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해봤으면 좋겠네, 노조 간부
노동조합을 사내 동아리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굳이 위상을 낮추고 싶은 사람들은 대개 사용자이지만, 간혹 조합원들 중에도 오해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런데 사실 노동조합의 역할과 권한은 일부 직원들의 소모임 수준으로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치는 수준이다. 노조의 이름으로 내린 결정은 아주 중요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의사 결정을 할 모두의 의견을 가장 잘 모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일상활동과 의사결정을 위한 조직체계를 출범 준비 과정에서부터 갖추기 시작했다.
임원(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 외에, 기획과 실무를 담당하는 집행부와 의사결정을 위한 의견수렴을 하는 대의원회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노조는 회사의 결재라인처럼 수직적이고 기다란 체계가 아니라 단순한 체계로 운영했기 때문에 조합원 의견 수렴 절차가 복잡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 체계에 맞게 사람, 흔히 노조 간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합원 10명 당 1명의 대의원을 선출하기로 했기 때문에, 작은 노조지만 임원, 집행부, 대의원을 합하면 20명에 달하는 간부가 필요했다. 이 간부진을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디든 선거를 하다 보면 자격이 모자라는 사람이 나서기도 하고 신망이 두텁고 능력 있는 사람은 오히려 손사래를 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추대되는 경우가 대개는 적절한 간부 후보였다.
간부 구성은 각 직급, 직군, 부서 출신을 골고루 배치하는 방향으로 했다. 그렇게 해야 부족함 없이 의견수렴을 할 수 있고, 결정된 의견을 집행할 때도 좋다. 공식적인 구분 말고도, 예를 들면 입사동기 모임 같은, 사내에 있는 친한 사람들끼리의 그룹들이 더러 있다. 이런 그룹들에서 한 명씩은 간부를 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고려해서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간부를 하겠다고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아서 여러 해 계속하겠다는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사람들이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하는 것도 문제다. 경험을 가진 사람의 지속적인 활동과 새로운 인물의 유입이 균형을 갖도록 조절해서, 경험이 계승되고 축적되면서도 새로운 시각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 수렴 방식
노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민주적인 운영’이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임금이나 인사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일 것 같지만 사실은 조직문화가 정말 큰 불만의 주제이기 쉽다. 직장에서 존중받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게 직장생활을 힘들게 하는 가장 큰 문제일 때가 많은데, 그걸 바꾸어야 하는 노조에서는 내 존재와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회사와는 달리 평등하고 민주적인 운영을 하는 게 노조의 당연한 원칙이다. 우선 회의체계를 잘 꾸려나가는 게 중요하고, 그 역할을 중심적으로 할 사람들을 선출하고, 모든 조합원들이 스스로 말하고 행동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창립 초기에 가장 신경 쓸 일이다.
처음 위원장이 되었을 때 조합원들과 1:1 또는 1:2 만남을 매일 했다. 그리고 소규모로 꾸린 간담회, 전체 조합원이 함께하는 총회를 잘 배치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견 수렴 과정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매해 일터만족도 조사라는 이름으로 임금, 환경, 조직문화, 향후 노조활동에서 하고 싶은 일 등에 대해 익명으로 조사했다. 사측에서도 이런 조사는 종종 하지만, 좀 더 솔직한 응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노조 주관의 설문조사다. 이 조사의 실무를 담당했던 역대 정책부장들은 매번 혼신의 힘을 다해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이 조사 결과는 단체교섭에서 요구안을 만드는 데 바탕이 되기도 하고, 사측과 협상할 때 근거로 내세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 결과를 봐라, 조합원들의 의견은 이렇다”라고 들이밀 데이터가 되니까 말이다.
당신을 위한 노조 아니고 당신의 노조랍니다.
우리가 노조 홍보물이나 공지문에 쓰지 않는 표현이 있었다. "조합원 여러분 ~해주세요" "~해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말을 하는 건 특별한 경우 말고는 하지 않았다. 대신, "~합시다" "~합니다" 표현을 사용했다. 대표자나 집행부가 조합원들에게 청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일한다는 의미에서다. 간혹 임원, 집행부가 조합원들을 객체로 보거나, 아니면 조합원들이 노조를 (자신이 포함된 조직으로 보기보다) 노조 집행부 또는 위원장과 동의어인 것처럼 여기는 경우를 보곤 하는데, 그게 아니라 너도 나도 모두 합쳐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의견을 내는 것도 주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