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변 Feb 15. 2024

세모칸 화장실에서 사이비 교주 탄생한 이유

지하 벙커에 사는 좌충우돌 돌고래인간 이야기 2

돌고래인간의 "세모의 꿈" VS 히트곡 "네모의 꿈"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 뿐인데 (중략)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중략)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1996년도 화이트의 노래 "네모의 꿈" 중에서)


얼마 전 사랑스러운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배워왔다고 불러주었다. "30년 가까이 된 노래를 아들이 배우다니... 이쁜 가삿말만큼이나 대중성이 있구나" 생각했다.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 아들 노래 잘하네 아빠도 어릴 때 이 노래 많이 불렀어"


같이 노래를 부르는 중에 아들이 말한다.

"아빠 가사 틀렸어! 이건 세모의 꿈이 아니라 네모의 꿈이야"


순간 멍해졌다. 감기몸살로 어질어질해서 헛소리를 했나 보다. 네모의 꿈과 동시대에 애청했던 만화 "시간탐험대"의 타임머신 주전자 "돈데크만"이 생각났다. 돈데크만이 나를 90년대로 데려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고 시간터널로 들어간다. 


"돈데기리기리 돈데기리기리 돈데 돈데 돈데 돈데 돈데크만~~~"


때는 1997년... 가수 화이트(W.H.I.T.E)가 낭만적인 노래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제목은 "네모의 꿈"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듣고 세상이 네모로 보였을 것이다. 당시 나는 네모의 꿈을 거부하고 세모의 꿈으로 살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이 노래를 세모의 꿈으로 기억하지?" 

너무 유치해서 손발이 오그러 들다 못해 녹아 없어질 세모의 꿈 가사를 일부 공개한다.


세모난 오징어에 담긴 먹물을 뿌려 (중략) 세모난 피자 한 조각을 처먹고 나서 (중략) 세모난 돛단배의 돗을 찢고 바다에 빠져 (중략) 세모난 우리 집 화장실 (중략)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세모난 것들 뿐인데 (중략) 그건 세모의 꿈일지 몰라



"왜 내 주위엔 온통 세 모지?" 지금 생각해 보면 불만이 많아서 그렇게 보였나 보다. 노래만 잘 불렀어도 세모의 꿈이란 짝퉁 노래를 녹음해서 네모의 꿈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삼각형의 뾰족함을 제대로 보여줄 텐데 아쉬웠다. 직사각형 수준의 네모라면 세모의 뾰족함은 상대도 할 수 없을 텐데...


"오늘은 또 누구를 찌르지?"를 고민하던 97년도의 흙수저 중학생. 중학생의 마음은 온통 세모처럼 뾰족했다.


가뜩이나 당시는 질풍 노동의 청소년기의 절대 군주가 온 마음을 제국주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나는 안전핀을 제거한 수류탄이었다. 잘 못 건드리면 어디서든 폭탄테러를 시전 할 것 같았다. 맨날 돈 걱정 하시는 엄마. 돈이 없어서 돈을 어디에 쓴 거냐고 싸우는 부모님. 


공부라도 열심히 해보려 했것만, 돌고래의 IQ를 가진 원죄로 이해력과 암기력이 딸렸던 돌고래인간. 비만 오면 물이 세는 수상가옥 같은 반지하의 월셋집. 극빈자의 삶에 지친 중학생의 궁시렁이 들려온다.


"왜 세상을 둥글게만 살아야 하는 거지? 난 뾰족하게 살 건데?"

"옆에 닿기만 해 봐라 세모의 꿈으로 너희들 똥꼬를 찔러주마!"



세모난 화장실


세모의 꿈이란 노래의 작사배경은 가난하고 열악한 성장환경과 사춘기 삐딱함의 콜라보였다. 하지만, 작사의 가장 결정적 모티브가 된 것은 우리 집의 "세모난 화장실"이었다. 


우리 가족이 사는 반지하는 화장실을 만들 공간이 없어서 다세대 2,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하부에 위치해 있었다. 즉 응가를 할 때 다세대 2,3층 입주민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지진이 느껴지는 구조였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파란색은 외부 계단. 회색 삼각형이 우리 집 화장실이었다.





응가를 할 때마다 세모난 화장실을 가야 했던 우리 가족. 용변을 볼 때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수학공부를 할 수 있는 뇌섹남의 화장실이었다. 머리 위로 삼각형의 빗변이 지나갔는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수록 천장이 높아졌다. 남자들이 작은 일을 볼 땐 천장에 머리가 닿아서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삼각형 화장실은 세모의 꿈에 휘발유를 부었다.


틈만 나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웠다. 온 국민이 네모의 꿈에 심취하는 동안, 나는 청개구리 개똥철학으로 무장한 세모의 꿈 사이비 교주였다. 용변을 볼 때마다 세모의 빗변이 나를 억누르고 있었으니 청빈하게 세모의 삶을 살았다. 교리와 삶이 일치하니 언행일치의 훌륭한 교주 아닐까? 


원곡의 가사에 따르면 네모는 둥글게 살라며 동그라미가 되라는 조언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런데, 나는 네모라도 되고 싶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네모의 꿈을 즐겁게 부를 시간에 세모의 꿈이란 노래를 만들어서 방구석 파이터로 싸웠던 시간이 아까웠다.



네모난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세모보다 덜 뾰족한 네모라도 되고 싶었다.



세모의 진정한 가치


다시 한번 돈데크만의 힘을 빌어서 시간터널을 지나 현실의 세계로 나온다.

"돈데기리기리 돈데기리기리 돈데 돈데 돈데 돈데 돈데크만~~~"


2024년도 2월 큰 아들 공부방으로 돌아왔다. 수학문제집을 채점하는데 세모 표시가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답도 오답도 아닌 애매한 답에 세모 표시를 한다. 아들은 틀렸다고 속상해한다. 나는 그런 아들을 위로했다.


"시원아 틀렸다고 생각하지 마 조금만 노력하면 동그라미가 있는 것이 세모야" 


잠을 청하려고 누었는데 아들에게 말해줬던 세모의 가치가 다시 떠올랐다. 세모라는 것은 참 애매하다. 맞은 것도 아니고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고 이중적인 녀석이랄까? 

분명한 것은 세모는 절대로 오답이 아니란 점이다.


세모는 나의 삐뚤고 뾰족한 마음을 대표하는 도형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세모는 오답 노트"였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잘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좀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린 시절 세모난 화장실이 그리도 싫었던 까칠했던 세모의 꿈 사이비 교주를 안아주고 싶다. 안아주지 못하고 현실로 돌아왔는데 어쩌지? 다시 돈데크만을 불러야 하나? 그냥 자자 꿈에서 안아주지 뭐


더 이상 세모가 뾰족한 마음과 상처로 느껴지지 않는다. 세모난 화장실이 나를 성숙시켜서일까?


여전히 내 인생은 정답도 오답도 아닌 "세모 인생"이다.


네모야~ 네가 부럽지 않아 동그라미야~ 너도 안 부러워
세모야~ 그냥 네가 좋다
계속해서 내 인생의 오답노트가 되어줘
더 멋진 인생을 꿈꾸도록

                                                     (from. 어른이 된 세모의 꿈 사이비 교주)


매거진의 이전글 돌고래인간이 살던 지하벙커와 4개의 수류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