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J Jul 18. 2024

한가한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다

늘 거기 있는 사람

같이 있기와 함께 떠들기, 이 소중한 걸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딱 맞는 시간에 만나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그래서 가장 좋은 친구는 시간을 쉽게 내주는 친구라고 늘 생각해 왔다. 시간에 쫓겨 약속을 잡기 힘들거나,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의미 없는 인사 하는 사람 말고.     

 

술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정을 조율할 필요도 없이 당장 필요할 때마다 손 닿는 곳에서 있어주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수년간 술보다 못한 친구였던 것 같다. 평일 모두와 주말 대부분 바빠서 시간 못 내는 친구로 지냈으니 말이다. 백수가 되고 나서 참 좋았던 것 중 하나는, 평일 낮 꼭 보호자를 동반해서 병원에 가야 하는 친구와 기꺼이 동행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친구는 연거푸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오래간만에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내가 좋았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주인공이 날마다 반복하는 일과를 보여주는데, 그 일과에는 매일 마주치는 이웃들이 있다. 목욕 후 들러 목을 축이는 술집에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해주는 점원, 주인공이 고른 책에 한 줄 감상을 건네는 책방 주인, 특별히 친절한 술집 주인장.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조금씩의 변화를 만들기도 하고, 당황스러운 변화를 겪을 때는 안정적인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기도 하는 존재가 그들이다. 거기 가면 늘 그 사람이 있다는 편안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서울의 1인가구 생활 실태조사 결과, 동네 친구를 원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사람들을 만날라치면 동호회를 비롯해 많은 기회가 있기는 하지만, 너무 일찍부터 일정을 잡아놓지 않아도 되고 "오늘 저녁 시간 어때?" 하면 편한 차림으로 나가 만날 수 있는 동네 친구는 알고 보면 흔치 않다.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와줄 수도 있고, 살림하면서 소소하게 손이 필요할 때 함께 해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 밥 한 끼 술 한잔 가볍게 할 수 있는 친구,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참 필요하지만 만들기 쉽지 않은 친구다. 울적할 때 효과 좋은 해결책이고 기쁜 마음을 서너 배로 부풀려줄 수 있는 게 수다일 텐데, 모니터가 아니라 실제 얼굴을 보면서 수다를 함께할 친구는 참 중요하다.      


시간을 내기 힘든 바쁜 친구가 되는 건 사실 개인 탓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좋은 친구가 되기에는 너무 오래 일해야 하는 세상이다. 술보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세상을 좀 바꾸면서, 동시에 내가 가진 시간을 기꺼이 나누려는 노력도 좀 하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작가의 이전글 모닝 루틴과 나이트 리츄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