 없었을 리 없다. 노조 창립 시기에는 먼저 가입한 사람들이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규모가 큰 일터가 아니어서 대부분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으므로 누가 노조에 기꺼이 가입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 같은지 대충 가늠이 되기도 했는데, 그런 선입견으로 보자면 선뜻 가입할 것 같지 않았던 한 조합원에게 동료가 가입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무임승차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어쩜! 그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전이었는데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거다. 노동조합이 생기면 반드시 뭔가 좋아질 거란 것을. 사실 한 회사에서 구성원의 과반수가 가입한 노조가 있으면 그 노조와 회사의 합의사항이 전체 직원들에게 적용되므로, 노조에 가입도 안 하고 혜택만 누리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반드시 나아질 거란 믿음’과 ‘남의 수고를 앉아서 누리기 싫다’는 양심을 모두 가진 조합원이었던 셈이다.      


감격의 창립총회     

창립총회 겸 출범식 날짜를 정하니 준비에 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운영 규정을 만들어 조항 하나하나 검토해서 수정하고, 창립 전날까지도 사람을 더 모았다. 사람이 모이면 먹을 것이 있어야 하니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내서 다과 코너를 준비하고, 옆 동네 선거관리위원회에 가서 투표함과 기표소를 대여해 왔다. 홍보물을 만드는 동료를 보면서 이런 재주가 있었냐며 다 같이 칭찬해주기도 했다. 준비 모임의 회의 장소는 온라인에서는 단톡방, 오프라인에서는 근처 조용한 카페였다. 노조 이름의 쿠폰에 스탬프가 늘어났다.      


우리는 공공운수노조 산하의 지회가 되었다. 체계가 꽤나 복잡해 보였지만 당연히 산별노조에 가입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다른 노조에서 축하 인사와 화분을 보내주었다.      


1부 창립총회로 지회운영규정을 통과시키고 임원을 선출했다. 나는 난생처음 맡아본 노조위원장 역할이 너무 부담스러워 어깨가 땅으로 내려갈 지경이었지만, 이렇게 노조가 창립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기관 정원 기준으로는 손에 꼽힐 정도로 대부분 가입해서, 78명이 함께 시작했다. 일단 소수라도 시작하고 나중에 더 조합원을 모으는 게 아니라 시작할 때부터 압도적인 인원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였다. 한 명 한 명 모든 조합원들의 사진과 준비 과정을 담은 스크린을 보면서 창립을 자축할 때는 눈물이 나고 말았다.      


이렇게 바쁘게, 그렇지만 벅차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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