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밤.
낮이 찾아오지 않는 우울상점은 언제나 조명을 밝히고 있다. 그러니 추억을 품은 것들이 찾아오기도 쉽다. 빛이 흐르는 곳을 딛고 걸음을 옮기다 보면, 그리운 향기가 풍긴다. 현실을 뚫고 찾아온 물건들은 저도 모르게 이끌려 들어온다. 오래전부터 지내왔던 집으로 돌아가듯이.
찾아온 물건들은 어딘가에 진열된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있을 곳을 찾는다. 보통은 나무 향기가 배어든 선반을 가장 좋아하지만, 매끄러운 리본으로 장식된 종이 상자를 좋아하기도 하고, 목욕 바구니 같은 곳을 좋아하기도 한다. 자신의 자리를 찾은 물건들은 희미한 빛을 삼키며 휴식을 취한다.
향기로운 거품으로 만들어진 날개, 기억을 머금은 펜과 추억을 속삭이는 종이, 오래된 온기를 품은 늑대개 인형, 시간의 경계를 허물어 불안을 잠재우는 이어폰, 보름달을 담은 유리병과, 상점 안을 온통 달콤한 향기로 채우는 사탕꽃 한 송이.
마음을 싣고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던 편지는, 긴 여행에 지쳐 종이 상자에 몸을 뉘인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밝은 파란색의 서랍 위에서, 꺼지지 않는 촛불이 묽고 부드러운 빛을 퍼뜨리며 물건들에게 희미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따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드러운 카펫이 깔린 상점 안을 수놓는 발걸음이 있었다.
소리도 나지 않는 발걸음은, 자그마한 상점의 내부를 온통 특유의 색으로 물들였다. 끝없는 밤으로부터 태어난 것처럼 검은 털이 인상적이었다. 촛불이 불러주는 자장가에 기울어지는 두 귀, 적당히 살집이 붙은 몸매, 등허리에 닿기만 해도 미끄러져 흘러내리는 빛. 내딛는 걸음에 따라 파도치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근육.
상점의 포근한 조명을 닮은 눈동자는 건강하고 맑은 빛을 내고 있었다. 과일의 향기를 품은 스카프가 목 언저리를 감싸고 있었다. 손으로 직접 만든 듯한, 조금은 엉성하지만 포근하고 귀여운 스카프였다.
고양이는 걸었다. 물건들 하나하나에 전부 눈길을 주며.
그는 잠이 든 편지의 곁에 다가가 살며시 코끝을 대기도 했고, 가만히 앉은 채로 흐릿한 기억을 흘려보내는 펜과 종이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사랑을 듬뿍 받은 인형에게 다가가 머리를 비비며 나름의 인사를 건넸다. 휴식을 취하던 물건들은 하나같이 고양이를 사랑스러워했다.
물건들은 고양이의 다정한 시선에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듯, 점점 더 고요하고 따스한 빛을 뿜어내며 그 자리에 고요히 머물렀다. 고양이의 마음이 닿을 때마다 상점 안에 온화한 공기가 퍼졌다.
고양이는 상점의 주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괴물에 먹힌 가족을 오롯이 지켜봐 왔고, 그 속에서 떨고 있던 어린 영혼을 알아본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괴물의 손길에 무성하게 자라난 파란 꽃이 아이의 몸을 뒤덮었을 때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어린아이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제 몸에 머리를 기댄 채 소리를 잃은 울음을 터뜨려도 가만히 앉아 품을 내어주었다.
고양이는 생각했다. 아이의 생명을 꺾지 말자고. 물론 그러한 결정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든 다른 세상으로 등을 떠밀려하는 괴물들로부터 아이를 지켜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것을 볼 때마다 말갛게 빛나는 아이의 눈을 지키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아이의 두 눈이, 고양이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보석보다도 더 가치 있고 귀중한 것이었다.
가끔 괴물이 익숙한 가죽을 뒤집어쓸 때면 아이는 옷장 속에 숨어들었다. 그 틈으로 가늘게 흘러나오는 두려움이 안타까워, 고양이는 옷장 속에 아이만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하나 찾아낸 뒤에 푹신한 이불의 틈새로 밀어 넣었다. 행복의 조각이 하얀 빛을 뿜어내었고, 빛무리는 아담하고 포근한 집의 형상이 되었다.
이제부터 여기가 네 집이야. 고양이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아이를 향해 말했다.
직접 들어오지 않아도, 언제나 이어져 있어.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만 하면 돼. 네가 사랑하는 것들이 여기에 따라올 거야.
고양이는 눈을 들어 상점 안을 둘러보았다. 하얀 간판을 선명하게 빛내는 <우울상점>은 더 이상 단순한 가게가 아니었다.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은 고양이와 아이의 기억, 그들이 함께했던 순간들이 깃든 존재들로 변해 있었다. 고양이가 물건들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었을 때, 그들은 마치 고양이를 반기는 듯한 온기를 내뿜었다. 고양이는 그 온기를 느끼며, 그곳이 자신과 아이의 마지막 보금자리가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 다음에는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이의 눈 속에 가득한 순수한 빛.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던 그 눈빛을 영원히 지켜주기 위해, 그는 이곳을 찾았다. 상점 안의 모든 것들이 그들의 손을 잡은 것처럼, 고양이는 아이의 영혼과 함께 끝없는 안식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일하게 심장을 울리며 숨을 쉬는,
영원한 생명이 깃든 나의 마지막 추억.