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명동역에서 소개팅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많은 사람이 쇼핑몰 1층 회전문 앞에 있었다. 20-30대 청춘들이 많이 보였다. 전화를 하며 사람을 찾는 제스처가 여기저기서 관찰됐는데 딱 봐도 소개팅의 참여자였다. 집단 결혼은 봤어도 이런 집단 소개팅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이성을 찾기 위해 전화하는 사람의 소리는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암컷과 수컷이 번식기에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독특한 울음소리처럼 느껴졌다. 청춘의 향기가 충만한 가운데 군밤 장수의 달달한 군밤냄새가 어우러져 12월 초의 명동은 달콤했다.
한 여성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심장이 멎을 것처럼 두근두근 했다. 한눈에 반한 다는 것을 믿지 않는 내가 왜 그렇게 긴장했을까? 이유는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 나에게 말을 거는 그녀의 모습이 지금도 슬로비디오처럼 생생하다. 그녀가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가왕 조용필가수님의 바운스 가사처럼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했다. "도망갈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사람 잘 못 찾으셨어요"라는 문장을 혀에 한 발 장착하고 방아쇠를 누르려고 기다렸다. "XXX 씨 아니세요?"라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개팅녀. 간담을 쓸어내린 채 웃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봤다.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시간은 3초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3초 동안 내 스타일이 아님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걸어오는 3초 동안 도망가고 싶은 생각을 했을 정도로 흔들렸다. 첫인상이 그만큼 중요한가 보다.
3초를 못 참아서 액션배우가 되다
첫인상을 결정하는 3초는 비단 이성 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상 만나는 관계, 취미로 만나는 관계에도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3초의 첫인상이 결정되는 순간을 위해 좋은 차를 타고 싶었다. 좋은 차 타면 적어도 무시는 안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좋은 차는 엿 바꿔 먹었고 허세 유전자에 엿을 먹이는 똥차를 타고 다닌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비즈니스 모임을 위해 차를 지하주차장에 댔다. 차문을 열고 하차하는 순간 저 멀리 주차를 하고 하차 중인 고객을 발견했다. 아뿔싸! 이 타이밍에 차에서 내리면 똥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포착될 것이 분명했다. "차에 다시 탈까?" 고민하는 순간 각개전투하는 훈련병이 됐다. 아니 정확히는 액션배우가 됐다. 총알을 피해 차에 기대서 숨는 주연배우처럼 차 문을 닫자마자 허리를 숙였다. 몸을 숨긴 채 차의 트렁크 쪽으로 이동해서 액션배우처럼 달렸다. 마치 총탄을 피해 부상을 입은 동료를 구하러 달리는 딱 그 모습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날도 똑같이 차에서 내리며 문을 닫고 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뛰는데 "찌익~" 소리와 함께 차에 머리를 부딪혔다.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컷'이라 소리치는 촬영감독의 중지 소리처럼 들렸다. 왜 넘어졌을까? 그 소리는 차 문에 옷이 끼어 찢어지는 소리였다.
액션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을 만큼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던 중 심각한 현타가 왔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이렇게 남눈치 보며 살아야 하나? 그냥 나로 살면 안 되나? 나한테 선택을 강요하기로 했다. 차를 팔거나 당당하거나 선택을 해야 했다.
똥차 타도 남 눈치 안 보고 살기로 했다. 승하차시 3초만 쪽팔리면 된다.
3초를 참아 1억을 마련하다
승하차시간 3초를 참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물론 주차장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내 자존감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래도 매일 3초를 참으면서 매달 40만원을 아꼈다. 전기차이기에 가능했다. 휘발유차에 비해 확실히유류비(전기충전료) 지출이 줄었다. 빵빵한 지갑의 소유자에게는 사소한 돈일지 몰라도 구멍 난 지갑 보유자에게 40만원은 편의점에서 파는 생수의 이름과도 같다. 바로 오아시스. 슬프게도 병뚜껑의 색과 내 차의 색이 같다. 심지어 내 차에는 펄이 들어가 있다. 투톤이라 천장은 또 하얗다. 40대 중년남자에게 너무 안 어울린다.
나는 흙수저 아니 무수저다. 어머니는 사실 어린 시절 은수저 정도는 됐다. 하지만, 몽상가 흙수저 아버지와 만나 평균이 떨어졌다. 평균내면 동수저 정도는 됐을 텐데 양극화란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그것을 경험한 우리 집은 '양극화 사전 체험단'.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흙수저로 강등당하셨다. 행동보다 말이 앞섰던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 재산보다 부채가 앞섰다. 우리 집은 상속포기 서류를 제출했고 어머니는 아직도팽창한다는 우주의 진공청소기 블랙홀처럼 '가난의 블랙홀'에 빠지셨다.
어머니는 칠순이 넘도록 집다운 집에 한 번 못 사셨다. 반지하만 30년은 사셨다. 모아둔 자산이 전혀 없으셔서 자녀들이 결혼 한 노년에는 집 없이 유목민처럼 떠도셨다. 자식들 결혼 후 아들 집에서 1년, 딸의 집에서 3년, 이모집에 3년을 사셨다. 마지막은 독립해서 드디어 혼자 사셨지만, 7평 오피스텔에서 2년을 사셨다. 누가 7을 Lucky Number라고 하는가? 나이 70살에 숫자 7이 하나 들어가고 7평에 7이 또 하나 들어가니 우리 엄마는 Double Lucky의 삶인가? 아니다 엄마의 삶은 UnLucky였다. 7평 오피스텔에서 쓸쓸한 노후를 맞이할 순 없기에 용기 있는 결정을 했다.
어머니께 집을 사드리자. 1억원 대출받고 이자를 내 드리자
4년 전 아끼고 아낀 돈을 어머니께 드린 적이 있는데 그 돈이 씨앗이 되어 어머니의 자산을 증식시켜 드렸다. 하지만, 1억을 대출받아서 내 집을 마련한다고 해도 어머니의 작은 소득으로는 이자를 낼 수 없었다. 걱정이 몰려왔다. "어머니에게 집 사서 입주 하시라고 대출이자 내 드린다고 말했는데 무슨 수로 이자를 내지?" 그때 중고 전기차 파랑새가 매달 아끼는 기름값이 뇌리를 스쳤다. 통장 잔고를 보니 전기차를 타면서부터 진짜로 월 40만원씩 모이고 있었다. 이 돈이면 1억을 대출받아도 이자를 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투자자의 머리가 전파의 속도처럼 빠르게 돌아갔다. 역시 돈 계산은 초음속처럼 빠르다.
아들이 타는 파란색 똥차가 칠순이 지난 노모의 인생 첫 집을 마련을 도왔다. 물론 40만원이 비트코인 급으로 250배가 불어나서 1억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차가 '마중물'이 되었다. 비록 대출이지만 1억의 현금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레버리지 효과 아니 파랑새 효과가 아닐까? 자녀들에게 파랑새 효과를 가르쳐야겠다. 행복을 상징하는 새가 파랑새라던데 이러려고 중고 똥차 파랑새가 나에게 찾아왔나?
어머니의 새 집은 4호선 역세권의 방 2개짜리 아파트다. 유목민 출신 어머니는 집이 3배 넓어졌다고 행복하시고 교회 가실 때 지하철 공짜라고 엄청 좋아하신다. 이번 추석 명절을 오래 기다렸다. 명절 때 손주들을 데리고 부모님 집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웠을까? 그런 명절 단 한 번 못 보냈지만, 이번 추석은 어머니의 집에 3대가 모여서 잔치를 벌였다. 온 집안에 풍긴 식용유 냄새가 느끼하지 않고 달콤했다.
어머니가 내 집마련 하신 5월의 마지막 날은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가장 많이 울었다. 여러 고생에 눈물이 말라버린 내가 이모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모~ 우리 엄마 인생 첫 집 샀어!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신기하게 3분의 이모에게 똑같은 얘기를 3번 반복했는데 모두 엉엉 울었다. 하도 울어서 뱃속에 지방 낀 장기들이 다이어트 운동을 하는 경련이 느껴질 정도. 운전하며 한강을 건너는 동안 내장 지방을 제거하던 격렬한 울음이 그쳤다. 싱그러운 5월의 햇살을 보며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